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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소장품 이야기
흰 연꽃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
『묘법연화경언해』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한자로 된 경전을 우리말로 읽고, 옮기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의 글이 없던 시절에는 한자로 된 경전을 우리말로 풀어내기 위해 기호나 글자를 새기거나 써넣는 ‘구결’을 사용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경전의 간행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한글로 경전을 번역한 이른바 ‘불경 언해본’이 탄생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묘법연화경언해』를 중심으로 한글 불교 경전 간행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법화경法華經』으로 부르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이자 우리나라의 불교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경전 중 하나입니다. 『법화경』은 “흰 연꽃과 같은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경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올바른 법을 펼쳐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과 보살의 모습을 진흙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꽃에 비유한 것입니다.
『법화경』은 기원 전후 서북인도에서 성립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후 6번이나 한문으로 완전하게 번역되었습니다. 그중 후진後秦의 구마라집(343~413)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7권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많이 유통되었고, 특히 중국 송宋나라의 계환이 본문을 쉽게 풀이한 『법화경요해法華經要解』 7권이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여러 산 가운데 수미산이 제일이듯이,
이 경전도 또한 마찬가지로 여러 경전 가운데 제일이니라.
또 뭇별 가운데 달이 제일이듯이,
이 경전도 또한 마찬가지로 여러 경전 가운데 가장 밝게 비추느니라.
또 태양이 모든 어둠을 제거하듯이,
이 경전도 마찬가지로 일체의 착하지 못한 어둠을 제거하느니라.
『묘법연화경』 권6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 중
『법화경』이 언제 우리나라로 들어왔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백제의 승려 혜현이 『법화경』을 독송했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의 승려 원효는 『법화경』의 교리를 해설하는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를 지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법화경』이 전해지고, 이후 경전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경주 창림사터에서는 『법화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이 발견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목판본 간행과 더불어 경전을 필사하는 사경寫經도 활발하게 행해졌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법화경』은 꾸준히 간행되는데,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새로운 문자, 바로 훈민정음이 반포되어 우리의 문자로 경전이 번역된 것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후 한글로 펴낸 최초의 불교 서적 『석보상절釋譜詳節』(1447)은 세종(재위 1418~1450)의 명을 받은 수양대군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쓴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본 세종이 부처님의 업과 덕을 칭송해 한글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1447 추정)을 지었고, 후에 세조는 이 두 책을 엮어 『월인석보月印釋譜』 (1459)를 펴냈습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는 『법화경』의 주요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여 수록했습니다. 이 두 책은 『법화경』의 한자 원문을 별도로 제시하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 『석보상절』 권 13, 1447년,
『법화경』 「서품(序品)」,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월인석보』 권 15, 1459년,
『법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 구암사 소장
특히 세조가 간경도감刊經都監을 만들어 국가 차원의 경전 번역과 간행을 추진하면서 경전의 한글 번역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간경도감이 만들어진 세조 7년(1461)부터 폐지된 성종 2년(1471)까지 11종의 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출간하였는데, 『법화경언해』는 『능엄경언해』에 이어 간경도감에서 두 번째로 간행된 불경 언해본입니다. 『법화경언해』는 세조 9년(1463) 7권 7책의 목판본으로 간행되었습니다. 내용은 구마라집의 『묘법연화경』에 계환의 해설본과 중국 명明나라 일여가 주석을 모은 책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경전은 중생들의 일체 고통과 일체 질병을 여의게 하여
능히 일체 생사 속박에서 해탈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스스로 쓰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쓰면,
그 얻는 공덕은 부처님의 지혜로 그 많고 적음을 헤아려도 그 끝을 알 수 없느니라.
『법화경언해』는 『법화경』의 본문 전체와, 주석, 해설, 번역문을 짜임새 있게 수록하여 경전의 내용을 꼼꼼하게 살필 수 있도록 편집되었습니다. 경전 본문은 단락을 나누어 세조가 직접 한글로 구결을 달았습니다. 일여의 주석과 한글 번역문은 2줄의 작은 글씨로 적고, 본문과 주석, 번역문 사이에는 ‘〇’ 표시를 넣어 각각 구분하였습니다. 계환의 해설은 한 글자 내려서 본문보다 작은 글씨로 적어 한글 구결을 달고, 이어서 한글 번역문을 넣었습니다.
이후 간경도감본 『법화경언해』의 목판본을 토대로 다시 판각하여 간행한 『법화경언해』도 있습니다. 1545~1547년에 걸쳐 나주 쌍계사에서 만들어진 『법화경언해』는 편집과 목판의 새김 방식이 대체로 간경도감 간행본과 같지만, 책의 마지막에 어려운 단어를 풀이해 놓은 ‘음석音釋’이 생략된 점이 다릅니다.
중생들이 이 법을 듣고는 현세에는 편안하고 후세에도 좋은 곳에 태어나
도(道)로써 쾌락을 받고 또 법을 듣게 되며, 법을 듣고는 모든 업장과 걸림을 여의고,
모든 법 가운데서 그 힘의 능력을 따라 점점 도에 들어가게 되나니,
마치 저 큰 구름이 모든 것에 비를 내리면 풀과 나무와 숲과 약초들이
그 종류와 성질대로 비를 맞아 제각기 자람과 같으니라.
간경도감본과 쌍계사본의 권말 비교
▲ 간경도감본 『묘법연화경언해』 권2, 1463년
▲ 쌍계사본 『묘법연화경언해』 권3, 1545년
1799년 순천 송광사에서는 간경도감본과는 다른 형식의 목판을 독자적으로 판각하여 『법화경언해』를 간행했습니다. 송광사본에서는 본문에 앞서 계환의 해설을 한 글자 내려 작은 글씨로 적었는데, 구결은 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자로 된 본문은 크게 쓰고 그 옆에 한글로 음을 나란히 표기했습니다. 송광사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의 장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경전을 만들 때 시주한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 시주자(왼),
『묘법연화경언해』 권 6 「수희공덕품(隨憙功德品)」, 1799년(오)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법화경언해』를 통해 1463년 간경도감의 원간본과 이를 바탕으로 다시 만든 중간본, 그리고 간경도감본을 계승하지 않고 독자적인 판본으로 간행된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불경 언해의 간행은 한문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경전의 내용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한글로 피어난 부처의 가르침, 『묘법연화경언해』는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한글 사용 모습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불교 경전의 간행 추이, 불교 사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