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공감
한글 공감
한박웃음 참여 행사
-
참여 행사 소장품 이야기 읽고
문제를 맞혀보세요! -
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
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소장품 이야기
천국을 향한 긔독도의 모험
『천로역정』
존 번연, 『천로역정』 저자의 말
세상의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얻는 것,
그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일 것입니다.
여기 남루한 옷을 입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천국을 찾아 나선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의 작가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입니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은 1678년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주인공 크리스천(Christian)이 천국에 이르는 여정을 소설로 그려냈습니다. 1670년대에 나온 책이 1885년에 이미 7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될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겠죠? 우리나라에서도 1895년에 번역본이 출판되었습니다. 번역에는 선교사 제임스 게일(James S. Gale)과 그의 부인 해리엇 깁슨(Harriet E. Gibson), 한국인 교인 이창직이 참여했습니다. 1888년 조선에 온 게일은 다양한 번역과 창작을 통해 선교 활동을 펼쳤는데, 『천로역정』의 번역 또한 그중 하나입니다.
한글 번역본에서 주인공 크리스천(Christian)은 ‘긔독도’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긔독도’는 자신이 살던 ‘쟝망셩’을 떠나 순례를 떠납니다. 여행길에서 ‘우울리’에 빠지거나 ‘회의, 심경, ᄒᆡ타, 위션’ 등을 만나는 어려움을 겪지만, ‘은조, 인ᄌᆞ, 효시, 진츙’ 등의 도움으로 마침내 ‘텬ᄉᆞ’를 만나 ‘텬국’에 이르게 됩니다. 한글 번역본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종교적 단어를 한자어 또는 우리말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는데, 기독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람 이름이나 지역 이름 같은 고유명사를 별도로 풀이해 두기도 하였습니다.
구분 | 단어 | 풀이 | 비고 |
---|---|---|---|
사람의 이름 | 긔독도 | 긔독의 뎨ᄌᆞ라 ᄒᆞᄂᆞᆫ ᄯᅳᆺ시라 | 기독의 제자(예수의 가르침을 받은 자) |
회의 | 의심 만흔 ᄯᅳᆺ시라 | 의심이 많은 사람 | |
심경 | 뇰난다 ᄒᆞᄂᆞᆫ ᄯᅳᆺ시라 | 잘 놀라는 사람 | |
위션 | 거ᄌᆞᆺ 착ᄒᆞᆫ 톄 ᄒᆞᄂᆞᆫ ᄯᅳᆺ시라 | 거짓으로 착한 체 하는 사람 | |
은조 | 도아주ᄂᆞᆫ ᄯᅳᆺ시라 | 도와주는 사람 | |
효시 | 사ᄅᆞᆷ을 ᄭᆡ닷게 ᄒᆞᄂᆞᆫ ᄯᅳᆺ시라 | 사람을 깨닫게 하는 사람 | |
셩실 | 진실ᄒᆞᆫ 거ᄉᆞᆯ 가ᄅᆞ친 ᄯᅳᆺ시라 | 진실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 | |
땅의 이름 | 쟝망셩 | 쟝ᄎᆞᆺ 멸망ᄒᆞᆯ ᄯᅳᆺ시라 | 장차 멸망할 땅 |
우울리 | 걱졍 모아 넛ᄂᆞᆫ 구덩이라 | 걱정을 모아 넣는 구덩이 | |
슈ᄒᆡᆼ촌 | ᄒᆡᆼ실 닥ᄂᆞᆫ 마을이라 | 행실을 닦는 마을 | |
혼미향 | 혼미ᄒᆞᆫ 마을이라 | 혼미한 마을 | |
긔신향 | 밋ᄂᆞᆫ ᄆᆞᄋᆞᆷ 버리ᄂᆞᆫ ᄯᅳᆺ시라 | 믿음을 버리는 마을 | |
ᄎᆔ디 | 즐거온 ᄯᅡ이라 | 즐거운 땅 | |
ᄉᆞ하 | 죽ᄂᆞᆫ 물이라 | 죽음의 강 |
이와 더불어 본문에서 어려운 단어가 나타날 때, 사람 이름일 경우 줄 하나를 긋고 땅 이름일 경우에는 줄 두 개를 그어 둠으로써 단어 풀이를 찾아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낯설거나 어려운 말을 보고 당황할 독자들을 배려한 편집 부호였던 것이죠.
▲ 사람의 이름(긔독도) 예시
▲ 땅의 이름(우울니) 예시
『천로역정』의 번역본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간행되었습니다. 하나는 서울의 배재학당 삼문출판사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 상해에서 신식 연활자로 간행되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1895년에 간행되었는데, 목판본에 비해 인쇄 비용이 저렴한 연활자본을 함께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는 목판본 『천로역정』(2책)과 신연활자본 『천로역정』(1책)이 모두 소장되어 있습니다. 수록된 내용과 한글 표기, 삽화 등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신연활자본은 목판본에 비해 책과 글자의 크기가 작습니다.
▲ 목판본 『천로역정』
장면1 긔독도가 뎐도의게 도ᄅᆞᆯ 밧다
▲ 신연활자본 『천로역정』
장면1 긔독도가 뎐도의게 도ᄅᆞᆯ 밧다
『천로역정』에는 본문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42개의 삽화가 실려 있습니다. 그림은 풍속화가로 잘 알려진 기산 김준근(金俊根, ?~?)이 그렸는데, 내용이 퍽 재미있습니다. 서양에서 묘사하는 천사, 천국, 전도자 등의 모습을 우리나라 풍속에 맞춰 변형해 그린 것입니다.
▲ 12장면
긔독도 십ᄌᆞ가에 다다ᄅᆞ 죄짐을 벗ᄉᆞ니 텬ᄉᆞ가 흰옷ᄉᆞᆯ 닙히다
▲ 21장면
긔독도가 악귀ᄅᆞᆯ 만나 긔도ᄒᆞ다
『천로역정』에 실린 12번째 삽화는 긔독도가 십자가에 이르자, 그의 짐(죄의 봇짐)이 저절로 벗겨지고, 천사들이 더러운 옷을 벗기고 흰 옷을 입혀 주었다는 내용을 표현한 것입니다. 천국 여정에 나선 긔독도는 갓을 쓰고, 봇짐을 메고, 짚신을 신고 있으며 그의 옷을 갈아입히는 천사들은 마치 선녀처럼 하늘거리는 날개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21번째 삽화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악귀를 만난 긔독도가 기도를 통해 두려움을 떨쳐내고 무사히 골짜기를 빠져나온 이야기입니다. 서양적인 악마의 모습과 긔독도가 입고 있는 동양적 갑옷이 절묘하게 느껴집니다. 원서의 삽화를 참고하되 등장인물의 복식이나 생김새, 배경이 되는 장소의 묘사를 우리 정서에 맞춤으로써, 기독교를 낯설게 여길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간 것입니다.
고된 현실 속 절대자에 대한 의지, 알 수 없는 죽음 너머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종교에 대한 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한글로 번역된 『천로역정』 또한 천국에 대한 열망과 천국 가는 길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당시 사람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읽혔을 것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우울에서 벗어나 기분을 전환하고, 어리석음을 떨치고 밝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긔독도의 모험에 동참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