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웃음 참여 행사

  • 하늘색 배경이 있고, 왼쪽 상단에 ‘6월 참여 행사’라고 적혀 있다. 그 아래 제주도 모형이 있으며, 모형에는 제주도의 명물인 귤과 돌하르방·말 등이 있다. 오른쪽 하단에 여섯 명의 사람들이 있다. 세 사람은 파란색 표지의 책을 펼치고 있으며, 한 명은 박수를 치고 있다. 한 명은 악기를 불고 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책을 펼친 사람의 팔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 참여 행사 나도 제주 사람 도전!
    알맞은 제주도 방언은?
  • 한박웃음
    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
    ‘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 한박웃음
    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
    ‘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사진. 안경을 쓴 이기갑 목포대 교수가 웃고 있고, 그의 뒤에는 빨간색으로 쓰인 글자가 있다.

반갑습니다 사라지는 전라도 방언을 좇아
40년을 연구하다이기갑 목포대 명예교수

방언에는 그 지역의 문화와 정서가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이기갑 교수는 40년 전 자신의 고향인 전라도 지역의 방언 연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매진하고 있습니다.
100여 편의 논문과 20여 권의 사투리 기록서를 집필하는 등
소멸해가는 고향의 언어를 수집하고 기록해 온 것입니다.
이번 6월호에서는 이기갑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그가 걸어온 길과 연구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 합니다.
사투리라는 파편 속에 깃든 우리말의 풍부한 이야기, 함께 들어보실까요?

방언 연구 통해 우리 사회에 기여,
방언조사는 귀한 인생 공부

인터뷰어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이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광주에서 자랐고, 서울대학교에서 언어학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1년부터 2020년까지 목포대학 국문과에 재직했습니다. 관심 분야는 우리말 문법인데,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방언의 문법을 연구했고, 미국의 UCSB(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에서 입말 담화(discourse)에 관해 공부한 뒤, 이를 우리말 방언에 접목시키는 시도도 해 왔습니다. 또한 2004년부터 10년간 국립국어원이 주관한 ‘한반도 지역어 조사 및 전사 사업’에서 전라남도 지역을 맡아 하였습니다. 그동안 100여 편의 논문과 20여 권의 단행본을 발간했고, 이러한 연구 성과에 힘입어 전라남도 문화상(1998년), 지훈 학술상(2005년), 심악 이숭녕 국어학 저술상(2007년), 일석 국어학상(2022년) 등을 수상했습니다.

인터뷰어

방언 연구를 시작하신 계기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이

저는 원래 눈뫼 허웅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우리말 문법의 역사를 공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목포대학에 자리를 잡으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지방이라 옛 문헌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자료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방언을 학위논문 대상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전라도 방언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명분도 있었습니다. 이후 방언 문법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게 되었고, 특히 서남해 섬 지역의 접근이 쉬운 목포 지역에서 근무하다 보니, 섬 지역 방언에도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어

방언 연구를 오래 지속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뷰이

방언 연구가 국어학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현재의 다양한 언어 상태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우리말도 보여줍니다.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방언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말 연구의 지평을 그만큼 넓힐 수 있다는 점도 방언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될 것입니다. 방언은 표준말과 달리 글말이 아닌 입말만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입말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대상이라는 점도 제 흥미를 유발하였습니다. 방언은 표준어 교육의 영향, 매스컴의 압도적인 위력 때문에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점도 방언 연구를 계속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위해 기여할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이 길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 사회나 지역 사회 발전에 공헌한 사람들을 보아 왔지만, 저는 연구를 통해 고향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구부러진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은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여러 이유로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방언을 조사하고, 정리하고, 연구해 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해 봅니다.

인터뷰어

다른 지역 방언과 비교해 돋보이는, 전라도 방언만의 특징을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이

억양의 경우, 장단의 구별이 있으며, 전북은 전남에 비해 대체로 약간 느린 억양을 가져 충청 지역과 유사한 면을 보입니다. 소리의 측면에서는 된소리가 많아, 약간 강하게 들리는 면이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전북보다 전남에서 더 강한데, 예를 들어 ‘꼬숩다/꼬시다’(=고소하다), 따듬다(=다듬다), 뽄딸다(=본받다), 썽내다(=성내다), 찐이 빠지다(=진이 빠지다) 등입니다. 낱말에서는 보조동사 ‘불다’(=버리다)나, ‘놓다’의 사용 빈도가 다른 방언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습니다. 그래서 ‘비싸 부네’(=비싸네), ‘비싸 놔서’(=비싸서)처럼 형용사에도 이런 보조동사가 쓰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두 남성이 앉아 있는데, 왼쪽에는 방언 제보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이기갑 교수가 있다. 이기갑 교수는 방언 제보자의 말을 듣고 있다. ▲ 방언 제보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기갑 교수

문법의 측면에서는 부정을 표현할 때 어미 ‘-지’를 잘 사용하지 않고, 대신 ‘-들’, ‘-든’, ‘-도’ 등 옛말에서 쓰였던 말들을 사용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가도 안헌다’ ‘울들 안해’, ‘묵든 안허제’와 같습니다. 중부방언과 달리 예사높임이나 예사낮춤의 위계가 발달되어 있어, 이들에 속하는 각종 어미들의 사용 빈도가 매우 높습니다. ‘가오/먹소’에서 변화를 입은 ‘가요/묵소’는 높임의 위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고, 예사낮춤에 속하는 ‘가네/간가/가소/가세’와 같은 활용이 말할 이보다 낮은 위계의 사람뿐만 아니라, 친밀하면서도 약간 높은 위계의 엄마, 누나, 오빠 등의 상대에게도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인터뷰어

방언과 관련해 경험하신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이

저는 대학에서 대학원까지 약 8년간 서울에서 지냈기 때문에 제가 어느 정도 표준말을 구사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서울 학회에서 발표할 때 제 말을 듣고 청중들이 자꾸 웃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전라도 방언에 완전히 물들어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글박물관 기획 전시에서도 서남방언 토박이말 구사자로 뽑히는 영광을 누리게 됐습니다. 주위의 환경, 조사의 경험 등이 이처럼 완전한 전라도말 화자로 만든 것 같습니다.

저의 방언조사는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는데, 시골에 다니다 보면 아주 형편이 어려운 집을 방문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가 집을 나가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 얼굴이 얽었다는 이유로 온갖 시집살이를 했던 제보자, 장애가 있는 손자를 보며 매일 눈물 짓는 할머니 등, 조사자이면서도 제보자의 삶에 함께 울고 웃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 대부분은 모두 현재의 생활에 무척 만족하고 계셨습니다. 제보자들이 주로 7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보니, 조사 후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신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보자 한 분이 돌아가시면 그분의 언어 자산은 통째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방언조사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된다는 주장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방언학 강의에서 섬 지역의 방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섬사람’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습니다. ‘섬사람들은 어쩌고저쩌고….’ 등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어느 학생이 ‘섬사람’이란 표현에 대해 불쾌하다면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로서는 아무런 의식 없이 한 말이었지만, 정작 섬이 고향인 학생에게는 ‘섬놈’과 같은 비하의 느낌을 주었던 것 같았습니다. 이런 경험은 사람을 대할 때나 방언조사를 할 때 귀중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방언조사를 다니면서, 여러 곳을 방문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참으로 귀한 인생 공부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언은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
조사·수집·기록 통해 말뭉치 만드는 일 시급

인터뷰어

방언 연구나 매체에서 등장하는 방언과 관련해서 개선되길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이

제 욕심으로는 전라도 방언에 대한 연구가 그다지 많이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방언 연구 자체가 우리말의 다른 분야에 비해 약한 것은 사실인데, 그 가운데서도 전라도 방언 연구의 양적, 질적 성과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연구자의 숫자가 적은 탓으로 보입니다. 또한 국어학 연구자의 관심이 방언 이외의 분야에 치중되다 보니 자연히 방언 연구가 소홀히 된 듯합니다. 그래도 전라도 방언의 문법 분야는 제가 주로 맡아 해 왔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라도 방언이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늘 불만입니다. 우선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폭, 사기꾼 등의 언어로 정착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 또는 제작자들의 인식이 문제라 하겠습니다. 자신의 토박이말인 방언은 말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어머니와 같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를 폄하하고 우스운 사람으로 대접할 때, 자식이 느끼는 감정은 어떠하겠습니까? 방언은 표준어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가치와 체계를 지닌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방언이 평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방언이 지닌 언어학적 가치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 역시 비록 사적인 영역에서 방언이 사용된다 하더라도 방언 사용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뷰어

사투리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이

사투리 곧 방언은 우리 문화의 귀중한 유산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유형문화유산을 문화재 등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유산인 언어도 기록하여 보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방언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녹음하고 기록하고 디지털화해서 가능한 모든 방언의 말뭉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으로서 급한 것은 사라져 가는 방언의 기록입니다. 기록해 두지 않으면 우리의 언어문화는 그만큼 소멸될 것이며, 우리의 후손은 뿌리 없는 민족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과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언어 자료가 불충분하여 고대 한국어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현재 사용되는 모든 방언을 조사하고 수집하고 이를 전사하고 정리하여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인터뷰어

향후 방언과 한글, 국어와 관련한 활동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이

저는 2022년에 ‘서남방언의 문법’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습니다. 전라도 방언의 문법을 총체적으로 기술한 책입니다. 이러한 작업을 다른 방언에까지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선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방언의 문법 체계를 기술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각 지역 방언의 문법 체계를 기술하는 것이 남은 제 연구의 목표입니다.

왼쪽에 앉은 이기갑 교수가 오른쪽에 앉은 방언 제보자들의 말을 들으며 기록을 하고 있다. ▲ 방언 제보자들의 말을 녹음하고 메모하는 이기갑 교수

인터뷰어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이

한글은 글이 없어 고통받는 백성을 위해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글자입니다. 한글은 백성의 고통을 헤아린 위대한 위정자의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은 지식에서 소외되고 평생을 무지렁이로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한글이 없었다면 15세기 이후 우리말의 역사도 오리무중에 빠졌을 것입니다. 이러니 한글은 우리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해상도 높은 카메라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한글은 그 가치가 더욱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IT 강국이 되어 갈수록 한글 사용자로서 세종대왕에 대한 고마움은 커져갑니다. 더구나 한글은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인 문화의 기호가 되고 있습니다. 한글의 단순함, 편리함, 아름다움은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한글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한글박물관’이야말로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우리만의 자랑스러운 기관이라 하겠습니다. 저 역시 우리말을 연구하는 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지역의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학자 개인의 호기심만을 충족시키는,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바지하는 연구가 진정 가치 있는 연구라 생각해 왔습니다. 방언 연구의 밑바탕에는 저의 이러한 생각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사진 출처: 이기갑 교수>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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