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이야기
일제강점기 노랫말이 담긴
노래책과 가사지
나라를 빼앗긴 시대, 암울한 나날들이었지만 사람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중이 듣고 부르는 노래, 대중가요였다. 유성기 음반 레코드의 황금기였던 1930년대에는 국내에도 여러 레코드 회사가 있었는데, 음반 기획이나 제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반 홍보와 소속 가수들의 이미지 마케팅까지 하였다. 요즘으로 치면 연예기획사의 역할까지 레코드 회사가 맡았던 것이다. 음반 기획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문학과 예술의 일종인 ‘노랫말’을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이 업무를 맡은 부서를 ‘문예부(文藝部)’라고 불렀다.
당시 경성 5대 레코드사인 콜럼비아, 빅타, 포리돌, 오케, 태평레코드의 문예부에는 대중의 정서나 취향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문예부장에 발탁되었다. 문예부장에게는 작사가 가장 중요한 업무였기 때문에 시인이나 극작가 출신이 많았다. 이들이 기획하여 만들어진 유성기 음반의 가사지에서는 작사를 ‘작시(作詩)’ 또는 ‘시(詩)’라고 적어 당대 노랫말의 위상이 시와 비슷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오케레코드는 1932년 설립되어 일제강점기 다섯 개의 레코드 회사 중 가장 늦게 출발하였다. 설립 당시 명칭은 일본오케축음기상회 경성임시영업소로, 녹음을 일본데이치쿠레코드에 의존하였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5대 레코드 회사 중 유일한 한국인 사장 이철은 경성에 취입소를 설치하여 조선의 힘으로 음반 제작을 시도하였고 반주 역시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관현악단이 맡았다.
오케레코드는 전국의 민요를 발굴하고 채록하였으며 음반의 피리 독주는 이왕직아악부 아악수를 지낸 피리 명인 이병우(李炳祐, 1908~1971)가 맡았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우리 음악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민요를 대중화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기획특별전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에 전시되고 있는 가사지 중 오케레코드에서 기획한 신민요의 가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노들강변>은 서울 노량진 일대의 한강변을 가리키며, 세상의 한을 물에 띄워보내려는 심정을 노랫말로 표현하였다. 앨범 발매 이후 경기 명창에게 불려 경기 민요로 알려져 있을 만큼 전통적 색채가 짙지만 김세레나, 패티 김 등이 리메이크하여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는 곡이다.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에서는 이보다 더 풍성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노랫말이 소개되고 있다. 생활 속 거리두기로 답답함을 느낀다면, 국립한글박물관의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로 이를 해소해보는 건 어떨까. 국립한글박물관 홈페이지(www.hangeul.go.kr)로도 전시장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원고 : 연구교육과 신하영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