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처음이지?
“백성을 위하여”
한글에 담긴 마음을 가르치길
본다룩 이리나(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의 작은 도시 ‘볼로디미르 볼린스키’에서 태어난 이리나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본 뒤 한국에 푹 빠져들게 됐다.
꿈 많은 소녀였던 고등학생 이리나에게 한국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자리 잡았고, 그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미래의 직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 이리나는 주저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대학에 입학했고 지금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한국의 연결다리가 되고 싶다는 이리나에게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 어떤 것이 중요할지 들어보았다.
‘한박웃음’ 웹진을 통해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본다룩 이리나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이란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한국에 처음 왔던 시기가 생각나면서 추억에 빠졌어요. 엊그제의 일인 것처럼 생생한데 5년의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그간 저의 한글 실력도 많이 늘었고, 이제는 대학에서 졸업해 사회로 나아갈 시기가 되었어요. 앞으로는 관광 분야에 취업해 우크라이나와 한국에 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제가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한류’의 영향이 무엇보다 컸습니다. 우연히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를 알게 됐고, 고등학생이던 저의 어린 마음을 크게 흔들었어요. 이때부터 한국에 빠져들어 음악, 영화, 음식 등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흥미롭게 탐구했던 것 같아요. 이 관심은 자연스레 언어와 문자로 이어졌고, 우크라이나어 더빙이 아닌 자막이 있는 한국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한글을 읽고 한국어를 이해하고 싶었기에 인터넷을 통해 혼자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어와 한국어는 너무 많이 다르기에 혼자 공부하기엔 역부족이었어요. 한국어를 배우고픈 마음이 가득 차 있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키예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유일한 대학에 입학했어요.
이후 한국으로의 유학길에 오르게 됐고, 한국어와 한글에 대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제가 진정 원하는 일이었기에, 쉽지 않았지만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글을 배우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글의 역사에요. 백성들이 글자를 모르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세종대왕이 오로지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했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죠. 이런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 알게 되는 외국인이라면 깊은 인상을 받을 거예요. 제가 고향에서 지인에게 한글을 가르친다면 이 점부터 분명히 말해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당연히 기초를 가르쳐야겠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표기할 것’, ‘위에서 아래로 적을 것’ 등 기본적인 원칙을 가르치면 한글이 그림이 아닌 글자라는 것에 익숙해지게 될 것 같아요.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지만, 대다수의 외국인들은 한글을 처음 봤을 때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인식합니다. 예를 들어 ‘옷’이란 단어는 사람처럼 생겼는데 어떻게 ‘의상’을 의미하냐며 되묻곤 하죠. 그다음으로는 한글에 알파벳이 있다는 점에 놀라고, 이것만 외운다면 생각보다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또 놀라요. 이후에 자음과 모음, 음절단위로 모아쓰는 방식을 알려주면 금세 이해하기 시작해 큰 흥미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생활, 인생, 생명’이란 세 개의 단어는 우크라이나어로 번역하면 그 의미가 모두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단어들이 참 많이 다르게 사용된다는 점을 잘 알고 계시죠?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이런 점들이 어렵게 다가온답니다.
한국어는 최근 들어 점차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언어에요. 한국의 문화적인 면이 워낙 출중하기에 나날이 곳곳에 전파되고 있죠. 이는 한국을 선택한 저에게도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많은 발전 가능성과 기회가 열릴 테니까요. 제가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할 때, 서울에서 생활하게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꿈을 꾸고, 목표를 향해 다가가니 하나씩 이루어지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도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