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을 입은 김중섭 교수가 팔짱을 낀 상태로 비스듬히 서 정면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뒤에는 컴퓨터 모니터와 빼곡하게 꽂혀있는 책장의 책들, 상패 등이 보인다.

반갑습니다 “한글은 한국 문화의 정수가
담긴 보물” 김중섭 교수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 또한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생소한 글자와 언어인 만큼 올바른 교육 또한 중요하다.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30여 년간 한글과 우리말을 가르친 사람이 있다.
반갑습니다 2월호에서 김중섭 교수를 만나본다.

첫 교육생은 2명,
현재는 80여 나라에서 5천여 명 찾아

인터뷰어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이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중섭입니다. 현재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교육하는 국제교육원의 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대학에서 협력 운영하는 라로셸 세종학당장도 겸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어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으로서 30년 넘게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글과 우리말을 가르치고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이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터뷰이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일종의 소명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경희대에서 국문과를 졸업하고 석박사 과정에서 국어학을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 대학이 워낙 아름답다 보니까 1980년대부터 외국인들이 학교 관광을 많이 왔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 대학에는 한국어 프로그램이 없었는데요. 저는 우리 대학을 찾은 외국인들이 학교만 둘러보고 떠나는 것이 아쉬웠고, 그들에게 한국을 더 알리고 싶었습니다.

정장을 입은 김중섭 교수가 자리에 앉아 양팔을 벌리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앞엔 컴퓨터 모니터와 물병, 서류들이 놓여있으며, 뒤의 책장엔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다.

그래서 학교에 한국어 프로그램 개설을 제안했고, 1993년에 처음 개설됐는데요. 당시 자매학교인 영국의 한 대학교에서 온 교환학생 두 명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교육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연간 80여 나라에서 온 5천여 명의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국어학자로서 연구를 하다가,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국어 선생이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인터뷰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외국인들을 가르쳐온 분으로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인터뷰이

한마디로 감개무량합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한류로 인해 ‘K-Pop’, ‘K-드라마’, ‘K-댄스’ 등 다양한 한국 문화가 외국인들 눈에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런 현상들, 더 나아가서 우리 언어를 배우고 한국에 살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을 볼 때 당연히 자랑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또 이렇게 한국과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외국인이 계속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한국인들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

외국인 교육생들에게 한글과 우리말을 가르치실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가요?

인터뷰이

처음엔 우리 언어와 문화 교육에 대한 인식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죠. 당시만 하더라도 교재, 교육법, 관련 연구 등이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이 독창적인 문자인 한글을 낯설어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는지 교육 방법을 몰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교육과정과 그에 맞는 교재가 잘 갖추어져 있고, 교육법에 관한 연구도 축적되어 있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요새 저는 한국 문화를 효과적으로 잘 가르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본적인 한국 문화가 아니라 현대 한국인들의 인식과 사고 체계, 생활 방식 등 다양한 측면을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언어를 통해 이해시킬지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제는 증강현실이나 인공지능 기반의 교육 방법에 관한 연구도 본격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

외국인 교육생들을 가르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요?

인터뷰이

이 일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어서 다양한 일화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국어를 언어로만 배우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한국어 교육’을 전공으로 정해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학습자의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깊어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한글날 경축식에서 정장을 입은 김중섭 교수가 자리에 앉아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뒤엔 여러 사람이 서 있다.

제가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초기에 ‘한국어 도우미 제도’를 처음 만들어 운영 중일 때의 일입니다. 한국어 도우미는 외국인들의 학습과 생활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는데 모두 우리 재학생들로 구성됐었죠.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유학생의 대부분이 동남아나 중국 학생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다양한 국가에서 학생들이 오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그랬겠지만, 동남아 학생들의 도우미 재학생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세계에 대한 우리 학생들의 인식이 높아져서 한국어 도우미 제도를 운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가장 기분 좋은 것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학생들이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간혹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경우도 봤는데 매우 흐뭇했습니다.

또한 학문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운 제자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교수로 임용되었을 때 무엇보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인도라든지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등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한국어 교육 전공을 마치고 모국에서 한국어 강사로 시작해, 나중에는 한국어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왔을 때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신조어와 줄임말은 소통 수단
하지만 표준말에 대한 이해가 우선

인터뷰어

최근 신조어나 지나친 줄임말 등 한글 파괴 현상이 화두에 오르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글과 우리말을 교육하시는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인터뷰이

당연히 어려움이 많지요.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다 보니까 한국인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신조어나 줄임말들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표준말을 기본으로 하되 최근에 많이 쓰이는 신조어라든지, 아주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의 줄임말 정도는 가르쳐 주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외국인을 위한 신조어 사전의 개발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소통 수단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확하게 표준 한국어에 대한 의미를 이해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어

지난해 한글날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한글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인터뷰이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에 한글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평생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친 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 보람도 느꼈고요. 물론 상을 못 받았다고 해도 제가 한국어 선생으로서 30년간 해 온 역할과 노력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묵묵히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열심히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님들께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오늘날처럼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융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한글날 경축식에서 한글 유공자로 선정된 김중섭 교수가 오른손엔 표창장, 왼손엔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인터뷰어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인터뷰이

아무래도 한국어 교육 연구를 계속하지 않을까요? 외국인들이 쉽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재라든지 전문 도서 출판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한국어 교재로는 베트남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유사 문법 교재가 있는데, 베트남인 교수와 협업해서 거의 마무리 단계 있고, 개인적으로 베트남 대학생을 위한 범용 교재를 구상 중입니다. 또 일본인 고급 학습자를 위한 독해 교재도 일본 출판사와 논의해 개발 중입니다. 아마 올해 안으로는 모두 완료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어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이

한글의 일반적인 의미는 세종대왕께서 이미 잘 설명해 주셨으니 생략하고, 저는 외국인과 한국인과의 소통 창구로서 한글 속에 한국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말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가 가진 좋은 가치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글은 한국 문화의 정수가 담긴 보물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보물을 세계화 시대에 맞게 잘 다듬고 가꾸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 김중섭 교수)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