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 작가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뿌리 깊은 나무>, <호텔 델루나> 등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TV 드라마 속 서신을 대필했다.
이외에도 그는 젊은 서예인으로서 관련 분야 도서 발간부터
전시, 강연, 유튜브 채널 운영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서예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이정화 작가의 한글 서예 이야기를 들어본다.
▲ 어린 시절의 이정화 작가
▲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대필 장면
안녕하세요. 저는 서예인 ‘인중(仁中)’ 이정화입니다. 7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서예를 해왔고, 여러 시대극 드라마, 영화에서 여배우의 서예를 대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예능에 출연했는데, 덕분에 많은 분이 저를 알아보시더라고요. 또한 대필 외에도 서예 강연을 하거나 책을 쓰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의 호 ‘인중(仁中)’은 제가 스무 살 때 대학교 주임교수님께서 지어주셨는데요. 논어의 ‘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라는 글귀에서 ‘인(仁)’과 ‘중(中)’을 따온 거예요. 저 글귀는 넓게 배우고 두텁게 의지를 굳히며, 간절하게 묻고, 가깝게 생각한다면 인은 그 안에 있다는 뜻인데요. ‘인’은 ‘사랑’의 뜻도 있어서, 교수님께서 주변을 잘 챙기면서 저 자신도 사랑하는 탄탄한 삶을 살라는 뜻으로 지어주신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붓을 잡게 된 건 부모님의 영향 덕분이었어요. 제가 어릴 때 부모님께서 서예학원을 하고 계셨거든요. 정말로 서예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요. 원래 중국어 통역사가 꿈이었는데 막상 진로를 선택할 때 ‘내가 중국어 통역사의 길을 가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A4용지를 반으로 나눠 각각 중국어 통역사와 서예인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봤어요. 쓰고 보니 서예인 칸에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적혀있는 거예요. 서예인이 된다면 국내 대중에게 서예의 재미를 알려주고, 더 나아가 중국에 가서도 한국 서예를 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에 서예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글씨만 쓰기보단 좀 더 다방면으로 나아가며 살고 있는데요. 서예가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느끼는 분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물론 서예 작품 작업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대중에게 서예의 매력을 어필하기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대학교, 기업에서 서예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기 위한 강연을 하기도 해요. 강연에서는 서예의 기술적인 부분보단 서예를 통해서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서예인들이 왜 서예의 매력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지를 이야기해주죠. 제가 쓴 에세이 『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에도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아리랑 유랑단’은 해외에서 다채로운 전통 공연을 펼치며, 전 세계로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단체였는데요. 저는 해외 대학의 한국어과나 대사관, 영사관은 물론 길거리에서도 공연을 하곤 했어요. 그때 저는 한글을 이용해서 글씨를 썼는데, 외국인들이 되게 신기해하더라고요. 특히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은 자신이 봐온 문자가 그림처럼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재미있어했어요. 한글이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죠.
한글 서예의 가장 큰 특징은 직관적이라는 거예요. 우리 고유 문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한자보다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작가의 의도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죠.
한글 서예의 또 다른 매력은 한글의 여러 서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인데요. 판본에 글씨를 새겨 찍어낸 판본체, 궁녀들이 주로 쓰던 궁체, 궁체를 조금 흘려 쓴 궁서 흘림체도 있어요. 민중이 쓰는 민체도 있죠. 특히 민체는 격식 없이 마음대로 쓰기 때문에 다른 서체에 비해 개성이 잘 드러나는데요.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민체는 현재 한글 캘리그래피와 비슷한 것 같네요.
▲ 작품 <시간>
▲ 작품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저는 한글을 그림처럼 표현하려고 하면 정말 상상한 대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다고 느끼는데요. 그래서인지 <시간>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아요. ‘시간’이라는 글자를 배 모양으로 형상화한 작품인데요. 시간은 물에 뜬 배처럼 흘러가고,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으니 잘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또한 최근 <한글書(서)의 미래展(전)>에 전시한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도 기억에 남아요. 이 전시물은 두 작품으로 이뤄졌는데 하나는 한글 자음만으로 자연을 표현했고, 다른 하나는 모음의 원리인 천지인을 활용해 만들었죠. 두 작품 모두 한글에 담긴 세종대왕의 뜻을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한글을 널리 이롭게 쓰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 뜻 덕분에 현재 어려움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중
이정화 작가가 쓴 문장
▲ 드라마 <호텔 델루나> 중 대필 장면
(출처: Tvn 방송화면 캡처, 이정화 작가 제공)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온 글씨 중 주인공 애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쓴 ‘보고싶엇소’가 특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게 생각이 나요. 저는 대필을 할 때, 늘 그 사람의 성격과 처한 환경, 감정을 생각하는데요. 제가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글씨를 쓰기 위해 노력하죠. 애신은 매우 강인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보고 싶은 애신의 마음은 부드럽게 표현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글씨를 썼죠. 이때, 시청자들이 글씨 안에 담긴 주인공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 작품 <거울>
한글 서예란 제게 도전이에요. 서예인으로서 전통 한글 서예에 대해 더 깊게 공부해야 하는 도전이면서 동시에 현대인들에게 한글 서예가 가진 매력을 계속 보여주려는 도전이기도 하죠. 대중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다채로운 한글 붓글씨를 보여주되, 표현이 과해 억지라고 여기지 않도록 조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저는 서예가 단순히 흰 종이 위에 검은 먹으로 글씨를 쓰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서예에는 내 생각과 마음이 담기기 때문에 ‘나’를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죠. 그래서 한글 서예를 할 때, 내가 정말 쓰고 싶은 말 혹은 내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글씨를 진중하게 생각해보고 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