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광복의 기쁨, 한글로 노래하다
- <그날이 오면> 중 -
조국 독립의 염원을 노래한 시, 심훈의 <그날이 오면>에는 일제 강점기하 광복을 염원한 겨레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바라던 ‘그날’을 맞이한 1945년 8월의 한반도는 어떤 풍경이었을까.
그리고 해방의 기쁨을 어떻게 작품 속에 녹여냈을까.
일본의 침략 야욕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천황이 일본방송협회의 라디오 방송으로 항복을 선언하며 종전을 맞이한다. 이와 동시에 조선은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했는데, 1910년 대한제국이 국권을 빼앗기고 한일병합조약을 맺은 지 36년 만에 찾아온 경사였다.
한민족 전체가 극심한 일제의 수탈에 시달리던 전쟁 말기, 슬픔의 역사 속에서 찾아온 해방은 모두가 바라 마지않던 절대적 기쁨이었다. 그럼에도 “해방은 도둑같이 찾아왔다”던 사상가 함석현의 말처럼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독립을 쉬 믿지 못하였다. 8월 15일 당일은 유야무야 혼란 속에 넘어갔고, 다음날 형무소에 억울하게 갇혀있던 죄수들이 석방되기 시작한 뒤에야 경성(지금의 서울) 시민들은 해방을 반기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국권을 회복하고 일본인들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과정을 거치며 독립운동에 매진하거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던 지식인들이 해방에 대한 작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선어학회의 간사장을 맡았던 한글학자 이극로는 징역 6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출옥했는데, 1945년 12월 발간된 《해방기념시집》에 시조 <한양의 가을>을 싣고 한반도의 아름다움과 희망찬 내일을 노래했다.
수필 <딸깍발이>로 유명한 국어학자 이희승은 독립한 나라의 앞날에 영광이 깃들길 바라는 시 <영광(榮光)뿐이다>에서 해방은 우연이 아니라 깊은 까닭과 큰 원인이 있다고 표현했다.
<승무>로 유명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 또한 《해방기념시집》에 <산상(山上)의 노래>를 발표하며 해방의 기쁨과 새로운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을 산의 정상에서 부르는 노랫말로 표현했다.
이외에도 시인 김광섭의 <속박과 해방>, 시인 정지용의 <그대들 돌아오시니>, 소설가 박종화의 <대조선의 봄>, 소설가 홍명희의 <눈물 섞인 노래>, 독립운동가 정인보의 <십이애>, 국문학자 이병기의 <나오라> 등 해방이 찾아온 그날의 감격을 다룬 수많은 작품이 발표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광복절은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다. 이어 1950년에는 문교부에서 광복절을 기념할 <광복절 노래>를 제정하여 공포했다. <광복절 노래>는 역사학자이자 대한민국 초대 감찰위원장을 역임한 정인보가 작사했고, <보리밭>, <동백꽃> 등을 작곡한 윤용하가 곡을 썼다.
- 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 <광복절 노래> -
국립한글박물관이 지난해 4월부터 8월까지 진행한 기획전시 <공쥬, 글시 뎍으시니: 덕온공주 집안 3대 한글 유산>에서도 해방의 순간을 한글로 표현한 작품이 전시됐다. 바로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조선의 제23대 왕 순조와 순원왕후의 막내딸)의 손녀 윤백영이 58세에 독립을 맞이하며 느낀 기쁨을 적은 <대한해방감회문>이다. 당시 여성으로서 해방에 대해 한글로 쓴 자료가 드문데다 윤백영의 뛰어난 한글 서체가 정갈하게 드러나 역사적으로도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조선말을 금지했던 억압 속에서 벗어나자 당대의 지식인들이 뛰어난 작품을 발표한 것처럼, 한반도는 점차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글 ‘한글’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해방 직후 시급한 당면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건국준비위원회는 1945년 9월 시정방침을 통해 ‘일반 대중의 문맹 퇴치’를 중요 과제로 선정했고, 비슷한 시기 열린 전국부녀총동맹 결성대회에서도 ‘우리나라 말과 글을 배우자’는 문맹 퇴치 운동이 주요 안건으로 채택됐다. 이러한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둬 해방 직후 77.8%에 달했던 문맹률은 1970년 조사 결과 7%로 급감한다.
지금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한글을 읽고 쓰지만, 일제 치하 36년 동안 한글은 사용할 수 없는 금기의 문자였다. 해방 직후 쏟아져 나온 한글 작품과 급속도로 진행된 문맹 퇴치 사업은 우리말글을 사용할 수 없는 아픔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