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드라마와 노래를 접하며 더듬더듬 한글을 배웠던 소녀 움만에게는 꿈이 있었다.
언젠가는 한국 사람들과 막힘없이 대화하고, 한국과 고국인
아제르바이잔을 오가며 여행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가슴에 품은 작은 소망은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 숙녀가 된 움만을 한국으로 이끌었다.
한글을 더욱 능숙하게 익히기 위해 메시지를 주고받던
한국인 남편과 사랑에 빠져 한국에 정착한 것이다.
꿈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새겨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그녀,
지금은 배우의 꿈을 꾼다는 움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저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움만입니다. 본명은 르자예바 움만이지만,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르는 전통에 따라 ‘이움만’으로 새롭게 태어났답니다. 제가 한국이란 나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12살 무렵,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번안되어 방영하던 때였던 것 같아요. 아제르바이잔의 성우가 목소리 연기를 했기 때문에 ‘저 독특하고 예쁜 옷(한복)을 입는 사람들은 어떤 말을 쓸까’라고 궁금해하며 인터넷으로 드라마 원본 영상을 찾아본 것이 시작점이었지요.
드라마 주제가만 겨우 흥얼거리던 제가 빅뱅, 슈퍼주니어 등의 노래를 즐겨듣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풍선처럼 커다랗게 부풀었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한국어 학원’이 없었기에 그저 한류 콘텐츠를 감상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죠. 2014년도가 되어서야 제가 사는 동네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이 생겼고, 3개월간 무료로 학생들을 가르쳐주는 행사를 진행했어요. 기회다 싶어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고 처음으로 기초적인 한글을 배울 수 있었죠.
막 걸음마를 뗀 아이와도 같았지만, 저는 빨리 달리고 싶었어요. 인터넷으로 한국 책을 주문해 읽어보기도 하고 공책에 빼곡하게 한글을 적어보기도 했죠. 처음 한글을 접했을 때는 글자보다 그림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타투 디자인으로 사용하면 멋지겠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또 인터넷에서 한국 사람들이 한글을 이모티콘으로 활용하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ㅠㅠ’라고 표현하는 걸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또 한국과 가까워지고 싶어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천천히 한국에 대한 애정을 키웠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SNS에서 한국인 친구를 사귀기로 마음먹고 한글로 대화를 주고받았죠. 이렇게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데, 남편은 당시 호주에서 요리를 공부하던 중이었고 저는 대학원에 다닐 무렵이었어요. 약 3개월간 메신저를 통해 한글과 영어를 섞어 사용하며 소통을 지속했고, 제가 발음이 어려운 한글 단어를 물어보면 남편이 그 발음을 녹음해 보내주기도 했죠.
그렇게 서로 호감을 느끼던 어느 날, 남편이 저를 만나러 아제르바이잔에 방문했어요. 약 2주간 함께하며 연인 사이가 되었고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1년 후인 2018년 3월에 저희는 각자의 부모님께 결혼을 허락받았답니다. 남편은 호주에서 살며 요리사로 일하길 원했는데,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저의 의견을 따라 다시 한국행을 결심해주었어요. 2019년에는 아제르바이잔과 한국 두 곳에서 각자의 문화를 살릴 결혼식을 올렸고, 저와 남편은 한국에 정착했답니다.
사실 한국에 온 것이 단순히 ‘한국사랑’ 때문만은 아니에요. 연극배우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꿔왔는데, 아제르바이잔은 영화나 드라마 산업이 발전한 나라가 아니었어요.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전 세계에 콘텐츠를 수출하는 국가이기도 하잖아요. 이곳이라면 배우의 꿈이 실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답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한글을 익히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말하는 연습을 했어요. 처음에는 한국말이 서툴러 들어온 일을 놓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개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올 정도로 열심히 활동 중이랍니다.
▲ <청춘기록>에 출연한 움만,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다
(출처: <청춘기록>)
▲ KBS 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에 출연한 움만
또한 모델 일을 병행하며 여러 작품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고 있어요. 박보검 씨가 주연을 맡은 <청춘기록>이나 엑소 멤버인 카이 씨의 뮤직비디오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죠. 배우분들에게 한국말로‘팬이에요’라고 하면 깜짝 놀라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어요. 이렇게 한발 한발 제 꿈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참, 제가 처음 ‘꿈’이라는 한글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 굉장히 놀랐는데요. 아제르바이잔에서 ‘꿈’이라는 발음은 모래를 뜻하기 때문이었어요. 같은 발음이지만 그 뜻은 굉장히 달라 인상 깊었고, 이 단어를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저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어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서의 삶을 꿈꾸었더니 그것이 현실이 된 것처럼, 지속해서 연기 연습을 하고 일보전진 하다 보면 TV 화면 속에서 배우가 된 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저처럼 멋진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