반갑습니다 “꽃을 가꾸듯 한글에 정성을 정성을 기울이다.” 조부 외솔 최현배 선생의 뜻을 잇는 최홍식 원장
최홍식 원장은 ‘한국 후두음성언어의학의 선구자’이자
일제 강점기부터 한글 연구와 보급에 헌신한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의
후손으로, 몸소 한글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조부와 함께했던 추억을 자양분 삼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글학회 운영 및 지원 등
한글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최홍식 원장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자, 연세의대 명예교수로 후두나 성대 등 발성 기관의 문제로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정상적인 목소리를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조부인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의 영향을 받아 세종대왕, 훈민정음, 그리고 한글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오랜 기간 한글 관련 단체에서도 일해 왔습니다.
목소리 전문 의사로 알려져 있으며, 이비인후과는 제가 관심이 가서 전공했어요. 이비인후과의 귀·코·목 중에서 목을 선택해 후두음성언어의학을 한 데는 할아버지 영향이 큽니다. 이비인후과 전공의 때 <훈민정음 해례본>이나 조부가 쓴 <한글갈>(1940)을 보면서 훈민정음 창제 원리와 음성언어의학이 연결된다는 걸 알았거든요.
현재 병원 안에 ‘천지인 발성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소장으로서 ‘훈민정음 제작원리의 과학적, 음성 언어 의학적 연구’를 진행해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후두음성언어의학이란 이비인후과의 한 분야입니다.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성대가 들어 있는 ‘후두질환’을 주로 연구하는 임상의학 학문 분야입니다. 말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여되는 공명(울림)과 조음 과정에 이상이 생기는 구강 및 인두 질환에 대해서도 같이 연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한글에 관한 관심이 지대하고 많은 활동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중 <훈민정음 해례본>의 설명에 의하면, 정음 28자는 모두 발음 과정 중의 모양을 ‘상형(象形, 본뜸)’해서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저는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후두음성언어의학 연구 및 진단 목적으로 사용되는 많은 의학 장비들, 즉 CT, MRI, 초음파, 음성 분석 장비 등을 사용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할아버지 되시는 외솔 최현배 선생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아픈 경험을 통하여, 또 좋은 스승이신 주시경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큰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 연구하여 체계화하고, 우리말 큰 사전을 편찬하는 등의 노력으로 독립운동을 하셨던 것이지요. 독립 후에는 우리말 교과서 편찬, 한글 가로쓰기 추진, 한글전용 추진, 한글기계화사업 등을 앞서서 이끌어 오셨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위하여 만드신 구슬들인 우리글을 연구하고 꿰어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을 보배로 만들어 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한글 사랑 못지않게 나라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나라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국산품 애용’과 조부님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공과 사의 구별’에 대한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의 국산품의 질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물건이든지 국산품이 있으면, 국산 물건만을 사용하셨습니다. 조부님이 지니고 계시던 것 중 유일하게 중절모만이 미국 제품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중절모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또한 조부님이 해방 후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교과서를 만드는 총괄책임을 지셨을 때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당시 ‘공과 사의 구별’을 철저하게 하기 위해 서랍 안에 공적으로 사용하는 원고지와 사적으로 사용하는 원고지를 구분하여 놓고,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원고지는 사비로 사셨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 1년에 4~5번은 꼭 조부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어요. 식사 뒤 할아버지 서재를 가서 뭐 하시나 보면 그날 배달되어 온 신문을 보며 맞춤법이나 글이 틀린 것을 빨간 펜으로 표시하고 계셨어요. 그렇게 고친 뒤에는 신문사에 우편으로 보내셨죠. 그 모습이 참 기억에 남네요. 또 조부께서는 가끔 우리 집에 난 화분을 보내시기도 했어요. 카드도 함께 보냈는데 거기에는 ‘꽃이 예쁘게 피려면 물도 주고 정성껏 가꿔야 한다. 우리말과 글을 가다듬는데도 정성이 필요하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죠.
우리나라가 작은 나라임에도 이렇게 발전하여 선진국에 이를 수 있게 된 여러 요소 중,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글은 그만큼 소중하지요. 그런데 젊은 세대들은 한글 사용 시 맞춤법 파괴, 지나친 외래어 사용 등으로 우리말과 글 소홀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운영하는 동안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편찬 목적은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젊은 학생들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나라사랑, 한글사랑의 뜻을 고취시키고자 한 시도가 ‘한글 사랑 손수제작동영상(UCC) 공모전’ 이었는데, 정말 많은 학교 학생들이 동참해 주어서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세종대왕 글짓기대회’, ‘외국인 한글 글씨쓰기 대회’, ‘한글 문화상품 공모전’ 등의 행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훈민정음 초성(첫소리, 닿소리, 자음)의 대표글자 “ㄱ(아음), ㄴ(설음), ㅁ(순음), ㅅ(치음), ㅇ(후음)”의 상형(본뜸)에 대한 기존 설명에 대한 수정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지금은 중성(가운데소리, 홀소리, 모음)의 대표글자 “ · (천), ― (지), l (인) ”의 상형(본뜸)이 단순히 ‘하늘’, ‘땅’, ‘사람’의 단순 외형적 모양을 본 뜬 것이 아니라, 실제 조음 시, 앞을 보고 있는 사람의 왼쪽 옆모습의 소릿길(성도, 공명강) 조음 시 모습의 대표성을 글자 모양으로 본뜬 것임을 증명해 가고 있습니다. 제주 방언 중 ‘아래아’를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에 대한 ‘투시 조영술(fluoroscopy)’ 및 ‘CT 촬영’에 의하면, ‘아래아 / · /’는 발음 시 구강의 앞부분 공간의 동그란 모습을 본 떠 만들었다고 추정됩니다. ‘― (지)’는 발음 시 혀와 입천장 사이 공간이 평평한 공간 형태를 본뜬 모습이며, ‘ l (인) ’는 발음 시 혀가 앞쪽으로 선 형태의 뒤 공간, 즉 인두강이 위아래로 길게 선 모습을 본 떠 만들어졌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많이 말하면서도,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 · (천), ― (지), l (인) ” 중성자의 글자 만들기가 정말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직까지 먼저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점이 퍽 안타깝습니다. 이를 꼭 밝혀내고 알리고 싶어서, 연구소의 이름도 ‘천지인 발성연구소’라고 지었고, 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일본은 특별히 자국의 말과 글을 귀히 여기고 잘 가꾸어 나가고, 자국어 중심의 언어 정책을 잘 꾸려나가는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이런 태도는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결과적으로 굉장히 큰 차이를 초래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나라와 말과 글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뻔했던, 일제강점기를 겪은 나라입니다. 우리말글의 소중함, 중요성을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저는 현재 제가 담당하고 있는 한글 활동에 더욱 힘쓸 것이며, 이비인후과 의사들과 음성학 전공자들, 그리고 IT 쪽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는 음성공학을 연구하시는 분들과 힘을 합쳐서 “한글의 과학성에 대한 융합 연구”를 추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