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2017. 2.

최초라는 이름의 한글 한글박물관 속 최초의 유물들 소개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1997년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해례본》. 국립한글박물관 상설전시장에서는 세계 유일한 문자 설명서인 《훈민정음해례본》과 최초의 한글 서사시 《용비어천가》 등 한글창제 이후부터 근현대까지 ‘한글 최초’라는 이름이 붙은 다양한 역사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문자 해설서 《훈민정음해례본》

먼저 전시실에 들어서면 《훈민정음해례본》이 홀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은 1443년 음력 12월 28글자의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문자의 명칭과 같은 이름의 해설서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해례본이라고 부르는 책이다. 《훈민정음》에 대한 해설서라고 해서 한글로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흔히 배우는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하는 책은 해례본의 한글 번역판인 ‘언해본’이고, 해례본은 문자 《훈민정음》에 대해 한문으로 설명한 책이다.

▲ 훈민정음해례본해례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문자 해설서’이기도 하다. 고유의 문자를 가진 나라들은 있지만 특정인이 독창적인 문자를 만들고 이 문자에 대한 해설을 책으로 펴낸 것은 ‘세계역사상 최초’라는 것이다. 유네스코는 한글 창제 원리와 용례 등을 논리정연하게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해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으며, 오늘날 문맹 퇴치에 기여한 이에게 주는 상을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진귀한 책인 만큼 이 책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된 데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됐고 3년 뒤 ‘대수장가’인 간송 전형필 선생이 국문학자 김태준으로부터 해례본의 실존 소식을 접한 뒤 소장자를 찾아가 이를 구입했다(기와집 10채 가격).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의 혼란기마저 잠잠해질 때까지, 밤에는 오동나무 상자 안에 넣어 베게처럼 만들어 곁에 보관하고 낮에는 품에 안고 다니면서 이 책을 지켰다.

한편, 《훈민정음해례본》에는 《훈민정음》의 창제자와 창제 목적, 사용법, 그리고 창제 원리와 성리학적 세계관이 담겨있다. 게다가 이 책에는 ‘한글은 배우기 쉬워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전, 조금 아둔한 사람이라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실려 있는데,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세종대왕이 추천하는 쉬운 한글’을 배우러 박물관에 방문해보는 것도 좋겠다.

최초의 서사시집인 《용비어천가》와 최초의 불경서 《월인석보》

《훈민정음해례본》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한글로 쓰인 최초의 서사시집 《용비어천가》를 만날 수 있다. ‘해동성국의 여섯 용이 날아(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하늘이 내려주신 복이시니 옛 성인과 같으시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고, 시내를 이뤄 바다로 간다….’ 세종대왕의 명으로 만들어진 이 《용비어천가》는 총 10권 5책 125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조선왕조 건국의 정통성과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 등 여섯 임금의 업적을 기리는 노래다. 세종은 1443년 말 한글을 만들고 반포하기까지 3년 간 학자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6대 조상들의 건국과정을 기리는 작품을 만들게 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문자인 한글의 실용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세종은 이 책을 보고 매우 기뻐하면서 ‘우리말을 편리하게 적을 수 있게 됐다’며 책 이름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왼쪽의 책은 용비어천가이며, 오른쪽 책은 월인석보 권2 입니다.

이후 조선왕조는 기존에 한문으로 돼 있던 책들을 한글로 번역하는 사업, 이른바 언해 사업을 실시했으며, 이 사업의 일환으로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먼저 나온 불경언해서가 바로 《월인석보》다. 《월인석보》는 세조 5년, 1459년에 간행된 석가일대기다. 《월인석보》 1권 책 앞에 해례본의 번역본, 언해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월인석보》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사건에 얽힌 일화가 있다. 조카인 어린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수양대군)는 어느 날 꿈에서 아들의 복수를 다짐하는 단종의 어머니를 만나게 됐다. 이후 세조는 심각한 피부병을 앓게 됐고 왕세자였던 도원군 마저 죽게 되자 세조는 부왕과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빌며 참회하는 마음을 담아 근 2년에 걸쳐 《월인석보》를 편찬했다. 단종 뿐 아니라 사육신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던 세조이지만 한글과 불경을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 또한 세조였던 것이다.

한글 최초 병법서, 다양한 실용서, 왕의 편지 등

▲ 정조 어필 한글 편지첩, ▲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집 청구영언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병법, 의료, 요리, 음악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실용서적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이 바로 한글로 쓰인 최초의 병법서 ‘무예제보’(1598)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전쟁에 꼭 필요한 무예서를 한글로 만들어 보급할 필요성을 깨닫고 한글로 된 병서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당시 훈련도감의 낭관이었던 한교의 ‘무예제보’가 대표적인 것으로, 6가지의 단병무예에 관한 내용을 그림과 함께 한글로 풀어서 쓴 책이다.

박물관에는 병법서 외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원 제중원에서 펴낸 해부학 교재, 필자가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리책과 술 담그는 방법이 적힌 책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정조대왕이 4세 무렵 삐뚤빼뚤한 글씨로 외숙모에게 쓴 편지를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문안 아뢰고 기후 무사하신지 알고자 합니다. 이 족건(버선)은 저에게 작사오니 수대(정조의 외사촌)를 신기옵소서’라는 내용의 이 편지는 유일하게 어릴 적 한글편지가 남아있는 왕의 편지이기도 하다. 아울러 요샛말로 ‘절대음감’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조선 영조 때의 가인 남파 김천택의 《청구영언》 원본도 만나볼 수 있다. 《청구영언》은 고려 말엽부터 영조 당시까지의 시조들을 한데 묶어 1728년 편찬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시조집으로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 등으로 시작하는 익숙한 시조들도 찾아볼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올해 이 《청구영언》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도 계획 중에 있다.

한글전파의 1등 공신 ‘딱지본 소설’, 최초의 한류 《춘향전》

1910년 경 돈 6전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우동 한 그릇, 그리고 딱지본 소설책(6전 소설) 1권이었다. ‘딱지본 소설’이란 1890년대 신식 활판 인쇄기가 도입되면서 한글 소설책들이 대거 쏟아졌는데, 특히 표지가 알록달록 예쁘고 크기가 작아 아이들이 갖고 노는 딱지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을 말한다. 한글박물관에는 《콩쥐팥쥐전》, 《박씨전》, 《깔깔 웃음주머니》, 《춘향전》 등 형형색색의 표지를 가진 딱지본 소설을 전시해두고 있으며, 벤치에 앉아 관람객들이 내용을 읽어볼 수 있도록 복제본도 비치해 놓고 있다. 직접 보면 알겠지만 이 딱지본 소설들의 표지는 화려한데 본문 안에는 그림이 하나도 없다. 당시에는 표지 그림이 판매 부수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에 화가들은 책 표지를 눈에 띄게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한글전파의 1등 공신 딱지본 소설, 최초의 한류 춘향전

딱지본 소설 가운데는 우리가 역사책에서 흔히 봐 왔던 한 권의 책이 얼른 눈에 들어온다. 바로 1908년 안국선이 쓴 《금수회의록》이다. 꿈속에서 동물들이 회의를 한다는 설정으로 저자는 까마귀와 여우, 벌, 개구리 등의 입을 빌어 인간의 간사함과 함께 나라를 망치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리는 자, 그리고 일제 침략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로 일본군의 탄압과 수탈이 매우 극심하던 때였다. 그래서 딱지본 역시 총독부로부터 엄격한 출판검열을 받았는데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일본이 최초로 출판금지를 한 책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딱지본 소설은 당시 많은 서민들에게 인기몰이를 하며 한글 전파의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이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책은 《춘향전》이었다고 한다. 한글박물관에는 제목과 표지, 크기 등 다양한 형태로 출판된 《춘향전》 딱지본 소설들이 전시돼 있다. 이 춘향전은 근대 뿐 아니라 1950년대 중국에 수출돼 CCTV가 이를 방영하는 등 중국인들로부터 관심을 받아왔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첫 번째 한류스타는 사극 ‘대장금’의 여배우 이영애가 아닌 춘향이가 아닐까 싶다.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그리고 대한민국 첫 국어교과서 《바둑이와 철수》

국립한글박물관에는 최초의 한글 교과서도 소장돼 있다. 바로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지은 세계지리서 《사민필지》다. 이 책은 한글이 우리나라 공식글자가 되기 5년 전인 1889년에 공식 출판됐으며, 지구, 유럽주, 아시아주, 아메리카주, 아프리카주에 대한 소개를 비롯해 태양계와 기후 · 인력 · 일월식, 대륙과 해양, 인종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책을 지은 헐버트는 ‘동양의 조그만 나라에 한글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국민이 이를 천시하고 오히려 한자를 존대한다’며 의아해 했으며, 3년 만에 한글을 배운 뒤 최초로 한글 교과서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사민필지》는 세계 정세에 대해 어두웠던 당시의 조선인들이 세계에 눈을 돌리게 함으로써 근대화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대한민국정부 최초 국어교과서, 바둑이와 철수한글 교과서 하면 《바둑이와 철수》를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온 국민이 사랑했다’는 이 책은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최초의 국정국어교과서다. 이 책은 ‘기역 니은 디귿 미음, 가갸거겨고교’ 방식으로 한글을 깨우치지 않고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 등 처음으로 스토리텔링 방식을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교과서의 인기 덕분에 우리 국민들 중에는 철수나 영이라는 이름이 많아졌다는 후문이다.

한편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한글타자기도 만나볼 수 있다. 영어와 달리 한글은 같은 기역(ㄱ)이라도 어느 모음과 결합하느냐에 따라서, 또한 초성, 종성 등 붙는 위치에 따라 글자의 모양과 크기가 달라진다. 초창기에 개발된 자음과 모음을 풀어쓰는 형태의 타자기는 여러 발명가들의 노력으로 다양하게 발전된 형태의 한글타자기로 진화하게 되었다. 한글박물관에서는 송기주 타자기와 공병우 타자기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타자기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