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이야기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 한글로 펴낸 『고열녀전』 자료관리팀 고은숙 학예연구사
조선시대 때 관에서 여성들을 위해 펴낸 책이라고 하면 어떤 이야기들이 먼저 떠오를까? 아마도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목숨을 버린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무수한 열녀(烈女)들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여기 그러한 편견을 깨게 하는 책이 하나 있다. 중종 38년(1543) 간행된 『고열녀전』이다.
『열녀전』이라고 하면 정절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여성들을 떠올리며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고열녀전(古列女傳)』의 열녀는 ‘열녀(烈女)’가 아닌 여러 여성들을 뜻하는 ‘열녀(列女)’이다. 조선 사회에서 여성에게 정절을 강요하는 유교적 관념이 보편질서로 자리 잡다 보니 ‘열녀(列女)’가 아닌 ‘열녀(烈女)’만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것이 널리 퍼지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조선 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여성으로 하여금 남성에게 종속되는 희생적인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결혼 이후에도 친정 부모의 집에 살며 자녀를 키울 수 있었고,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있었으며, 남편과 이별 후 개가를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열녀전』 언해본은 바로 그러한 때에 간행된 책이다.
『고열녀전(古列女傳)』 언해본은 중종 38년(1543) 왕명에 의해 중국의 『고열녀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엮은 책이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열녀(烈女)’는 여러 여성의 한 부류에 포함된다. 『고열녀전』은 동아시아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초기의 저작이다. 중국 한나라 때 유향(劉向, 기원전 77년∼6년)이 편찬한 책으로, 모범이 될 만한 부인들과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망하게 한 여성들을 선별하여 엮은 것이다.
- 『조선왕조실록』 중종 38년(1543) 11월 6일
지금까지 실록이나 그 당시의 기록을 통해 중종 시기에 『고열녀전』 언해본이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왔으나, 실물이 발견되지 않아 『고열녀전』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다가 2014년에 국립한글박물관이 이 자료를 소장하여 2015년에 소장자료총서로 펴내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고열녀전』은 ‘훌륭한 어머니(母儀傳)’, ‘현명한 아내(賢明傳)’, ‘지혜로운 여성(仁智傳)’, ‘예와 신의를 지킨 여성(貞順傳)’, ‘도리를 실천한 여성(節義傳)’, ‘지식과 논리를 갖춘 여성(辯通傳)’, ‘나라와 가문을 망친 여성(蘖嬖傳)’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전하는 것은 전체 8권 중 권4 ‘정순전(貞順傳)’ 한 권뿐이다. 기록으로만 확인되던 실체를 직접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대단히 크다.
『고열녀전』 언해본은 중종 시대 출판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자료이며 당시 조선 사회에서 중국의 『고열녀전』을 우리 정서와 문화에 맞게 어떻게 다듬어 수용하고 전파·확산시켰는지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관의 주도하에 당대의 문장가에게 중국의 『고열녀전』을 번역하게 하였고, 명필가에게 베껴 쓰도록 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화원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다. 단순히 중국의 판본을 복각하여 그대로 펴낸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을 동원하여 완전히 다른 형태의 책으로 재편집하여 간행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고열녀전』 언해본 권4는 1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이 책에는 그림, 한문, 언해문의 순서로 구성된 15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문장 실력이 뛰어난 문인 신정(申珽)과 유항(柳沆)이 번역하고 당대 명필이었던 유이손(柳耳孫)이 글을 썼으며 조선 전기 인물화로 명성을 떨친 화가 이상좌(李上佐)가 그린 미려한 판화 13점도 포함되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림을 그린 이가 조선 전기의 천재 인물화가 이상좌라는 것이다. 이상좌는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아 이 자료의 발견은 회화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열녀전』 언해본에 수록된 그림이 이상좌의 것임은 조선 전기의 문인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 중에서
이상좌가 그린 『고열녀전』 언해본의 삽화는 중국에서 수차례 간행된 『고열녀전』의 여러 삽화들과 대조해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안견(安堅)의 『삼강행실도』(1481) 삽화나 김홍도(金弘道, 1745~?)의 『오륜행실도』(1797) 삽화와 함께 살펴봄으로써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러 천재 화가들의 화풍을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중국 진(陳)나라의 젊은 과부인 효부(孝婦)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열여섯의 나이에 출가했는데 자식을 낳기도 전에 남편이 국경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아 집을 떠나게 됐다. 남편은 가기 전에 효부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고 갔는데 결국 죽어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부모님은 자기 딸이 젊은 나이에 자식 없이 일찍 과부가 된 것을 딱하게 여겨 재가를 권했으나 그녀는 그 뜻을 따르지 않고 시어머니를 끝까지 효성으로 봉양했다. 왕은 그 행실을 아름답게 여겨서 ‘효부(孝婦)’라 부르게 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시경(詩經)』의 「용풍(鄘風)」, 『소학(小學)』 선행편(善行篇), 『고금열녀전(古今列女傳)』 권3, 『여사서언해(女四書諺解)』 권4 「여범첩록(女範捷錄)」 효행편(孝行篇) 등에 실려 있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효자도(孝子圖)에는 ‘진씨양고(陳氏養姑)’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고열녀전』 언해본은 16세기 국어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국어사 자료이다. 중세국어 자료는 근대국어 이후 자료에 비해 양이 매우 적은 편인데 『고열녀전』이 발견되면서 이전 자료에서 볼 수 없었던 언어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앞으로 잔권(殘卷)이 발견된다면 당시의 언어 사실을 보다 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열녀전』 속의 인물은 『삼강행실도』(1481)나 『오륜행실도』(1797), 『여사서언해』(1737) 등의 인물과 겹치는 것도 있어 그 언어 변화 양상을 비교·대조할 수도 있다. 이처럼 『고열녀전』 언해본은 서지학, 미술사, 국어사, 문학사, 서예 등의 분야에서 두루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이 책의 가치가 자세히 드러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