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1933년
수량: 1건 1점
크기: 26.5×28×13.3cm(가로×세로×높이)
시대를 앞선 개발자, 송기주
세상에는 남들보다 한걸음 앞선 선구자들이 있다. 타자기 개발자 송기주(宋基周, 1900~?)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일제강점기에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고 상용화를 시도하였다. 그는 미국 유학 중 생물학과 지리학을 공부하면서 한글 타자기 개발에 관심을 갖고 3종의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였다. 1933년 세 번째 타자기를 개발한 송기주는 다음해에 귀국하여 사람들의 열혈한 환호를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우리 고유의 글자인 한글을 입·출력할 수 있는 타자기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에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기대 속에 타자기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송기주의 타자기 사업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송기주는 종로 화신백화점에 타자기 30대를 진열하였는데, 타자기 가격이 집 한 채 값과 맞먹었다. 당시 한글 연구의 본산이었던 조선어학회조차 한 독지가의 기증으로 송기주 타자기를 마련할 정도로 타자기는 상당히 고가였고 한글 타자기를 찾는 사람도 적었기에, 타자기를 상용화할 환경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자 송기주는 1936년 지도 판매 사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가 언제까지 타자기 사업을 이어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38년 일제가 한글 교육을 금지하였으므로 타자기 판매 역시 이 무렵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송기주의 타자기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연구까지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1949년에는 자신의 타자기 글자 모양을 개선하는 데 성공하였다. 한국전쟁 기간에 그는 납북되었고, 송기주가 사용하던 타자기도 전쟁 중 사라졌다.
유일하게 남은 그의 타자기 한 대
송기주의 타자기는 그의 아들 송병훈이 피란길에 대구에서 발견하고 간신히 구입하여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송기주 타자기’가 되었다. 2014년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되어 현재 2층 상설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
송기주는 한글 타자기의 글쇠(키)를 초성 1벌·중성 1벌·종성 2벌(종성은 받침이 하나인 것과 둘인 것)의 4벌식으로 나누어 한글의 모아쓰기를 타자기에서 구현하였다. 글쇠의 수는 42개로 1914년 개발된 이원익(李元翼,?~?)‧이진일(?~?) 타자기보다 절반으로 줄었기에 상대적으로 간편하였다. 송기주 타자기는 공병우 타자기 등 후대 타자기 개발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2019년 7월 25일 국립한글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한글의 기계화’ 코너가 새롭게 정비된다. 더운 여름, 시원한 박물관에서 송기주 타자기를 비롯한 여러 타자기를 통해 한글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보길 바란다.
원고 : 전시운영과 신하영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