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 자라나니 ‘모모모모모’가 되었고 벼가 바람에 쓰러지니 ‘뚀뚀뚀뚀뚀’가 되었다.
2021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상을 수상한 밤코 작가의 책 『모모모모모』에는
한글을 낯설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반짝임을 찾은 그의 재치가 듬뿍 담겨있다.
따스한 그림이 가득한 작품에 한글의 맛과 멋을 한껏 담아낸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그림책 만드는 작가 밤코입니다. 가까운 일상을 낯설게 보기를 좋아하며 그 속에서 찾은 반짝임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중 2021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상을 수상한 책 『모모모모모』 역시 한글에서 찾은 반짝임으로 만들었어요. 한글의 재미를 살린 이 책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수 있어 뜻깊은 마음입니다.
현재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특히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대학 시절,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 블로크의 그림책 『나는 기다립니다』를 통해 처음 그림책 세계를 만났습니다. 짧은 문장과 거친 펜 선, 붉은 털실을 이용해 찰나와 같은 우리 인생을 보여준 책이었죠. 그리고 문학과 미술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매력적인 장르에 단번에 빠져들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했고, 영화·드라마·소설·만화 분야를 구분 짓지 않고 이야기를 즐겨 찾는 사람이다 보니 그림책의 세계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내 이야기를 펼쳐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어요. 그래서 그림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답니다.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대표 작품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껏 쓰고 그린 책으로 『사랑은 123』, 『근데 그 얘기 들었어?』, 『모모모모모』, 『이건 운명이야!』, 『걱정머리』 등이 있습니다. 『사랑은 123』은 1부터 10까지 숫자를 통해 남녀가 만나고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글자로 형상화하여 써낸 책이죠. 말놀이 형식을 빌린 『근데 그 얘기 들었어?』는 잘못 전달된 말로 인해 오해와 소문이 쌓여 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책이고요.
▲『사랑은 123』
▲『근데 그 얘기 들었어?』
▲『이건 운명이야!』
▲『걱정머리』
『모모모모모』는 간결한 그림과 반복되는 낱말을 통해 벼의 한살이를 표현한 책이고 『이건 운명이야!』에는 육식 공룡과 초식 공룡의 사랑으로 태어난 인간 아이와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어요. 가장 최근작 『걱정머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통해 걱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에요.
작품 『모모모모모』가 2021년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모모모모모』
『모모모모모』는 번역이 거의 불가능한 책입니다. ‘벼’를 눕히거나 붙여서 만들어 낸 ‘뚀뚀뚀뚀뚀’와 ‘뼈뼈뼈뼈뼈’는 번역도 어려울뿐더러 ‘뼈’를 직역하여 ‘bone bone bone bone bone’으로 쓰면 애초에 전달하고자 했던 언어유희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죠. 한글의 재미만을 살려 작업한 책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수상은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았어요.
하지만 늦은 밤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고 너무 놀라고 얼떨떨해서 눈물이 났어요. 비록 외국인들이 한글의 재미를 다 알 순 없었겠지만, 아버지의 농사와 한글을 엮어 만든 책이 해외에서 수상했다는 점은 저에게도 신기한 경험이었고 무엇보다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모모모모모』는 수상 덕분에 프랑스에 수출되기도 했는데요. 한글을 번역했다기보다 그림에 프랑스어를 붙인 프랑스 낱말 놀이책이 되었습니다. 울랄라. (웃음)
▲『모모모모모』에서 한글 ‘벼’를 활용한 모습
『모모모모모』에서 모가 자라나고 벼가 익어 수확되는 과정을 한글로 표현한 것이 눈에 띕니다. 한글의 뜻과 형태를 모두 활용하셨는데요. 주제를 ‘벼농사’로 정하신 계기와 한글을 그림처럼 활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시골에서 한평생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키우셨어요. 이제는 은퇴하신 아버지와 조금씩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벼농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아버지의 수고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농사 이야기를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그림책의 리듬에 관한 공부도 하고 있었고, 문장 없이도 이해되는 책을 만들어 보고 싶어 고민하던 찰나 ‘모모모모모’, ‘내기내기내기’ 같은 반복되는 낱말이 떠올랐어요. 낱말의 반복을 통해 벼의 한살이를 재치 있게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미지 플롯을 짜며 벼가 잘 자라면 ‘벼벼벼벼벼’, 태풍이 와서 벼가 쓰러지면 그림과 텍스트를 함께 눕혀 ‘뚀뚀뚀뚀뚀’, 벼를 묶어 주는 장면에서는 벼와 벼를 묶어 ‘뼈뼈뼈뼈뼈’를 만들어 주었죠. 그리고 참새들이 우는 소리는 ‘지지벼벼지지벼벼’가 되었어요.
글자를 눕히거나 뒤집거나 묶어도 또 다른 글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과 지지베베가 지지벼벼가 되는 기적은 벼가 한글로 ‘벼’였기 때문에 가능했죠. 또한, 평소 사소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며 즐겼기에 저에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작품 『사랑은 123』 역시 숫자와 알파벳, 한글의 조형적인 공통점을 활용하여 제작하셨습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시면서 느끼신 한글만의 특징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글은 저에게 문자보다는 이미지에 가깝게 읽혀요. 숫자나 영어 등 다른 문자들도요. 기본적으로 세상을 이야기보다 이미지 중심으로 읽어내는 습관 때문인데요. 제 첫 책 『사랑은 123』도 그런 습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만든 책이에요. 첫 책에서 문자를 이미지로 만들고 이를 가지고 놀아보았던 경험이 『모모모모모』까지 이어져 더 간결하면서 불필요한 것이 없는 책을 만들 수 있었죠. 작업하면서 더욱 한글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한글 낱말은 뒤집혀도 넘어져도 읽을 수 있어요. 또 글자를 붙였다 떼면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는 단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글은 이미지로 재창조하는 것에 즐거움을 주는 문자이고 즐거운 놀이 도구가 될 수 있어요.
성인·어린이 독자들이 작가님의 그림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길 바라시나요?
제 책에는 구석구석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지 못하는 요소들이 숨어 있는데요. 독자들을 만나보면 어른 독자보다는 어린이 독자들이 이 요소들을 더 쉽게 발견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림책은 글자와 그림을 함께 읽는 책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시고 글과 그림을 천천히 읽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순간의 작은 기쁨을 독자들과 함께 느끼고 싶어요.
현재 준비하고 계신 작품 중 한글과 관련된 작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몇 년 전 한글 자음으로 책의 물성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제작해야 해서 선물용으로 만든 두 권을 제외하고 더 제작하고 있지 않아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다시 제작해서 여러분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한글은 저에게는 빛나는 영광을 가져다준 문자입니다. 정말 특별하고 감사한 한글이죠. 앞으로도 한글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더 열심히 낯설게 볼 거예요. 그리고 그 속에서 찾은 반짝임으로 한글의 재미를 듬뿍 담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