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저장소
순한글 잡지 <뿌리깊은나무>
초대편집자, 윤구병
‘기록’의 역사적 가치와 범주가 확장되면서 구술 자료의 가치와 역할도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한글의 역사적인 시대를 함께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구술 기록으로 남기고,
다면적 구술 기록의 수집을 통해 사건을 총체적으로 보존하는 일은 국립한글박물관의 주요한 활동 중 하나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 2015년도부터 한글문화인물 구술기록사업을 통해 구술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한박웃음은 디지털한글박물관에 보관된 구술 아카이브 자료를 요약해 소개하려 한다.
#01 아홉 형제 중 아홉 번째, 윤구병 초대 편집장
윤구병(1943년 출생)은 <뿌리깊은나무>의 초대 편집장으로 현재는 ‘보리출판사’의 대표이며
‘변산공동체학교’의 설립자다. 그는 전남 함평에서 아홉 형제 중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나 “구병”이라 이름지어졌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가 아들만 아홉을 낳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아홉째여서 구병인데,
하나 더 낳으셨으면 뭐라고 이름 붙이셨을지 상상이 안 가요.”
#02 서울대에 진학하고자 우리 고문(古文)을 익히다
아버지는 6.25를 겪으며 여섯형제를 잃은 후 자녀들이 시골의 농사꾼으로 자라길 바랬지만
그는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서울대를 가려면 그때, 제2외국어를 익혀야 하고,
못하는 사람은 그때 아마 제 기억으로는 서양사를 선택할 수도 있고, 그다음에 우리나라 고문(古文),
옛 우리말을 익히면 그걸 제2외국어로 인정해줬어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옛말인 고문을 익혀서 아주 운 좋게 합격을 했죠.”
#03 젊은 시절, 소설가를 꿈꾸며 대학신문 신춘문예에 도전
언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소설가를 꿈꾸고 라틴어, 희랍어 등을 배우며 <큰 사전>을 탐독하기도 했다.
“…제가 한때 소설 지망생이었어요.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대학신문에다가 신춘문예 비슷하게 흉내서
대학신문에서도 그것을 한 것이 있어요. 소설을 하나 써서 보냈는데 1964년 1월 1일로 기억합니다.
당선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오뚜기>라는 작품인데, 그건 그렇고, 저는 소설을 접었으니까…”
#04 한창기 선생의 영향으로 깊어진 우리말글에 대한 관심
이후 <브리태니커>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당시 사장이었던 한창기의 영향으로, 우리말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한글전용잡지 <뿌리깊은나무>의 초대 편집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니까 당시에 <뿌리깊은나무>가 여성지의 곱절도 넘는 발행부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가장 많이 팔리던 여성지가 <주부생활>이었는데 3만 5000부를 찍었는데,
그때 <뿌리깊은나무>는 8만부 이상을 찍었습니다.”
#05 가로쓰기로 배웠으니, 가로쓰기로 책을 내야
“한창기 선생은 당시에 그렇게 생각을 하셨죠.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교육만 시키는 것은,
의무교육으로 시키는 것은 초등학교만 나오면 전부 어렵지 않게 말글살이를 할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니냐.
그리고 그 당시에는 초등학교 교과서는 한글로 전부 가로쓰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06 일체의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뿌리깊은나무>
“우리말만 써도 충분히 그 글을 읽고 우리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사실 한글 전용을 한 것이거든요. 괄호속에 일체 외국어를 안 넣고 심지어 한창기 선생님은
<뿌리깊은나무>가 창간 된 게 1976년이었는데 그것을 아라비아 숫자로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글로 천구백칠십육년. 이런 식으로 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로 쓰더라도 그것을 읽을 때는 우리말로, 우리글로 읽는다.
정직하게 일천칠백구십육년이라고 우리글로 써줘야 한다.
이렇게 앞선 생각을 하신 분이었죠.”
순한글 가로쓰기를 도입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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