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해 12월 17일부터 3층 기획전시실에서 <문자 혁명-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이하 ‘문자 혁명’)>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과 독일에서 일어난 인쇄술과 자국어 출판이 일반 국민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문자 문화의 발달 양상을 살펴보는 이번 전시는 국립한글박물관과 독일의 구텐베르크박물관, 라이프치히대학도서관이 협업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한국학 박사 1호 독일인이자 오랜 기간 독일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온 베르너 사세 박사는 이번 전시를 어떻게 바라볼까. 현재 제주도에서 연구와 출판을 계속하며 미술 작가로도 활동 중인 베르너 사세(81) 박사를 만나봤다.
<문자 혁명-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 전은 한국과 독일의 자국어 문자 문화를 다루면서 한국과 독일의 자국어 문자 문화 발달 양상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주요 유물과 사건 등을 통해 비교해볼 수 있는 전시다. 특히 양국 인쇄술의 발명과 이를 통한 자국어 문자의 보급, 확산은 물론 인쇄 글꼴의 발달 과정이 같은 듯, 다른 듯 닮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시에서는 한글 금속활자 인쇄본인 『월인천강지곡』 진본은 물론 『간이벽온방언해』, 『월인석보』 등의 한글박물관 소장품과 국내 희귀 자료들은 물론 독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명으로 만든 책 『토이어당크』,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전단지(1520년)』, 『독일어 성서(1536년)』 등 33점의 독일 자료도 만나볼 수 있다. 더욱이 지난 1월 19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조정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이 재개관함에 따라 이들 자료는 모두 실물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베르너 사세 박사와의 인터뷰가 이뤄지던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인해 온라인 전시만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 ‘문자 혁명’ 전을 감상한 사세 교수는 “전시 주제를 접한 뒤 놀랍고 기뻤다.”고 말했다. 또한 “지정학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과 독일에서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사실을 보면 인간의 특성과 문화 발달 과정에 대한 중요한 요소를 감지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동시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데 대한 이유를 분석하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해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 어려운데 국립한글박물관의 빠른 대응으로 이처럼 우수한 전시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은 정말 좋은 대처”라면서 “이 온라인 전시는 전 세계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큰 업적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문자 혁명-한국과 독일의 문자 이야기>의 실제 전시는 3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온라인 전시는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해 △신을 향한 문자로부터 △인쇄술, 공유의 길로 △자국어 인쇄, 진정한 소통으로 △번역, 사상 전파의 촉매로 △자국어 출판, 다양한 분야로 등 총 5개 주제로 구성됐다.
먼저, 신의 말씀과 행적을 찬양하기 위해 필사한 책(사경과 성서)이 소수에게만 독점되었던 시대를 지나, 인쇄술의 발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된 ‘혁명 같은 사건’을 조명했으며, 글말(한자, 라틴어)과 입말이 다른 한국과 독일에 각각 자국 말(훈민정음, 독일어) 인쇄물이 선보이던 시기를 비춘다. 이어 자국어 출판으로 인해 독자층이 확대되고 인문, 철학, 과학, 실용 등 다양한 분야의 인쇄본이 만들어지면서 문자를 통한 소통과 향유가 확산되어가는 과정과 이로 인한 영향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전시 5개 주제에 대해 어느 부분을 가장 공감하는지 묻는 말에 대해 사세 교수는 ‘모두 다’라고 답했다.
“ ‘사경과 성서’, ‘인쇄술을 통한 공유’는 문자 혁명의 출발로서 문화발전을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 됩니다. ‘자국어 인쇄를 통한 소통’과 ‘다양한 분야의 자국어 출판’은 문화의 현대화뿐만 아니라 사회·정치 발전에서도 문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번역을 통한 사상전파’에서는 옛 지식인 계층, 즉 소수가 누리던 특권이 일반 시민들에게 넘어오는 과정을 강조하고 있어서 전시 전반에 걸쳐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박물관 재개관을 앞두고 직접 유물들을 접하게 될 관람객들을 위해 어떻게 전시를 관람하면 좋은지 묻는 말에는 ‘문자를 경외하는 마음을 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생활 속에서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의 미디어로 주로 소통하고, 글보다는 사진과 영상을 주로 즐기는데 이는 너무 피상적”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과거 유물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문자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진: 문화융성위원회>
한편, 사세 박사는 1988년 독일의 보흠 대학교(Bochum)에 한국학과를 설립해 강의를 해왔으며 1992년부터 2006년까지는 함부르크(Hamburg) 대학에도 한국학과를 만들어 후학을 양성했다. 또한 정년퇴직 후에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한양대에서 문화인류학과 석좌교수를 지내는가 하면, 세종대왕이 한글로 만든 노래인 ‘월인천강지곡’을 유럽에 번역, 소개했으며 한국의 한문 고서 등도 외국에 알리고 있다.
특히 “한글은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이 결합한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표현해 주목을 받았던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한글이 다른 문자와 대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음운 체계와 글자 모양 간의 밀접한 연결성”이라며 “모양이 체계적이고 간단해 즉시 시선을 사로잡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 음운이론의 바탕과 모양의 원리를 함께 전달하면 글자를 쉽게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자음의 경우 음성기관과 조음 방법에 기반하며, 모음은 언어학적으로는 모음조화, 철학적으로는 음양의 원칙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을 이해하면 글자 모양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또한 글자 모양에 한 획을 더 추가함으로써 더 많은 발음을 구현해내는 방식(예: ㄴ→ㄷ, ㅁ→ㅂ, ㅅ→ㅈ / ㄷ→ㅌ, ㅂ→ㅍ, ㅈ→ㅊ / ㅏ→ㅑ, ㅓ→ㅕ, ㅗ→ㅛ) 등을 예로 들며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의 간단하고 독창적인 모양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묻는 말에는 “현재 국가 브랜딩에 K-팝과 IT, 자동차 등의 경제발전을 주로 부각하고 있는데, 기록으로 입증할 수 있는 2000년의 문화유산을 널리 알리는 것이 문화 국가로 인정받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석기까지를 포함한 ‘5000년의 역사’와 같은 화려한 슬로건은 오히려 과장되게 들릴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배우자인 현대무용가 홍신자 씨와 함께 제주도에서 지내며 수묵화 작가로서, 한국 전통 문학작품 번역가로서 은퇴 이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유로운 삶’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는 최근 ‘농가월령가’ 가사를 영문과 독일어로 번역해 출판사를 물색 중이고, 16세기 중반에 김인후가 작시한 ‘소쇄원 48영’도 번역할 계획이라고 했다. 1966년에 맺은 인연으로 55년 가까이 독일과 한국문화를 잇는 가교로서 활동해 온 노교수의 열정은 지금, 이 순간도 여전히 빛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