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문화와 말이 달라도 사랑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어요” ‘이탈리아 밀라노 댁’ 방송인 크리스티나를 만나다
사랑하는 남편을 따라 지구 반 바퀴를 날아온 방송인 크리스티나.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독특한 억양과 엉뚱 발랄한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그녀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알고 있는 한글이라고는 ‘삼겹살’이 전부였던 그녀가
한국 거주 외국인들을 위해 일하게 되기까지의 세월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14년차 ‘파란 눈의 한국인’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입니다. 제가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지금의 남편 때문이었어요. 이탈리아 밀라노에 성악 공부를 하러 유학을 온 남편과 저는 언어 학원의 스승과 제자로 만났죠.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을 때 저는 벨기에 브루쉘에 있는 유럽연합(EU)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일과 사랑 중, 결국 사랑을 선택해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사실 한국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중국하고 일본 중간에 있는 나라라는 것만 알았죠. 아는 한국말이라고는 ‘삼겹살’뿐이었고, 일자리 찾기도 어렵고, 완전히 다른 나라·다른 문화였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저한테는 더 중요했어요. 제가 뒤돌아보고 후회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종종 여전히 신혼 같은 저희 부부에게 그 비결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는데요, 문화와 말이 달라도 사랑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답니다.
한국의 첫 인상에 대한 기억은 ‘정말 깨끗하고 빠른 것을 좋아하는 나라’였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절했지만 어디론가 급하게 가고, 바쁘게 사라지더라고요. 마트에 가도 ‘빨리빨리’, 관공서에 가도 ‘빨리빨리’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적응이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너무나 익숙해요. 지금은 오히려 이탈리아에 가면 그 여유로움에 답답함을 느낄 정도랍니다. 한국 사람이 다 된 것 같네요.(웃음)
그렇지만 처음 한국 왔을 때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낯섦’이 서려있다고 느꼈어요. 동양인이 아닌 저를 ‘다른 생명체’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그때와 달라요.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외국인들을 자연스레 바라보고, 외국인들이 나오는 방송이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 했죠. 지금은 한국 특유의 ‘정(情)’이 더해져 포근하고 편안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제가 결혼을 한지 벌써 14년이 흘렀는데, 여전히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결혼을 하면 당연히 분가를 하는 게 익숙해서 초반에는 어색한 점이 많았지만, 이젠 너무 익숙하고 편안해요. 저와 남편은 이탈리아어로 대화하고, 시어머니와는 한국어로 대화를 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배웠죠. 시어머니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셔서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진지를 잡수셨느냐’나 ‘존함이 무엇이냐’ 등의 단어는 외우기가 조금 힘들었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좋은 공부법은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 역사와 전통을 인정하는 거예요. 존중하고 인정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마음이에요.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그 순간 가까운 곳에서 소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을 거예요. 한국에 정착했을 당시 저는 ‘한국의 돌려 말하기 화법’에 대해 적응하기가 어려웠어요. 예를 들면 바로 ‘싫다’고 말하지 않고 ‘유감스럽게도, 미안하지만, 다음에’ 등 에둘러 표현하는 것들이요. 하지만 이젠 이 모든 것이 한국인 특유의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됐죠.
또한 한국말, 그리고 한글을 배우고 싶다면 무조건 한국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조언해 주고 싶어요. 집이나 어학당에서 책으로만 배우는 언어는 분명히 한계가 있거든요. 한국인들과 모임 등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된다면 언어 성취도도 함께 상승할거라 생각해요.
이탈리아어는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어 한글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요. 인칭별로 동사 변화가 다르고, 남성형과 여성형이 다르며 불규칙한 동사도 적지 않으며, 복수 단수에 따른 문법변화도 있죠. 반면 한글은 소리글자잖아요. 한글을 배울 때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오리의 울음소리를 ‘꽥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었어요. 처음 그 표현을 배웠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답니다. 이런 차이점이 있지만, 한글과 이탈리아어 표기법의 공통점은 말하는 가운데 상대방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부분 아닐까요.
이탈리아에 있을 때만 해도 제가 방송에 출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방송에 출연하게 됐고, 더 많은 기회를 만났죠. 이것이 방송 출연을 하면서 얻은 가장 값지고,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의 대학교에서 국제법도 가르쳤고,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장으로 7년간 근무하며 다문화가족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한국인도 이탈리아인들도 인종은 다르지만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느꼈어요. 국가와 문화, 언어는 다르지만 분명 ‘틀림이 아닌 다름’에서 오는 소통이 분명 존재하는 구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이심전심’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처음 한국에 와서 시어머니에게 배운 말이에요.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 그런 뜻이라고 들었어요. 좋은 생각으로 시작하면 상대방도 저한테 좋은 생각을 가지고 오지 않을까, 잘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말의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네요.
지난 1년 반 동안 미국 샌디에고대학(UCSD)에서 동아시아 국제정세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제 어릴 적 꿈이 국제단체에서 일하는 것이었는데 그간 한국에 와서 방송도 하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제가 하고 바라던 것을 잠깐 잊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제가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