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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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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일본에 한국 문학의 매력을
널리 전파하다
시미즈 치사코 번역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 세계가 한국 문학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한국 문학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이번 11월호에서는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를 10년 동안
일본어로 완역하는 작업에 참여한 시미즈 치사코 번역가를 만나 보았습니다.
시미즈 치사코 번역가는 『토지』뿐만 아니라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일본에 소개하며, 한일 문학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일본에 소개한 한국 문학 작품들과 작품 번역 과정에 얽힌 이야기,
한국 문학의 말맛을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 들어보았습니다.
풀코스 마라톤 뛰듯 꾸준한 근성으로
『토지』 20권 완역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국 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시미즈 치사코입니다. 저는 오사카 남쪽에 있는 와카야마에서 태어났고 대학을 졸업한 후 오사카, 히로시마, 고베 등에서 15년 정도 요미우리신문 기자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도쿄에서 살고 있고 진보초에 있는 한국 서적 전문점 ‘책거리’에서 한국 책의 매력을 일본 독자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0년 전부터 번역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의 에세이집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이슬아 작가님의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 오정희 선생님의 소설집 『유년의 뜰』, 신선미 작가님의 그림책 『한밤중 개미 요정』, 박성우, 김효은 작가님의 어린이책 『아홉 살 마음 사전』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번역해 왔습니다.
▲ 일본어로 번역 출간된 박경리 작가의 『토지』

처음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와 과정을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유는 88올림픽에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1986년 가을, 진로를 고민하던 저에게 세계사 선생님은 ‘올림픽을 계기로 한일 교류가 활발해질 테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의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습니다.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어차피 외국어를 배울 거라면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언어에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웃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잘 몰랐던 한국을 이번 기회에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사카 외국어대 한국어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영화, 드라마, K-POP, 그리고 문학까지 지금의 세계적인 한류 붐을 생각하면 그때 세계사 선생님에게는 정말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번역 과정에서 느끼신 한국어와 한글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국어의 매력 중 하나는 형용사가 풍부하다는 점입니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은 9살 아이의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그림과 같이 상황별로 소개하는 책인데, 한국어로 말할 때는 다른 단어지만 일본어로 옮기면 결국 같은 단어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판에는 80개의 형용사가 수록되어 있지만, 일본어판에서는 조금 정리해 74개 단어를 수록했습니다. 한국어 형용사의 다양성으로 인해 소설이나 에세이를 일본어로 번역할 때 적절한 도착어를 찾거나 그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 고심하게 되는 부분이지만, 번역가로서는 또 그런 작업과 시간이 즐겁기도 합니다.

쿠온출판사의 토지 일본어 완역팀이 제43회 세종문화상 국제문화교류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으셨을 때 느낀 소감을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략 10년 동안 풀코스 마라톤을 뛰듯 꾸준히 해온 번역 작업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깊었습니다. 총 20권 중 제가 번역을 맡은 것은 8권으로, 1년에 한 권 정도로 번역을 해왔는데,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작품을 번역하겠다고 했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중간에 숨이 찰 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번역을 마쳤을 때는 10년 동안 지켜봐 온 이야기를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 서희와 길상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쓸쓸함과 허전함이 밀려와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토지』라는 훌륭한 작품을 일본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알릴 기회가 되어 한국 정부와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제43회 세종문화상 국제문화교류 부분을 수상한 쿠온출판사 토지 일본어 완역팀

『토지』 번역 과정에서 느꼈던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완역을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워낙 분량이 방대한 데다, 경상도, 전라도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의 사투리까지 다양한 사투리가 많이 나오는 점,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넘어 중국, 러시아, 때로는 유럽까지 얽힌 약 50년에 걸친 역사가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이 모두 어려웠습니다. 사투리는 처음에 힘들었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니 패턴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또 묵독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으면 사투리 너머에 표준어가 보여 의외로 의미를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그리고 박경리 선생님의 마음속 중얼거림이라고 해야 할까요? 삶에 대한 깊은 고뇌와 인생관이 행을 바꾸지 않는 채 몇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숨 쉴 틈 없이 이야기하는 그 부분을 번역하는 데도 애를 먹었습니다. 박경리 선생님이 바로 그 자리에서 고뇌하고 깊이 생각하면서 쓴 듯한 글이라 저도 함께 고뇌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번역해야 하므로 시대적 배경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각 권마다 역자 해설을 썼는데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도서관에 다니며 한국에서 책을 구해오고, 한국 국립도서관 자료실에도 인터넷으로 접속해 많은 자료를 읽었습니다. 덕분에 당시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까지 넓은 지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옛날 만주인 간도, 용정, 하얼빈, 심양을 비롯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약 130km 떨어진 곳에 있는 ‘고려인 우정의 마을’까지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의 역사에 관심이 커지고, 세계관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 완역에 대한 강한 에너지 중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한국어는
새로운 만남과 감동을 가져다주는
보물 같은 존재

『토지』뿐만 아니라 여러 동시대 한국 문학을 일본어로 번역하셨습니다.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토지』와 달리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처럼 최근에 젊은 작가가 쓴 작품의 문장이 아주 간결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작가들은 외국어로 번역될 것을 염두에 두고 문장을 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가녀장의 시대』는 일본어판 외에 대만판도 나왔고, 영어판도 출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와 같은 글로벌 사회에서는 번역을 염두에 두고 창작 활동을 한다는 것이 너무 흥미로운 경향이고 번역하며 실제로 그것을 느꼈습니다.
힘들었던 것은 제목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선미 작가님의 그림책 『한밤
중 개미 요정』은 ‘개미 요정’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일본어로 번역했을 때 그 뉘앙스를 전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고민 끝에 『真夜中のちいさなようせい(한밤중 작은 요정)』으로 번역했는데요. 제목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뭔가를 잃게 되는 것 또한 번역의 숙명입니다. 대신 디자이너님이 표지의 제목 디자인을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으로 해주셨습니다. 이 작품은 2022년 제69회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 번역 작품상을 받았는데 신선미 작가의 작품 세계가 일본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험으로 번역서는 번역가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 디자이너, 독자 여러분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번역이 좋다는 칭찬을 가장 많이 받는 책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입니다. 원래 김하나 작가님과 황선우 작가님의 글이 유머도 있고 훌륭해서 그렇겠지만, 어쨌든 칭찬을 받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번역 출간된 지 3년 만에 4쇄를 찍었는데, 김하나 작가님과 황선우 작가님이 제안하는 새로운 가치관과 가족관이 일본 내에서 확실하게 지지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작품을 만나 일본에 소개할 수 있어 정말 영광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한국 문학 작품이 무엇인지, 일본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한국 문학 작품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4년 3월에 일본에서 출간된 오정희 선생님의 소설집 『유년의 뜰』의 번역을 맡았는데요. 그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오정희 선생님의 작품 중에 일본에서 아직 소개되지 않는 작품이 많으니 또 다른 작품을 번역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박경리 선생님의 『김약국의 딸들』은 1970년대에 부산 출신의 김소운 시인이 일본어로 번역한 적 있는데, 『토지』의 바탕이 되었다고 하는 이 작품의 신역에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일본도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고조되고 반응이 뜨겁습니다. 한강 작가님 작품의 원류에 있는 것이 오정희 선생님이나 박경리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서 한국 문학의 매력을 더 널리, 깊이 알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편, 번역 작업을 계속하면서 번역이 아닌 나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당분간은 번역보다는 에세이를 쓰는 일에 집중해 볼까 생각중입니다.
▲ 시미즈 치사코 번역가가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 도쿄 진보쵸 한국책방 ‘책거리’

마지막으로 번역가님께 ‘한국어’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어는 이웃 나라 사람들과 대화하는 데 있어 최고의 의사소통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인 제가 한국어로 말을 걸면 한국 사람들은 웃으면서 대답해 줍니다. 그리고 『토지』를 비롯해 다양한 문학작품을 번역하고 있다고 하면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이야기꽃이 핍니다.
지난 10월 말 통영에서 『토지』 일본어판 완역기념회가 있었는데, 일본 독자는 물론 한국 곳곳에서 지인분들이 오셔서 같이 축하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만남도 있었습니다. 『토지』의 무대인 하동에서 ‘하동책방’을 운영하는 강성호 대표님도 그중 한 분이었는데, 『토지』를 읽은 한국과 일본 독자들의 교류 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도 주셨습니다.
저에게 한국어는 많은 만남과 대화, 감동, 그리고 미래를 가져다주는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