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처음이지? 조합의 신비함 담긴 한글 글쓰기 오오쿠사 미노루(일본), 오오쿠사 노리코(일본)
오오쿠사 미노루, 오오쿠사 노리코 부부는 일본의 대도시 요코하마에서 나고 자랐다.
약 375만 명의 인구가 살아가는 대도시에서 미노루와 노리코를 만나게 한 것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었다.
둘 모두 어릴 적부터 국제교류에 관심을 가졌고, 세계 각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 한국어와 한글을 배웠다.
2003년 첫 만남이후 인연을 이어가 2018년 결혼한 뒤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부의 한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웹진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오쿠사 미노루입니다. 어느덧 한국에 터를 잡은 지 9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제 아내 노리코는 이제 한국 생활 3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일본인 부부가 한국에 자리를 잡은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텐데요. 현재 온오프라인으로 한국인에게는 일본어를, 일본인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 내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引き籠もり)’들이 자신을 가둔 문을 열고나올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스무 살 때 처음 한국어를 접한 뒤 약 25년의 세월동안 사용해왔습니다. 전 항상 ‘배웠다’고 표현하기보다 ‘사용한다’고 말하는데요. 원체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실제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게 된 것은 제 주변인들과 드라마의 공이 컸습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한 뒤 인형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한국으로 자원봉사 인형극 공연을 하러 온 것이 첫 방문이었습니다. 한국에 대해 막연한 관심을 가진 저에게 선배들은 “그럼 네가 한글담당자 해볼래?”라고 제안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책도 사고 열심히 배워서 멤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아내 노리코 또한 국제교류 활동을 통해 한국을 만나게 됐습니다. 대학생 때 2주간 자원봉사를 한국으로 나오게 됐고, 이후 프랑스, 동티모르, 부탄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유난히 한국인 혹은 재일교포와 친해졌다고 하네요. 그러던 와중 아내는 친구와 합심해 신주쿠코리안타운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기획했는데요. 제가 신주쿠 한일교류회 창립멤버로 합류하게 되면서 운명이 엮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무대 스태프로 일하던 저는 축제를 마친 뒤 큰 감명을 받고 무작정 워킹홀리데이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수중에 지닌 돈도 없던 시절이라 종로의 한국어 학원은 채 한 달밖에 다니지 못했고요. 2004년 봄, 창문 없는 고시원이 답답해 한국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녔고, 밤에는 서너 시간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며 실력을 키웠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 ‘MSN메신저’ 등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니 지금은 일본어보다 한국어 타자 속도가 더 빠른 지경입니다.
한글을 처음 봤을 때, 동그라미나 네모 등의 기호처럼 보이기에 암호를 쓰는 것 마냥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공들여 배우면 금세 읽고 쓸 수 있기 때문에 문자를 배우는 재미도 느낄 수 있고요. 노리코는 한 시간 만에 읽고 쓰기를 떼고 이름을 적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다만 어릴 적부터 한자를 배운 일본인이기에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하지만 뜻을 모른다는 게 조금 답답했습니다. 대만이나 중국을 방문하면 현지의 글자를 읽지는 못하더라도 뜻을 알 수 있어요. 한자와 한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한글을 디지털 기기에 입력하는 것도 신기함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글로 타자를 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자음과 모음이 ‘탁탁’ 조합되어 하나의 글자로 만들어지는 모양새도 인상 깊었죠. 한글은 조합에 강점이 있는 문자인 것 같아요. 지금은 ‘쿼티(Qwerty)’ 자판이 대세이지만, 이전 세대가 사용하던 ‘천지인’ 자판의 조합법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달리 아내는 한글로 글쓰기를 가장 어려워하는데요. 일단 일본어에는 받침이 없기에 받침을 어디에 써야 하고, 어떤 받침을 적어야 하는지 헷갈려합니다. 때문에 아내가 한국에 정착했을 때 집안에서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휴대폰 문자는 한글로 쓰는 방법으로 연습했습니다. 아내의 한국어 실력이 많이 향상됐던 시기에요.
한글의 난해한 점을 꼽으라면 모양이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인데요. 예전에 기부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중 기부 전화번호 옆에 ‘장기 지원’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와 “우리 몸 속 장기를 기부하는 것도 모집한다고?”하며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무언가 이상해 유심히 살펴보니 ‘장기’가 아닌 ‘정기’였습니다. 또, 최근에는 ‘한글+한자’, ‘한글+영어’ 등으로 이뤄진 신조어나 인터넷 용어들이 너무 많아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기 어려워요. 아무래도 외국인이기에 어떤 부분이 영어고 한국어인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약간의 어려움이 있지만,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저희 부부에게 무척 즐거운 일상입니다.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있고, 앞서 소개한 것처럼 8년 전부터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은둔형 외톨이는 일본에서 꽤 오래된 사회문제인데 한국에서도 점차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자녀를 안타까워하는 부모님이나, 스스로 벽을 깨고 나가고 싶어 하는 분들을 돕고 있지만, 설득에 성공하지 못하는 비율이 더 높을 정도로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열심히 저희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사회 문제에 관심과 또 한글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시길 바라면서 편지를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