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제 102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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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책상이 놓여있고 책상 위에는 책이 쌓여있다. 책상을 두고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있다. 왼쪽의 사람은 무언가 고심하는 얼굴로 책을 보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 싸울 때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다. 오른쪽의 사람 역시 심각한 얼굴로 ‘맞아, 지금은 언문규정 통일이 시급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 주변으로 의자, 책, 종이 등이 널브러져 있다. 가운데 책상이 놓여있고 책상 위에는 책이 쌓여있다. 책상을 두고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있다. 왼쪽의 사람은 무언가 고심하는 얼굴로 책을 보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 싸울 때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다. 오른쪽의 사람 역시 심각한 얼굴로 ‘맞아, 지금은 언문규정 통일이 시급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 주변으로 의자, 책, 종이 등이 널브러져 있다.

한박 튜브

한글 맞춤법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철자법 논쟁! 주시경파 vs 박승빈파

국립한글박물관 유튜브에는 기획전시, 온라인 한글문화강좌,
어린이 학습 영상 등 다양한 동영상들이 매달 새롭게 게재됩니다.
‘한박튜브’ 코너에서는 국립한글박물관의 주요 영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2월호에서는 한글 맞춤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했는지 확인해보았습니다.

#01

중앙에 그려진 커다란 네모 안에 한 손에 책을 든 채 미소짓고 있는 세종대왕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앞에는 퀴즈를 내는 거북이와 정답을 말하는 토끼가 서 있다. 거북이는 물음표가 그려진 연단 뒤에 서 있으며 손가락으로 토끼를 가리키고 있다. 토끼는 느낌표가 그려진 연단 뒤에 서서 자신만만한 얼굴로 ‘세종대왕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은 맞춤법을 누가 처음으로 만들었는지 아시나요?
바로,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랍니다.
세종께서는 한글을 창제하신 후 한글을 바르게 쓰는 방법도 함께 설명하셨습니다.

#02

연두색 배경에 커다란 지지대가 놓여있고 지지대에 자음이 적힌 종이가 걸려있다. 종이에는 한글 자음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응이 적혀있다. 왼편에는 세종대왕이 막대기를 들고 자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 당시는 지금과 달리 받침으로는 8개의 자음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우리말과 표기 규칙은 조금씩 변경되어,
같은 말도 사람마다 다르게 쓰는 경우가 많아져 표기법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게 됩니다.

#03

세종대왕이 두루마리를 펼쳐보고 있다. 세종대왕의 옆에는 “법률, 명령은 다 국문으로 기본을 삼고 한문 번역을 첨부하여 혹은 국한문을 섞어서 쓴다.”가 적혀있다.

그러던 1894년, 한글은 드디어 국문이 됩니다.
고종은 법률과 칙령을 비롯한 나라의 문서는 모두 한글로 쓰는 것을 기본으로 삼도록 명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제일 시급한 것은 표기법을 통일하는 것이었습니다.

#04

주시경과 지석영이 등을 맞대고 서 있다. 주시경은 얇은 콧수염을 길렀으며 남색 저고리의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석영은 뒤만 살짝 남은 대머리에 굵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그는 손에 하늘색 장갑을 끼는 중이다. 뒤에는 붓을 든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다. 주시경은 ‘한글이 국문이 되었으니….’, 지석영은 ‘이제 표기법을 통일해볼까?’라고 말하고 있다. 주시경 머리 위에는 ‘주시경(1876~1914)’, 지석영 머리 위에는 ‘지석영(1855~1935)’가 적혀있다.

이를 위해 주시경, 지석영 등이 참여하여 ‘국문연구의정안’(1909년)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때 총 14개의 자음을 받침에 쓰도록 했는데요.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맞춤법의 원조가 되었답니다.

#05

교단에 선 일본 순사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다. 순사 뒤의 칠판에는 일본어가 적혀있으며 일본 국기가 걸려있다. 책상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에는 땀이 흐르고 있다.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이 ‘가나다’가 적힌 종이를 들고 웃고 있다. 그 앞에 선 일본 순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다. 그는 일본 군복을 입고, 한 손에 두꺼운 봉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안은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며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일제는 식민지 동화정책을 추진하여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말 사용을 탄압했습니다.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말 사전’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맞춤법 통일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06

사람들이 책을 들고 미소짓고 있다. 그 뒤로 구름 위에 희미하게 주시경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 옆에는 “한글 맞춤법은 표준말을 그 소리 나는 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을 삼는다.”라고 적혀있다.

이를 위해 주시경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1933년 ‘한글마춤법통일안’을 발표합니다.
통일안의 대원칙은 한글 맞춤법은 표준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으로써 원칙으로 삼는것 입니다.
즉 의미가 같은 하나의 말은 형태를 하나로 고정하여 일관되게 적어야 한다는 것이죠.

#07

뒤쪽 머리만 조금 남겨진 대머리의 박승빈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겹받침은 사용 불가다!”라고 소리치고 있다. 그는 매우 단호한 표정이다. 그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단호하고 결연하다. 박승빈 옆에는 ‘박승빈(1880~1943) 변호사, 국어학자, 고려대학교 총장, 조선축구협회 초대회장’이라고 적혀있다.

이처럼 어법에 맞도록 적기 위해 받침의 수는 더 늘어나 총 25개가 되는데요.
일반인에게 너무 어려웠기에 이 안은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반대 운동의 중심에 있던 인물은 박승빈으로, 그는 “ㅎ,ㄲ,ㅆ을 포함한
모든 겹받침은 사용이 불가하다”면서 철자법을 소리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08

조선어학회와 조선어학연구회가 반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왼쪽에 선 조선어학회 사람은 ‘조선어학회’가 적힌 종이를 들고 “형태주의”를 외치고 있다. 그들 옆에는 ‘주시경파’라고 적혀있다. 왼쪽의 조선어학연구회 사람은 ‘조선어학연구회’가 적힌 종이를 들고 “표음주의”를 외치고 있다. 그 옆에는 박승빈파라고 적혀있다.

주시경의 학설을 중심으로 형태주의 철자법을 옹호한 조선어학회와
박승빈의 학설을 중심으로 표음주의 철자법을 내세운 조선어학연구회는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그러나 당시 언문규정의 통일이 시급했고, 1934년 7월 당대 대표 문인 78인이
성명서를 발표해 조선어학회를 지지하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맞춤법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09

탁자 위에 놓인 노트북에 만화 영상이 틀어져 있다. 영상에는 78인 문인들이라고 적힌 종이가 ‘조선어학회를 지지합니다!’라며 왼쪽 사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노트북 양옆에는 토끼와 거북이가 나란히 앉아 미소짓고 있다.

철자법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끼리 동일하게 사용하도록 정한 합리적 약속입니다.
그렇기에 언어가 변화함에 따라 철자법도 더 편한 방향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새로운 표기법이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

철자법 논쟁_주시경파 vs 박승빈파
[만화로 즐기는 한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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