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억 교수
한글 유물 기증으로 꽃피운 한글 사랑
이상억 교수
평생 대학에서 한국학과 국어국문학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알리기 위해 힘써온 이상억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립한글박물관과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2011년, 집안 대대로 내려온 한글 자료 기증을 시작으로
총 8회에 걸쳐 한글 유물을 기증하며
한글 보존과 연구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글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 이상억 교수님을 만나
기증 유물에 얽힌 이야기와 한글의 독창적인 디자인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온 자료들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흔쾌히 기증하다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 교수로, 한국학과 국어국문학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한박웃음 독자분들과 한글을 인연으로 만나게 되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글 시 백일장에서 1등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국어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1969년부터 외국인 학생을 가르치면서 영어를 쓰게 되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국무성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또, 박사 논문은 미국에서 한국 고서를 제일 많이 소장하고 있는 하버드 옌칭연구소의 박사 연구비 지원을 받아 준비했습니다. 그 뒤 한국의 고려대, 서울대와 호주 국립대, 시드니대 및 독일 뮌헨 및 베를린 공대와 UCLA에서 한국어를 연구하며 가르치려 노력해 온 세월이 반세기를 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개관 이래 2011년부터 2024년까지 총 8회나 소중한 한글 관련 자료를 국립한글박물관에 기부하셨습니다. 자료 기증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집은 순 토박이 서울 집안으로, 삼각동에 살던 집이 ‘남산골한옥마을도편수 이승업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한글박물관이 창설 준비를 하던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유물을 백 점 가량 기증하려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직원분들이 유물을 운반하기 위해 우리 집에 방문했었는데, 그때 25점은 한글과 관계가 있으니 국립한글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하여 그리 보내고, 증조부 초상화 등 75점만 국립중앙발물관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유물들을 정리하면서 작은 소반 밑을 보니 우리 집 동네 이름이 한글로 ‘삼각뎡(정)’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잔치 때 근처 댁에 한 상 차려 보내면 나중에 어디에서 보낸 것인지를 알아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소유자의 옥호를 표시한 것입니다. 또, 송홧가루 등을 넣고 눌러 다식을 만들던 나무 다식판 옆면에 ‘순화궁’이라는 한글 옥호가 쓰여 있는 것도 집에 남아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기증하신 김동훈 5벌식 타자기는 초창기 타자기 역사에 있어 중요한 자료 중 하나입니다. 김동훈 5벌식 타자기에 대한 소개와 함께 타자기와 얽힌 개인적인 사연이 있으시다면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5벌식 타자기는 아버님 회사에서 쓰던 것을 집에 보관하다가 한글박물관에 적합한 전시물이 될 것이라 생각해 기증했습니다. 타자기에 관한 관심은 『한국어문의 제문제』(1983, 일지사)라는 책에 7장 ‘문자생활의 기계화로의 길’을 담당하게 되면서 시작됐고, 당시 공병우 박사의 3벌식 타자기와 표준자판 4벌식, 김동훈 5벌식 등을 비교하는 논문을 썼습니다. 공병우 박사는 새로 발명된 개인용 컴퓨터 사용에도 선도적 역할을 하시면서 본인에게도 한 대를 사용하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한국에서 처음 몇십 번째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공병우 박사의 그간 활동을 기록하는 홍보물과 논설 등을 계속 받았었기에, 1924년에 정리하면서 일체 문서 역시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기증하신 자료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자료가 궁금합니다.

저의 부친이시자 서울 토박이이신 이영우 님의 원 녹음을 담은 디스켓 열네 장을 수장 목록에 추가해 기증했습니다. 이는 『서울말 연구 2권』에 정밀 전사하여 수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집안의 최고령이자 녹음 당시 104세 최영자(이영우의 이모)여사의 녹음도 카세트테이프에 남아 있어서, 장래 추가 연구를 위해 보존하도록 기증했습니다. 이들이 제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자료입니다. 다른 관람객들도 우리 인근에 있는 언어 자료가 귀한 연구 대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잘 보존하면 좋겠습니다.
▲ 이영우 서울 토박이의 녹음이 담긴 디스켓
<음성 자료 백업> 14장

교수님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시는 일을 오래전부터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신 특별한 계기와 한국어를 가르치실 때 어떤 점을 중점에 두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1969년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문화와 한국어 공부에 필요한 한자를 영어로 가르치는 강사 겸 조교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1972년, 태풍 리타와 베티의 영향으로 전국적 수재가 심각했는데, 그때 ‘Alka’라는 인도 여학생이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연기하는 연극을 올려 수재민들을 위한 성금을 마련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정부 외교, 교육, 문화 3부처의 지원을 얻어냈습니다. 그렇게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 대사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대사를 가르칠 때는 말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도 함께 이해시키면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17개국 출신의 외국인 37명을 연습시켜 한국 최초로 외국인의 한국어 연극 ‘춘향전’을 조선호텔 그랜드볼룸 무대에 올렸습니다. 이 공연은 한국일보 소극장에서도 2회 상연하며, 한국일보 연말 연극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인에게 한글을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는 지금처럼 한글과 한국어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지 않았습니다. 1980년, 호주 국립대에서 남반구 최초 한국어 과정을 개설했을 때만 해도 수강생 모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남반구 최초의 한국어 강의'라는 기치만 들고 고군분투해야 했습니다. 그런 시절을 지난 지금, 세계 각국에서 한국어 과정 입학 지원자가 줄을 서 있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만큼, 오늘날의 한국어 강사들이 한글과 한국어를 알리기 위해 힘썼던 선구자들의 노고를 되새기며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수직, 수평선으로 이루어진 한글 안에
숨겨진 디자인적 비밀을 파헤치는 재미가 있어

언어학자로서 보시기에, 다른 글자와 구별되는 한글만의 독창성과 우수성은 무엇일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글은 기본요소인 선, 수직, 수평, 사선과 곡선으로 된 원을 활용한 최고의 디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할 당시 상황을 상상하며 실제로 백지 위에 획을 어떻게 그셨을지 추측해 보았습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한글 안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보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좌측 사진은 중앙에 ‘ㄱ’부터 ‘ㄴ’, ‘ㄷ’, ‘ㄹ’ 가나다 순서대로 디자인한 것입니다. 만약 세종대왕께서 ‘ㅁ’과 ‘ㅂ’ 다음에 ‘曰’로 제자 하셨더라면 네모 틀 안에 넣기 어려웠겠지만, ‘ㅍ’ 모양을 택해 네모 안에 다 그려 넣을 수 있었습니다. 세종대왕도 모르셨을 것 같은 한글의 숨은 디자인의 정체성은 수직선과 수평선의 일사불란한 조합에서 잉태된 것입니다. 또한, 자음 중 나머지 ‘ㅅ’, ‘ㅇ’, ‘ㅈ’, ‘ㅊ’, ‘ㅎ’은 사선과 원이 포함되어 있어 위의 한 형상에 다 집약해 넣을 수 있습니다. 이 형상은 또 다음 단계인 모음의 비밀을 열 수 있는 열쇠 구멍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모음의 경우 그림 내부 중앙의 열쇠 모양 도형에서 모든 모음 자형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차례대로 획을 구성해 보면 마치 열쇠와 같은 모습 속에서 모든 가능성이 나와 방사선 모형으로 동심원을 이룹니다. 한글만이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독창성을 생각해 보면 한글은 정보전달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디자인적으로도 아주 뛰어난 문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립한글박물관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교수님께서 박물관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투리 전체를 철저히 빠짐없이 연구하려면 표준어의 바탕이 되는 서울말 사투리 즉, 서울 지방 토착어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말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서울 토박이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서울 사투리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작년에 ‘사투리는 못 참지!’ 전시를 한 번 준비하였는데, 앞으로도 서울 사투리에 관한 연구를 손 놓지 않고 잘 이어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