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9월 경복궁 근정전 앞,
우리나라 전통의 미를 한껏 뽐낸 BTS의 무대에서
그들의 무대 의상인 한복 정장이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한복에 대한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깬 이 이색적인 한복 디자인은 바로 김리을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세계가 한복과 한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를 기획하는 사람,
디자이너 김리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복 원단으로 정장을 만들고 있는 디자이너 김리을입니다. 저는 엄밀히 말하자면 한복 디자이너는 아니에요. 저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제 생각을 표현하면서 사는 사람이죠. 그래서 ‘디자인하다’의 뜻도 ‘김리을의 눈으로 바라보고 김리을의 방식대로 표현한다’라고 새롭게 정의해요. 제 본업은 광고회사 프로덕션 운영인데요. 광고 역시 저만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표현을 해요. 한복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한복 디자이너보다는 한복으로 정장을 만들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한복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와 한복 정장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학창 시절을 전주에서 보냈는데요. 전주에는 한옥마을과 더불어 한복을 대여해주는 시장이 있어요. 제가 하루는 외국인 친구한테 “너는 한복을 왜 대여하니?”라고 물어봤더니, 그 친구는 “한복 원단은 정말 예쁜데 불편해”라고 답하면서 저 역시 “한복을 안 입지 않냐”며 역으로 질문을 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전통 한복을 21세기 사람들에게 입히면 불편한 게 당연하잖아요. 반면 외국인들은 정장이라는 걸 19세기부터 만들어서 지금까지 입고 있고요. 그런데 한복 원단이 예쁘다고 하니 이 둘을 합쳐 한복 원단으로 정장을 만들게 된 거죠. 그리고 이 옷을 홍보하기 위해 흑인 모델이 곰방대를 물고 갓을 쓰고 있는 화보를 촬영했는데 이 사진이 누리소통망에서 ‘좋아요’를 일주일 만에 2만 개 정도 받았어요. 유명 신발 브랜드로부터 마케팅 요청을 받고 모델 한현민 씨와 화보를 찍은 것도 이 화보 덕분입니다. 이후로도 다수의 신발 광고를 촬영했고 시간과 비용에 여유가 있을 때마다 한복 정장을 꾸준히 만들고 있어요.
한복 정장은 아예 없었던 디자인이었어요. 2016년, 그러니까 제가 24세 되던 해에 만들려고 했더니 다들 말리더라고요. 그래서 한복 원단과 제가 가진 정장을 들고 3개월 동안 무작정 여러 공장을 찾아다녔어요. 대부분 안된다고 했는데, 운 좋게 한 장인께서 제 디자인대로 만들어주셨죠.
의류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아서, 제가 디자인한 옷을 직접 판매하진 않았습니다. 광고업을 주로 하면서 배운 마케팅 비결을 가지고 7년간 혼자 리을이라는 브랜드를 홍보했죠. 한복 정장을 디자인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한 분들이 그 옷을 입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물놀이를 공연하는 김덕수 선생님, 래퍼 타이거JK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분들이 입어주셨죠. 곳곳에서 계속 찾아주셨고, 각자에게 맞는 원단을 찾아 디자인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계속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복과 한글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과 이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가님만의 방식에 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딱히 정해진 건 없어요. 저는 한복 원단으로 21세기 옷을 만들고 화젯거리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죠. 저는 자신을 스스로 ‘문화를 기획하는 기획자’라고 생각해요. BTS가 제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경복궁에서 한 무대를 예시로 들자면, 외국인 팬들이 그 공연을 접한 뒤 자연스럽게 한복 원단과 한복에 관심을 두겠죠. 이어 나비효과처럼 전통한복에 관해서 이야기하게 될 거고요. 저는 이처럼 한복에 대한 기본적인 본질은 그대로 두되, 생각은 자유롭게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김리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 브랜드 이름 역시 ‘리을’인데요. ‘리을’이라는 한글 자음을 활동명으로 사용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해외를 돌아다녀 보니까 외국인들이 갤럭시 핸드폰을 정말 많이 쓰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괜히 “이 핸드폰은 한국 제품이야”라고 말하고 옆에 국내 브랜드 자동차가 지나가면 “저것도 한국 제품이야”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저 역시 한복 원단으로 정장을 만들어서 외국인들에게 입힐 건데, 브랜드 이름이 한국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핸드폰을 잘 만들면 그 브랜드가 화제가 되는 것처럼 제 옷이 알려지면 제 브랜드 역시 화제가 될 테니까요.
외국인들도 훈민정음이 위대한 문자라는 건 많이 알지만 정작 기역, 니은, 디귿을 보여줬을 때, 이게 훈민정음이라는 건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영어보다 많이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를 활용했어요. 숫자 ‘2’를 보여주면서 “이건 숫자 2가 아니다. 훈민정음의 리을이다”라고 알려주면 자연스럽게 리을이라는 한글이 대화의 주제가 되죠. 그래서 브랜드 이름을 ‘리을’이라고 지은 거예요.
작가님이 세계에 알리고 싶은 ‘한글’의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글의 구체적인 특징을 직접 강조하기보다는 세계가 한글에 관심을 두도록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제 브랜드 이름 ‘리을’을 보고 이탈리아 사람이든 프랑스 사람이든 자연스럽게 한글에 관해서 이야기하게 되겠죠. 그러다 보면 한글 지식을 하나둘 알게 될 거고 관심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한글도 더 많이 알려질 것으로 생각해요. 저는 그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브랜드 이름이 곧 훈민정음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나비효과’ 같은 역할을 기대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한복과 한글과 관련해 앞으로의 작품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활용한 디자인
(출처: 김리을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계정)
리을을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요. 예전에 3·1절을 기념하고자 신발에 태극기의 ‘건곤감리’ 무늬를 활용해 디자인한 적이 있거든요. 이처럼 앞으로 리을이란 브랜드를 키워 한복과 한글을 넘어서 한국적인 걸 저만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글은 제게 그냥 ‘한글’ 그 자체예요. 많은 분이 저에게 한복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종종 물어보시는데, 그때마다 한복은 그냥 한복 그 자체라고 말씀드리거든요. 한글도 마찬가지죠. 제가 한글을 상업적으로 바라보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가치가 변질할 것 같아서 한글은 한글 그 자체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