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한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랫말에 담는 작곡‧작사가 이호섭
이번 호 ‘반갑습니다’의 주인공은 <짝사랑>, <카스바의 여인>, <찰랑찰랑> 등
제목만 들어도 멜로디가 연상되는 대중가요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사와 구성진 멜로디로 국민의 마음을 달래고 심금을 울린 예술가,
음악으로 귀를 사로잡는 이호섭 작사가를 만나보았다.
반갑습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한글의 소중함을 같이 공유하고, 한글에 대한 소식을 알리며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한박웃음>에 초대되어 기쁩니다. 저는 작사가로 가요계에 발을 들이고, 작곡가로 활동하며 TV와 라디오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호섭입니다.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함께 힘을 합쳐 이겨내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작곡가로 데뷔를 하려다 5년간 부침을 겪으며 데뷔하지 못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찮은 기회로 작사가로 우회를 했는데 그것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됐습니다. 가수 문희옥 씨의 <사투리 디스코>로 이름을 알리고, 설운도 씨와 많은 히트곡을 제작하며 사랑을 받은 덕분에 음악계에서 자리를 잡고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작사, 가요의 노랫말, 한글의 소중함을 많이 느끼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사라고 하는 것은 대중가요를 만들어 내는 틀, 즉 설계도라고 보면 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설계도에서 모든 건축물의 양식과 골조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훌륭한 노랫말 속에는 저절로 떠오르는 멜로디가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작품의 노랫말을 만들 때 적어도 3~4시간, 경우에 따라서는 며칠에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 작사라는 설계를 토대로 하여 작곡가는 뼈대를 세우고, 가수는 그 위에 감정과 기교를 넣어 새로운 살을 붙이는 것이죠.
말 그대로 다양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영감을 얻고,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소설이나 영화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현미 씨와 가사를 작업한 <잠깐만> 같은 경우에는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을 녹였어요. 젊은 시절 언젠가 동네의 한 신혼부부가 격렬한 다툼 끝에 서로에게 험한 말을 늘어놓더군요. 그들을 보며 ‘서로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을 텐데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 찰나의 순간, “이거 보세요 잠깐만!” 하면서 머릿속으로 영감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본 장면 그대로 ‘잠깐만 그 발길을 다시 돌려요. 만날 때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헤어질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되어요’ 이야기하는 가사가 탄생했죠. 만남에는 헤어짐도 있게 마련이지만, 돌아설 때 아름다운 것이 필요하다는 말에 대중이 공감해준 것 같아요.
그런데 가사라는 것이 영감을 풀어내는 과정이라서 그럴까요? 술술 풀리지 않고 오랫동안 막힐 때도 있어요. 과거 당대의 톱 가수였던 박남정 씨 회사에서 저에게 가사를 의뢰했어요. 그런데 부담감을 가지고 작업을 하다 보니 오히려 가사가 안 써지더군요. 오랜 시간 고민을 이어가던 중 TV를 틀고 뉴스를 본 순간 “중공군의 민간 항공기가 우리나라 모 공군기지에 불시착했습니다”라는 속보가 나왔어요. ‘불시착’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꽂히면서, ‘그래 비행기만 잘못 떨어지라는 법 있냐’고 생각하며 10분 만에 가사를 완성했어요. 당시 ‘불시착’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어감이 강한 표현이라 제작사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설득을 통해 음반을 발매했고, 그 결과 크게 히트를 치며 많은 사랑을 받았죠.
작곡했던 작품 중에는 <카스바의 여인>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 작품은 영화 <망향>을 보고 받은 감명을 녹여냈어요. 도둑으로 나오는 주인공 장가방이 모로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카스바로 몸을 숨겼다가 거기에서 만난 여인을 사랑하며 결국 자수를 하는 엔딩을 보며 저절로 멜로디가 떠올랐어요. 사실 누구나 멜로디나 가사가 떠오른 적이 있을 텐데요. 작사가들은 이것을 영감으로만 흘려보내지 않고 음계로 옮겨 재현해내는 예술가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누에가 뽕잎을 먹었다고 뽕잎을 배출하나요? 비단실을 배출하잖아요. 그 경험이 작품이 될 수 있도록 내 안에서 정리하고 순화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좋은 가사를 쓰기 위해서는 네 가지 구조가 있어야 해요. 첫 번째 인물의 캐릭터, 두 번째 인물이 존재하는 시공간 즉 무대, 세 번째는 인물이 진행해나가는 극적 스토리 즉 사건, 네 번째는 공감적 결말이에요.
작사에는 아름다운 미사여구보다 은유나 비유 같은 함축성이 필요해요. 가사에 인물의 사연을 다 담아내야 하거든요. 또 너무 구체적이고 특정 대상을 명기하기보다, 마치 거푸집을 지은 것처럼 많은 것을 표현하면 좋아요. 여기에 서사적인 구조까지 더해지면 대중들은 ‘마치 내 사연을 담은 것 같아’라고 공감하게 됩니다.
1994년도부터 KBS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는데요. 일 년에 한두 번 가량 해외 공개 방송을 제작합니다. 사할린, 연해주, 중국,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우리 동포들이 있는 곳이죠. 방송 전후로 약 2일간 여가 시간이 나는데, 저는 그때 우리 한글을 가르치는 어학당이나, 한국문화원, 세종학당 등으로 찾아가요. 그리고 그곳에서 제 본업을 살려 노래를 통해 한글을 재미있게 배우는 방법에 대해 강의를 해요.
일하다 남는 시간에 관광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을 거란 생각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인연이 닿은 학생들이 발전하는 모습, 배움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만족감이 들더라고요. 외국에 나가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되는 거잖아요. 이런 작은 나눔으로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만간에 대중가요에 관련한 책을 출판하려 합니다.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다 전문성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죠. 대중가요를 창작하는 작사론, 또 가창법에 대한 집필을 끝나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이에요. 이를 준비하던 와중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저를 두 번이나 초대해주셔서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는 5월 개막하는 올해의 첫 기획전시 <대중가요 노랫말 이야기>에서도 저를 만나볼 수 있을 거예요. 전시에서는 어떻게 작사와 작곡을 하고, 또 어떤 과정으로 노래로 탄생하는지 다뤄질 것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전시실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웃음)
기나긴 세월 동안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내 아픔과 서러웠던 경험이 결국에는 ‘근심을 털어놓고 다함께 차차차!’ 하는 가사를 만들었고, 국민을 위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한글은 제 마음을 국민에게 전하는, 또 노랫말로 만드는 매개체에요.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