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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박웃음 참여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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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행사
국립한글박물관 관람하고,
인증사진을 남겨보세요! -
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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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잊혀가던 강릉방언을
사전에 담아 널리 알리다이익섭 서울대 명예교수
사라져가는 것을 억지로 붙잡아둘 수는 없지만, 그 존재를 기록으로 남겨 보존할 수는
있습니다. 바로 사투리 이야기입니다. 국립국어원장을 역임한 국어학계 원로 학자 이익섭
교수는 11년간 고향인 강릉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사투리를 채집한 뒤 약 3,000쪽 분량,
2만여 단어의 표제어로 사전을 집대성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80대까지 이 일을 이어갔다는
점입니다. 이익섭 서울대 명예교수를 반갑습니다 5월 호에서 만나보았습니다.
강릉방언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
사전 집필로 결실을 맺다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익섭입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직에서 퇴임한 후 20년이 넘게 명예교수로 지내고 있습니다.
『강릉방언자료사전』을 집필하셨는데요. 고향의 방언을 사전으로 펴내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지난 2022년 2월에 3,000쪽이 넘는 『강릉방언자료사전』을 출간했습니다. 무려 11년이 걸렸지요. 사실 젊은 시절 강릉방언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강릉방언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도 했지만 ‘사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방언을 조사하러 다니기에 늦은 나이임에도 이처럼 큰일에 뛰어든 데는 계기가 있었지요. 좀 긴 얘기지만 요약하자면, ‘강릉방언이 세상에 잘못 알려지는 것을 그대로 방관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집필을 시작하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익섭 교수가 집필한 서적들
사전 집필을 위해 강릉에 현지조사를 다니셨다고 들었는데요. 관련된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1년 3월부터 한 달에 두세 번씩 직접 차를 몰고 강릉에 갔습니다. 한 번 가면 3~4일 머무르면서 제보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늦게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지요. 그러다 보니 서로 정이 많이 들어서, 학술연구를 위한 조사라기보다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혹여 눈이 오는 날엔 ‘왜 위험하게 차를 직접 몰고 오느냐’며 걱정도 해주시고, 일이 바빠 좀 뜸했다가 가면 ‘어디 편찮은 건 아닌지 염려했다’고도 했습니다. 또, 제가 방언 제보자분들의 사진을 찍어 액자에 넣어드리는 일을 즐겨 했는데요. 워낙 고령이시다 보니 안타깝게도 제가 드린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 방언 제보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익섭 교수
그밖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 일화만 말씀드릴게요. 자주 방문했던 지역에서 세 분의 할머니를 모시고 조사를 했는데, 최고령 어르신이 당시 93세였어요. 세 분 중 가장 건강하시기에 ‘백세를 넘기시겠다’고 했더니 펄쩍 뛰시면서 ‘악담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분과 내기를 했지요. 100세까지 사시면 제가 금비녀를 해드리겠다고요. 금비녀를 두 차례나 잃어버리신 뒤 ‘죽을 때까지 꼭 금비녀를 하고 싶었는데 며느리가 은비녀를 해줬다’며 아쉬워하던 모습을 자주 뵀거든요. 나중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좋았지만, 지금은 그분뿐만 아니라 저에게 좋은 방언 자료를 주시던 분 중 반 이상이 돌아가셔서 세월의 무상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전을 집필하면서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문을 많이, 또 길게 넣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존 방언집들에는 초기엔 아예 예문이 수록돼 있지 않았고 나중에 추가되더라도 대부분 짤막하게 각색한 단문만 실려 있었습니다. 제 방언사전에는 한 표제어에 예문이 열 개 넘게 달린 경우도 많습니다. 동시에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습니다. 방언은 문어(글말)가 아니고 구어(소리말)니까요. 그래서 방언을 이루는 소리 요소를 정밀하게 표시하고자 특수 기호까지 동원했습니다. 강릉 방언은 평서문임에도 말끝 억양을 유난히 올리는 것들이 있고, ‘-ㅆ나’를 ‘-ㄴ’으로 줄여 말하는 의문문에서는 그것과는 또 다른 억양으로 유난히 올리는 특징이 있는데요. 이런 것들을 “막상 해 보니 안 되거던↗.”, “못 온다더니 우떠 완↑?”과 같이 표기한 것입니다. 강릉방언은 음장(말의 길이)뿐 아니라 성조(높낮이)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장과 성조를 예문에 꼼꼼하게 표기해 소리말로서의 특징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예문 예시>
′츰:애 딸으 ′낳:아 ′가주구는, 친저ㆁ어 가 ′낳:았이니, 그그 머 또 ′기벨하느라구, 또 그 ′걸어서 ′여개꺼지 와 ′가주구, 손지딸 ′낳:았다구 인재 그그 하니, ′머이 ′옆애서 한마대만 더 ′하문 울ㆆ: 긋 같터래. 우리 시어머ㆁ이거. 섭섭해 ′가주고.
이 사전에는 민속자료도 담겨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농촌에 가도 그 흔하던 지게도 보기 어렵고, 아궁이에 불을 때는 부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급격히 전통사회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동식물을 두고 멸종 위기 1급이니 2급이니 하지만, 민속에도 그런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방언도 마찬가지라서 사전을 만들게 된 것이지만, 민속 분야 조사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간단한 예로 ‘도리깨’ 하나만 보더라도, 어떤 부위는 무슨 나무를 쓰고 길이는 어느 정도로 만드는지 등을 소상히 기록하려 한 것입니다. 사진을 보면 도리깻열이 세 개인데 그 끝이 모두 몽톡하게 생긴 것을 알 수 있고, 또 가운데 것은 길이가 좀 짧습니다. 각각 그 기능이 있어 그런 것인데, 앞으로 도리깨를 쓸 일이 점점 없어질 테니, 이런 것을 지금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방언사전 명칭을 『강릉방언민속사전』으로 할까 생각했을 정도로 민속 분야에도 많은 정성을 들였습니다.
강릉을 가장 강릉답게 만들어 주는
방언을 집대성하다
재미있는 강릉방언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표준어 하나로 대체하기 어려운 방언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꽅얼금’은 꽃이 핀 다음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꽃이 어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런 표현이 따로 존재한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해뜾이 없다’는 말도 신기했어요.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로 접어들면 해가 짧아지는데 일을 더 하고 싶을 때 해가 사라져 버린다, 즉 ‘해가 우리를 도와줄 뜻이 없다’는 말입니다. 해가 스스로 어떤 의지를 갖고 그런 행동을 한다는 발상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런 방언들이 참 많은데 더 소개하지 못하는 게 아쉽네요.
강릉방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말 많습니다. 한두 가지만 꼽자면 우선 개성이 강하다는 건데요. 인근의 삼척, 양양 사람들의 말을 한두 마디 듣고 강릉 출신인지 아닌지 맞히라면 강릉 사람들은 누구나 백 점을 맞을 것입니다. 또한 서울에서 낯모르는 동향 사람을 만났을 때 “고향이 강릉이래요?”라고 묻는 경험을 강릉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습니다. 이만큼 좁은 자역이 독자적 방언권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을 달리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음장과 성조가 음운의 기능을 하는 것 역시 강릉방언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와 더불어 ‘ㅐ’와 ‘ㅔ’도 잘 구별하고 ‘ㅚ’와 ‘ㅟ’도 정확히 단모음으로 발음하며, ‘ㆉ’와 같은 특이한 발음도 가지고 있으므로 강릉방언은 음운의 수가 가장 많은 방언이기도 할 것입니다,
‘지역다움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 방언’이라고 하셨는데요. 그 이유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어딘가에 가면 먼저 그 지역의 방언을 듣게 되고, 그 순간 해당 지역에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 고향이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자기가 어려서 듣던 고향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몇 년 전 강릉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 제가 ‘강릉 사투리 박물관을 하나 만들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요. 이렇게라도 급격히 사라져가는 방언을 살려 나가는 노력을 하면 좋겠습니다. 그 지역의 특색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으로 방언만 한 것이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중에서도 혹시 한글과 관련한 내용이 있다면 함께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릉 방언사전을 만들면서 훌륭하신 이야기꾼을 만나 귀한 설화를 30편 넘게 수집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사전 작업이 끝나면 그걸 따로 정리해 보겠다고 약속해 왔었는데 우선 그 일을 마쳐야겠습니다. 한쪽은 강릉방언으로, 다른 한쪽은 표준어로 풀어서 원고를 다 만들어 놓았는데, 올해 안으로 그 책을 출간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글의 우수성을 이야기하지만 대개는 구호를 외치듯 겉돌고 정작 문자론적으로 파고드는 일에는 소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군분투하다시피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 많은 글을 써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특히 모아쓰기의 장점이나 현행 맞춤법의 원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 부분을 알리는 일에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늘 앞장에 서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한국의 언어』(신구문화사, 1997)라는 책을 공저로 썼는데요. 우리말로도 출간되긴 했지만, 애초에 미국 독자들을 위해 영어로 번역될 책으로 집필한 것입니다. 그 머리말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한국어는 이제 결코 한반도 안의 언어가 아니다. 이 놀라운 발전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솟곤 한다. 초등학교에 나는 내 이름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였다. 우리말을 쓰면 벌을 받는 것이 무서워 소변이 마려워도 말 한마디 못하던 시절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한 뼘이라도 더 멀리 우리말이 세계로 뻗어간다면 지난날 우리의 서러움쯤은 잊어도 좋을 것이다.”
▲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의 언어』 러시아판 출판기념회
이런 저에게 한글이 어떤 의미겠어요? 한글은 저에게 조국이요, 부모요, 반려자입니다. 『한국의 언어』는 영어뿐 아니라 나중에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러시아어, 튀르키예어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한글은 이제 저에게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