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온라인 시장이 커진 지금, 카자흐스탄에서
‘AR(가상세계) 전문가’의 꿈을 안고 한국을 찾은 소녀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델, 고국의 명문 대학을 포기하고 한국 땅을 밟았을 만큼
모험심이 가득한 성격을 지녔다. 드라마로 처음 한국을 알게 되었고,
마치 노랫소리처럼 들리던 한국어와 그림처럼 보이던 한글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한국 유학을 목표로 삼아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로봇과 반도체에 대해 탐구하며 여전히 한글에 대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두 눈을 가진 아델의 한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톨레오베코바 아델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카자흐스탄에서 온 아델입니다.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과에서 AR 분야와 로봇, 반도체 분야를 공부하고 있어요. 제가 처음 한국을 알게 된 것은 2010년 즈음, 가족들과 함께 드라마 <주몽>을 시청하면서부터였어요. 카자흐스탄의 문화와 다른 점에서 눈길이 갔고, 주인공들이 입은 한복이 무척 아름다워서 아이였던 제 눈에는 신비롭기까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중학생이던 2015년, 친구의 제안으로 한국문화원에서 한글 무료 강습을 받았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눈에는 한글이 마치 그림처럼 보였는데, 다른 학우들은 모두 선행학습을 마친 상태라 상당한 실력을 지녔더라고요. 한글 클래스의 학구열에 저도 자극을 받아 한글 공부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고, 결국 최선을 다하게 되었어요. (웃음)
고등학생 때부터 한국의 대학교에 다니고 싶었지만, 그때는 장학금까지 받을 성적이 아니었고, 고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 장학금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2년 전 한국에 오게 되었답니다. 학창 시절부터 키워온 한국에 대한 열정이 ‘장학생 합격’이라는 결실을 이루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특히 놀라웠던 것은 겨울인데요. 카자흐스탄은 기온이 –35도로 이하로 떨어져 휴교할 때도 있었기에 ‘따스한 겨울’을 만끽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꿈에 그리던 한국에 왔지만, 마냥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카자흐스탄 사람이지만, 외향적으로는 동아시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니 한국말을 잘하지 못할 땐 모두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더라고요. 존댓말이나 높임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식당 종업원에게 반말로 주문을 했을 때는 정말 아찔했죠. 나이와 연세는 같은 뜻인데 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해야 하는지 이해도 잘 가지 않았고, 숫자 일곱을 ‘칠(7)곱’이라고 발음하는 작은 실수담도 있어요.
하지만 한국 현지에서 배워나가는 즐거움은 어려움을 압도할 만큼 컸어요. 예를 들어 ‘아재 개그’를 처음 들었을 때는 전혀 이해도 가지 않고 웃음도 나지 않았는데, 언어유희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면서 좋아하는 개그 코드로 자리 잡았어요. 그리고 같은 ‘응’이라도 억양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잖아요. 끝 음을 올려서 ‘응?’하면 질문이 되고, 반대로 내리면 대답이 되는 점이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특히 한글에는 번역할 수 없는 고유한, ‘대체 불가능함’이 있거든요. 저는 한국에서 ‘눈치’라는 단어를 듣고 소름이 돋았어요.
‘센스’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인간관계를 포함해 나를 둘러싼 상황을 살피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는 감각’에 가까운 표현이잖아요. 저는 단순하고 무딘 편이라 ‘눈치’가 없는 편이었지만 이 단어를 알게 되고 예전보다 사려 깊게 행동하려고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요. 한국에서 자신보다 타인의 기분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곤 하는데 아마 이 ‘눈치’라는 개념이 있어서 아닐까요.
올해 목표는 한국어 능력시험을 다시 응시하는 것이에요. 마지막으로 시험을 본 2년 전보다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점검해보고 싶거든요. 앞으로 더 먼 미래에는 제가 공부하는 분야를 더욱 파고들어서 전기전자공학과 학사를 취득하려고 해요. 가상공간, 그리고 첨단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기 때문에 저 역시 그에 발맞춰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찬란한 미래를 향해 저와 함께 달려가면 어떨까요.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