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22호 2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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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상의와 검은색 모자, 큰 금색 목걸이를 한 ‘수니와 칠공주’ 리더 박점순 할머니가 양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반갑습니다 늦깎이 한글 수강생에서
래퍼로
‘수니와 칠공주’ 리더 박점순 할머니

각 지자체에서는 한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 성인 문해교육을 진행 중입니다.
그중 최근 화제가 된 어르신들이 있는데, 바로 경북 칠곡군에서 한글을 배운 8명의 할머니입니다.
할머니들은 지난달 힙합 그룹을 창단해 한글을 바탕으로 랩에 도전했습니다.
힙합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리더 박점순 할머니를 만나봅니다.


Q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칠곡할매’ 박점순입니다. 올해 81살이고, 4년 전 남편과 이별한 후 지금은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 부부가 가까이 살고 있어 외롭지는 않습니다.

Q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우셨는데요. 한글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저는 딸이라고 학교에 보내지 않았어요. 그래서 평생 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야속합니다. 내 이름과 아들 이름을 쓰고, 은행에 혼자 가고 싶어서 한글을 배웠습니다.

‘수니와 칠공주’ 단원들이 아래에 있는 카메라를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단체 사진이다. 각각 화려한 복장과 모자를 쓰고 있다.

Q

올해 초엔 같이 한글을 배우신 할머니의 글씨로 만들어진 ‘칠곡할매글꼴’이 대통령의 신년 연하장에 활용됐는데요. 기분이 어떠셨나요?

A

한마을에서 같이 한글 공부하는 할머니의 글씨체가 대통령 연하장에 사용됐다고 들었습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통령과 사진도 찍고 선물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로서는 그게 너무 부러웠습니다. ‘한글을 조금 더 잘 써볼걸’ 하는 마음이 들면서 아쉽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부럽지 않아요. 저도 랩 열심히 하면 혹시 대통령께서 만나자고 하실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때까지 열심히 랩 연습하려고요.

칠곡할매글꼴로 제작된 대통령 신년 연하장 사진이다. 칠곡할매글꼴로 제작된 대통령 신년 연하장

Q

특히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랩을 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A

선생님이 텔레비전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랩이라는데 노래도 아닌 것 같고, 말도 아닌 것 같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보고 들어보니 ‘나도 젊은 사람들처럼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우리도 랩 한번 해보자’라고 했습니다. 랩을 하니 젊어지는 것 같았어요. 앞으로 랩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수니와 칠공주’ 팬클럽 창단식 기념사진이다. ‘수니와 칠공주’ 단원들과 가족들, 관계자들이 현수막 뒤에 서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Q

주로 어떤 가사를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일하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랩을 했는데 그게 방송에도 나오고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제목이 없었는데 지금은 ‘고추밭에 고추 따고’라 지었습니다. 가사는 ‘고추밭에 고추 따고, 오이밭에 오이 따고, 가지밭에 가지 따고, 수박밭에 수박 따고 집에 돌아오니까 너무너무 행복해요’입니다. 아프지 않고 매일 매일 밭에서 일하면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했습니다. 요즘 할머니들은 나이가 들면 요양원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그렇게 될까 봐 걱정됩니다. 그래서 랩 열심히 하고 밭에서 일도 열심히 해 아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싶어요. 그게 제 소원입니다.

박점순 할머니, 김재욱 칠곡군수, 박점순 할머니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검은색 옷을 입은 며느리는 ‘오늘부터 수니와 칠공주 찐팬입니다’라고 적힌 판과 초록색 옷을 입은 손자는 ‘우리 할매들이 억수로 자랑스럽습니더~’라고 적힌 판을 들고 있다. 김재욱 칠곡군수(가운데)와 기념 촬영하는 박점순 할머니(오른쪽 두 번째), 박점순 할머니 가족

Q

랩을 배우면서 경험하신 것 중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A

방송국에서 저를 촬영하는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무서웠는데 몇 번 하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다른 할머니들도 저랑 똑같아요. ‘방송 별거 아닌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유치원 아이들이 제가 부르는 랩을 따라 부른 적이 있었는데요. 재밌게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Q

한글을 배우신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요?

A

한글을 배우니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혼자 은행도 갈 수 있어요. 시장에 가면 간판을 보고도 ‘저게 뭘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간판을 읽을 수 있어서 장을 볼 때 기분이 좋고 편합니다. 그리고 시를 쓸 때는 정말 행복해요.

‘수니와 칠공주’ 단원들의 단체 사진이다. 나무가 그려져 있는 흰 벽 앞에서 화려한 복장을 한 할머니들이 정면 카메라를 향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한글’은 어떤 의미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한글은 우리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아버지가 저는 딸이라고 학교에 안 보내주셨거든요. 그래서 늘 한글을 공부하면 아버지가 생각나요. 아버지가 지금이라도 “점순아, 학교 공부 안 시켜서 미안타이”라 할 것 같아요. 제가 아버지께 글을 써서 보여 드리고 싶어요. “아버지예, 저도 이제 글을 쓸 수 있어예”라면서요. 한글은 저에게 우리 아버지 같습니다.

(사진 출처 : 칠곡군청)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