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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이모저모 사진. 연한 보라색 배경이다. 총 8명의 남녀가 두 줄로 정렬되어 서 있다. 모두 눈을 감고 있으며 국화를 한 송이씩 들고 있다. 엄숙한 분위기이며 추모하는 이미지이다.
한글 이모저모
훈민정음 연구에 평생을 바친 국어학계의 큰 별,
강신항 명예교수님을 기리며
한글 이모저모

훈민정음 연구에 평생을 바친
국어학계의 큰 별,
강신항 명예교수님을 기리며

국어학계 원로 교수이자 훈민정음 연구의 선구자인 강신항 명예교수님이
지난 2월 18일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하셨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2016년 한글문화인물로 강신항 교수님을 선정하고,
한글문화를 빛낸 교수님의 삶과 업적을 녹취와 영상을 통해 기록한 바 있습니다.
교수님은 연구자로서 훈민정음과 한국어 음운사 연구 등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남겼고,
교육자로서도 수십 년간 학생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 삶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번 특집 기사에서는 강신항 교수님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되짚어보며
교수님의 한글 연구 업적과 정신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국어학자로서 학문에 매진하며 묵묵히 걸어온 삶

국어학계 원로 교수들이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첫 상설전시를 관람 후 찍은 기념사진이다. 
                                양복을 입은 10명의 교수가 국립한글박물관의 ‘세종대왕 한글문화 시대를 열다’ 전시장 앞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2014년 9월 19일 국어학계 원로 교수들과 함께 국립한글박물관 상설전시 관람 후 기념사진.
강 교수님은 왼쪽에서 다섯 번째, 검은색 정장 차림.
왼쪽에서부터 홍윤표, 이익섭, 이병근, 남기심,
고 강신항, 고 이기문, 고 성백인, 남풍현, 고영근, 송기중 교수

1930년 5월 8일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에서 태어난 강신항 교수님은 서울고등학교 재학 시절 국어학자 남광우 선생의 권유로 1949년 9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며 학문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한국 전쟁이 벌어진 1950년에는 군무원으로서 전사편찬회에서 전시의 역사를 편찬했습니다. 1951년부터 전시연합대학에서 수업을 받았으며 대학 시절, 위당 정인보 선생의 딸인 정양완 선생(훗날 강신항 교수님 사모님)과 ‘7인방’(이기문, 김완진, 이승욱, 정연찬, 안병희, 김열규)이라 불리는 국어국문학계의 뛰어난 학자들을 만나 교류하였습니다.
1953년 대학을 졸업하신 후에는 공군 장교로 임관하였으며 1957년에 전역하신 직후에는 모교인 서울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는데, 생전에 서울고 국어 교사였던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교수님은 덕성여자대학교에서 처음 강사 생활을 시작하였고, 1964년부터 1995년까지는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또한 국어학계의 대표 학회인 국어학회장을 지내고 성균관대학교의 대동문화연구원장, 박물관장, 중앙도서관장, 교학처장, 대학원장을 역임하며 학자와 교육자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로서 퇴직 후에도 꾸준히 연구 활동을 하고, 난정학술상 운영위원회 위원장, 일석학술재단의 이사장을 맡으며 후학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왔습니다.

훈민정음 연구 업적을 집대성한 국내 첫 연구서 《훈민정음 연구》

강신항 교수님은 누구나 인정하는 훈민정음 연구의 권위자로서, 학자들의 주된 관심 영역이 아니었던 초창기부터 연구에 매진하며 훈민정음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교수님이 훈민정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는 대학원 석사 과정이던 1956년, 이희승 선생의 ‘훈민정음 강독’을 수강하면서입니다. 그 후 1957년부터 1967년까지 10년에 걸쳐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지은 음운 연구서 《훈민정음 운해》(1750)를 번역하고, 1963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훈민정음 해례 연구’ 강의를 하면서 훈민정음 연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또한, 《훈몽자회》, 《성리대전》, 《계림유사》, 《조선관역어》 등을 연구하여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고, 한국어와 한자음을 섭렵하여 국어 음운사 연구에도 한 획을 그었습니다.

강신항 교수의 대표 저서 ‘훈민정음 연구’ 표지 사진이다. 베이지색 배경에 중앙에는 큰 원형의 먹물 자국이 있으며, 그 안쪽은 희미하게 비어 있는 형태이다. 오른쪽 상단에는 ‘훈민정음 연구’라는 제목이 한글과 한자로 적혀 있으며, 그 옆에 저자 이름은 한자로 적혀 있다.
강신항, 《훈민정음 연구(수정 증보)》,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3년

1987년에 발간한 강 교수님의 대표 저서인 《훈민정음 연구》는 2003년까지 개정을 거듭하며 수정 증보를 하였는데, 언어가 한 나라의 역사와 정체성을 구현하는 문화적 자산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지금도 훈민정음 연구 필독서로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강신항 교수님은 이 책을 발간한 계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86년까지 그냥 강의만 하고 번역하며 준비하고 있다가 86년에 독일에 갔어. 23개국 나라의 학자들이 모여서 재구한국학회라고 하는 것을 (조직해서 해마다 발표를 하는데 이것을) 악세(AKSE, THe Association for Korean Studies in Europe)라고 해요. 거기서 러시아의 꼰체비치(레프 라파일로비치 콘체비치, Лев Рафаилович Концевич)라는사람이 《훈민정음》이라고 하는 (두툼한 책을) 세계에서 최초로 79년에 (낸 것을 알았지). 그 책을 보고 어찌나 화가 났던지. 부랴부랴 이듬해인 87년에 성대 출판부에서 《훈민정음 연구》를 처음 낸 거예요.”
-2016년 국립한글박물관 강신항 교수 구술기록 중에서-

새해에 제자들이 강신항 교수 댁을 방문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 앞에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는 강신항 교수가 있다. 그의 주변을 제자들과 아내가 둘러싸고 있다.
2025년 1월 2일 새해에 강신항 교수님 댁을 방문한 제자들과 함께. 강 교수님은 오른쪽 제일 앞.
왼쪽에서부터 황문환(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정희창(성균관대 교수), 정양완(강신항 교수님 사모님), 정호성(전 국립국어원 과장), 홍길표(성균관대 국문과 87학번), 한재영(한신대 명예교수), 이금희(성균관대 교수)
*사진 제공: 정호성

후학을 위해 상금을 전액 기부한 너그럽고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

강신항 교수님은 평소 학생들에게 학문적인 가르침뿐만 아니라 고매한 인품을 통해 삶의 본보기가 된 참스승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집으로 직접 불러 밥을 대접하고, 옷과 생활용품도 내어주실 만큼 학생들을 대단히 아끼셨습니다.
교수님은 그간 쌓아온 국어사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학술원상, 세종문화상, 용재학술상, 동숭학술상 등 권위 있는 상을 수차례 받아 왔지만, 한 번도 상금을 개인적으로 쓰지 않고 후학이나 학술단체를 위해 기부하였고, 상을 받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학술상금을 살림으로 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해. 전부 후진들을 위해서, 다른 학술단체의 발전을 위해서 기증하는 거지. 큰 상을 몇 번 받았는데 한 번도 집에 갖다 쓴 일이 없으니까.”
-2016년 국립한글박물관 강신항 교수 구술기록 중에서-

1987년 2월 25일 학사 졸업식에서 강신항 교수와 제자 정호성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두 사람 모두 학사모를 쓰고 있고, 졸업 가운을 걸치고 있다.
1987년 2월 25일 학사 졸업식에서 강신항 교수님과 제자 정호성.
*사진 제공: 정호성

좀 더 폭넓은 안목으로 실제 언어 생활에 기여할 연구를 이어가길

강 교수님은 후학들에게 소신 있고 진실된 연구자의 태도를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가 소위 국어국문학계에서, 특히 국어학에서 현대 언어생활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 우리가 언어생활을 하는데 조금 더 바르게 나가는 길을 제시한 적이 (별로) 없잖아. 맨날 순경음 비읍(ㅸ)(이나 반치음(ㅿ) 연구 등 국어음운사 연구에 치중해 온 것 같아). …(중략)… 그런데 요새 젊은 학자들을 보면 전부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보여). 전부 지엽적인 거야. 크게 보고 이야기를 해야 될 텐데.”
-2016년 국립한글박물관 강신항 교수 구술기록 중에서-


강신항 교수님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 지금 우리 곁에 안 계십니다. 하지만 교수님이 일평생 연구에 매진하며 국어학계에 남긴 업적과 수많은 제자들을 자상하고 따뜻하게 품어주신 참스승으로서의 숭고한 정신은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