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여사초략
시대: 1899년
수량: 1책
크기: 32×537.6cm
조선시대 여성들은 한글로 번역된 『삼강행실도』, 『고열녀전』, 『여사서』 같은 교화서를 읽으며 여성으로서의 도리를 익혔다. 여기에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며, 실제로 조선시대 여성들은 이런 책에 나오는 여성들처럼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거나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기도 했다. 하지만 덕온공주의 아들 윤용구가 딸에게 써준 『여사초략女史抄略』에 나오는 여성들은 이와는 다른 모습이다.
딸 윤백영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윤용구
윤용구尹用求(1853-1939)는 덕온공주德溫公主(1822-1844)가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난 후 덕온공주의 부군인 작은아버지 윤의선尹宜善(1823-1887)의 양자로 들어갔다. 윤백영尹伯榮(1888-1986)은 윤용구가 첫 번째 부인이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난 후 재혼한 두 번째 부인에게서 35세라는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다. 그래서인지 윤용구는 딸 윤백영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딸에게 직접 글을 가르쳤으며 출가할 때 출가훈을 써 주었고, 사후당師候堂이라는 호도 직접 내려 주었다. 1899년 윤백영이 12세가 되었을 때 딸에게 직접 써 준 『여사초략』은 딸에 대한 교육의 일환이자 각별한 애정의 표현이었다.
조선시대에 아버지가 딸에게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써준 예가 있지만 이처럼 딸을 위해 중국 역사에 나오는 본받을 만한 여성을 직접 골라 그 행적을 한글로 정성스럽게 쓴 예는 거의 유일하다.
윤용구가 뽑은 30명의 본받을 만한 여성
『여사초략』은 중국 역사에 나오는 30명의 본받을 만한 여성의 행적을 앞뒤로 각각 15명씩 먼저 한문으로 쓰고, 한글로 직접 번역한 것으로, 병풍처럼 절첩折帖 형태로 되어 있으며 펼쳤을 때 총 길이가 5.4m 가까이 된다.
여사女史는 궁중에서 비빈妃嬪들을 모시고 궁중의 일을 기록하던 여관女官, 초략抄略은 간략하게 요약한다는 뜻이다. 실제 『여사초략』은 중국의 여성 중 딸이 본받을 만한 인물을 시대별로 뽑은 것으로 간추린 여성의 역사 정도로 볼 수 있다.
수록된 여성은 중국 고대부터 명나라 말까지 전시대에 걸쳐 있으며, 왕후, 궁녀, 고관의 아내와 어머니, 평민의 어머니 등 신분도 다양한 편이다. 이 중 몇 명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죽은 아들을 감싸지 않은 한나라 승상 장탕의 어머니
- 출세한 조카의 도움을 거부함으로써 화를 면한 위나라 환관 부승조의 이모
- 남편을 죽인 원수를 갚은 삼국 오나라 태수 손익의 아내 서씨
- 남편의 뜻을 받들어 호화로운 장례를 거부한 당나라 재상 위증의 아내 배씨
이런 여성의 면면들은 조선시대에 여성들이 주로 읽었던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남편을 위해 수절하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모습이 아니다. 현명하면서도 강인하고 때로는 남성을 주도하는 여성들, 가히 여성위인전에 나올만한 인물들이다.
한글로 딸과 소통하고자 했던 마음을 담은 교훈서
윤용구는 1871년, 19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요직을 두루 거쳐, 3조(예조, 공조, 이조) 판서까지 지냈으며, 왕실의 종친으로 어린 시절부터 궁중에 드나들었다. 고종을 최측근에서 보필한 윤용구는 고종의 명을 받아 중국 역사서를 두루 읽고 『정사기람』을 편찬할 만큼 한문과 역사에 능통했던 유학자였다. 윤용구가 『여사초략』에 중국 여성들의 행적을 담은 것은 당시 여성들이 읽었던 교화서에 나온 여성이 대부분 중국인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여성 교화서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자신이 여러 역사서에서 직접 30명을 뽑았다는 것은, 이 여성들의 삶을 12세의 딸에게 정말 이야기해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딸에게 진정으로 해 주고 싶은 이야기를 찾기 위해 고민했을 아버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 한글로 딸과 교감하고 교훈을 주고자 했던 한말(韓末) 한 선비의 마음을 담은 자료 『여사초략』은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공쥬 글시 뎍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의 한글유산>(2019. 4.25. - 2019.8.18)에서 만날 수 있다.
원고 : 전시운영과 이재정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