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공감
한박웃음 참여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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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행사① 새해 복주머니에 들어갈
한글 유물을 골라주세요! -
참여 행사② 한박웃음과 공식 유튜브
구독해 보세요! -
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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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의 이름 ‘한박웃음’은
2018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름으로
‘함박웃음’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한박웃음’에서 ‘한박’은 국립한글박물관을
의미합니다.‘한박웃음’의 글씨는 ‘민체民體’로 유명한
여태명 교수님께서 만들어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이
담긴 한글은 나의 자랑
권명원 서예가
섬세한 붓끝으로 한글의 멋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전파하는 예술가,
권명원 서예가는 39년간 미국에서 한글 서예 작품 활동을 펼치며
한글의 미학적 가치를 알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작품은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과 미국 국회도서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에서 주목받으며,
한글의 뛰어난 가치와 예술적 깊이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글 전도사’로 불리는 권명원 서예가를 만나
그가 한글을 알리기 위해 묵묵히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세계 공용어로서 한글이 지닌 가치와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붓글씨로 담아낸 한글과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
한국을 넘어 세계인을 매료시키다

안녕하세요. 한글 서예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 한글 서예가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워싱턴 DC 근교에서 한글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는 묵제 권명원입니다. 39년간 한글 서예 작품 활동을 하며 개인전과 각종 한미 문화 행사에 참여했고, 대형 붓글씨 시범 및 외국인 수만 명에게 한글로 이름을 써주는 등 한글과 한글 서예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서당에 다니는 두 형들이 붓글씨 쓰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특별 활동 시간에 서예반에 들어가면서 붓글씨를 배우게 되었는데, 선생님의 칭찬을 자주 들어서인지 글씨 쓰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이때 어머님께서 어려운 살림에도 “붓은 좋은 것으로 써야 한다.”라고 하시며 당시 쌀 3되 값이나 하는 황모필(족제비 털로 만든 붓)을 사주셨습니다. 중·고등학교에는 서예반이 없어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붓글씨를 혼자 공부해야 했는데요. 그런데도 꾸준히 중등 글씨본 등을 사서 붓글씨를 열심히 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국미술협회주최 전국 학생 서예 공모전에 출품해 7점만 뽑는 특선을 수상했습니다. 이 수상을 계기로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죠.
1982년 제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이 국전 시대를 마감하고 열렸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개발연구원에서 근무할 때라 일 끝나고 밤늦게 작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님께서 제 곁을 지켜주시려고 일부러 늦은 시간까지 바느질하시며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때 입선 소식을 어머님께 전해드렸던 일이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박물관 또는 여러 기관에서 ‘한글’ 서예의 전시 등 행사 의뢰를 받을 때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미국 땅에서 한글 서예를 인정하고 알아준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입니다. 특히 박물관이나 기관 측에서 제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소장까지 하게 되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어쩌다 한국인이 박물관에 방문했는데 한글 작품이 눈앞에 걸려있었다면 그게 누구의 작품일지라도 반갑고 기쁜 일 아닐까요? 현재 제 작품이 소장된 몇 곳을 소개한다면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 미국 의회도서관, 링컨박물관, 케네디 센터, 맥아더 기념관 등이 있습니다.

서예가님께서 스미스소니언 재단과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궁금하고, 여러 해 행사에 참석하신 소감을 설명 부탁드립니다.

1985년 5월 워싱턴DC 근교로 이민하여 3일 만에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세계 3대 자연사박물관으로 손꼽히는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미스소니언 재단은 21개의 박물관을 운영 중인 미국의 교육 기관으로, 세계 최대 복합 문화·전시 기관이기도 하죠. 그런데 한국관, 중국관, 일본관의 전시물들이 모두 중국의 한자 위주로 된 작품이라 각 나라의 구분이 어려웠습니다. 만약 이 중에 한글 작품이 한 점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한국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당시 박물관 담당 학예사를 만나 이러한 문제점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박물관 측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제 작품인 ‘훈민정음’과 ‘가시리’가 전시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이후 스미스소니언의 전통문화 축제와 5월 아시아 문화축제 등에 10여 차례 초청받아 한글 서예 전시와 한글 창제 원리 소개, 한글로 이름을 써 주는 등 한글문화를 알렸습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 초상화 갤러리에서는 한국문화의 날, 설날 축제 등에 초대받아 한글로 만든 세종대왕, 이승만, 조지 워싱턴, 링컨 대통령 등 인물 작품을 전시하고, 한국의 설날 덕담 등의 내용으로 한글 서예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설날에는 저와 중국인 서예가가 초대되었는데 관람객들에게 이름을 써 줄 때는 중국인은 할 수 없어 한발 물러서며 한글로 하라며 밀더군요. 그리고 중국 서예가와 퍼포먼스를 할 때는 예를 들어 ‘유비무환’이라 쓴다면 ‘유, 무’ 자는 한글로 ‘비, 환’자는 한자로 써서 공평하게 원칙을 정하여 문자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자고 사전에 합의했습니다.
▲ 권명원 서예가가 외국인들에게 한글로 써 준 이름

전통 서예뿐만 아니라 한글을 이용한 회화 작품을 선보이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회화 작품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간단합니다. 서예는 외국인들이 ‘한글’ 문자를 모르니 제가 쓴 문장을 설명해 줘야 하는데 회화는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이 시각적으로 바로 전달할 수 있어 좋습니다. 저의 첫 회화 그림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김연아 선수가 스케이트 타는 동작에 태극 물결을 곁들여서 만든 작품입니다. 힐러리 클린턴도 김연아 선수의 금빛 공연에 환호할 때였지요. 이후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싸이의 춤 등을 제작했는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행정안전부가 공동 주최한 광복 70주년 기념 대한민국 미술축전 ‘태극기와 나’ 주제의 공모전에서 특선에 입상 후 더욱더 자신감을 얻었는데요. 특히 ‘세종대왕’의 회화 작품으로 뜻밖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일반 서예 작품들과 회화 작품을 함께 전시하니 효과도 훨씬 좋아요. 다만 회화는 제작 기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이 부담입니다.
▲ <Gate to My Homeland, 민족의 문>
나의 또 다른 이름, ‘한글 전도사’
언제 어디서나 한글이 부르면 달려갈 것

서예가님께서 처음 활동을 시작하셨을 때와 한글과 한국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현지 반응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2004년도부터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로텐더 홀에서 한글 서예 전시와 한글로 이름 써 주기를 했습니다. 하루 방문객이 5~6만 명이 넘는 곳이지요. 그래도 한국에서 올림픽도 했고 월드컵도 했으니, 우리나라를 제법 많은 미국인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행사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요. 한국을 아는 사람이 10퍼센트나 될까요?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테이블 앞에 ‘Korean Calligraphy’라고 써 붙여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중국 사람이냐?’ ‘당신이 쓰고 있는 것이 한자냐?’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제가 ‘I am Korean’이라고 대답하면 대부분 한국을 잘 모른다는 눈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관람객들의 말, 즉 영어 발음만 듣고도 이름을 한글로 써 주니 신기하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온 세계를 강타하면서 미국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류 문화에 휩싸여 한국에 관한 관심이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문화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체험했지요. 뒤이어 BTS의 여파로 한글에 관한 관심도 달라졌습니다. 현재는 한글도 한류 문화로 대단한 위상입니다. 몇 년 전에 워싱턴 케네디 센터에서 초대 행사가 있었는데, 저에게 극장 중 하나를 내주면서 ‘당신이 오늘 하루 6차례의 퍼포먼스로 사용할 곳’이라고 해 깜짝 놀랐습니다. 케네디 센터에 초대된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한글 서예 퍼포먼스’를 위해 극장 하나를 하루 종일 배정받아 오히려 두렵기도 했습니다. 정말 잘해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며,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한글’임을 명심했습니다.

한글이 낯선 외국인들에게 서예를 통해 한글을 처음 소개할 때 가장 알리고 싶으셨던 한글 고유의 매력 또는 장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글의 장점은 말을 받아쓰기가 가장 쉬운 문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뿐 아니라 모든 사물과 동물의 소리까지도 쓸 수 있는 글이니까요. 다른 나라의 글은 철자 규칙 없이는 받아쓰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외국인 이름을 받아쓸 때면 본인이 원하는 발음이 있을 수 있거든요. 한글은 그 사람의 발음만 듣고 정확히 쓸 수 있어 신비롭고 대단한 문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아름다운 한글 서체로 본인의 이름을 써 주는데, 이들의 시선에선 신기할 따름이겠죠. 세종대왕께서 애민 정신으로 모든 백성이 누구나 편하게 쓰게 만드신 한글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지 모릅니다. 한글 서예가로 활동하면서 이러한 점에서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편히 쓰고 누릴 수 있는 한글이기에 세계 공용어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만들어진 과정만 봐도 대단한데요. ‘∙’,‘ ㅡ’, ‘ㅣ’ (하늘, 땅, 사람)으로 변하지 않는 모음을, 입의 구조 즉 ‘ㄱ’, ‘ㄴ’, ‘ㅁ’, ‘ㅅ’, ‘ㅇ’으로 자음을 만들어서 모든 소리를 다 글자로 표현할 수 있게 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한글을 소개할 때면 신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한글 붓글씨 작품 활동을 할 때 서예가님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무엇인지, 작품 활동을 하며 느끼신 한글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의도했던 내용과 서체의 조화에 신경을 씁니다. 말하자면 정해진 메시지 내용에 따라 전하는 목소리 색깔이 달라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제가 즐기는 작품의 형태는 신문과도 같은데요.
제목이나 작품의 주제가 되는 글을 신문의 타이틀처럼 작품에서도 크게 쓰고, 다른 서체의 글씨로 작품의 제목을 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 작품에서 두 개의 서체가 조화를 이루어 시각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한글은 상형적 요소도 있고, 자음과 모음이 합하여 글자를 이루고 있어 서예 미를 연출하는 데 매우 훌륭한 글자입니다. 특히 ‘ㅅ’과 ‘ㅇ’자로 우아한 곡선미의 효과가 참 아름답지요.
▲ 여주 세종대왕릉 한글날 571돌 행사에서 한글 서예를
선보이고 있는 권명원 서예가

지난 10월 9일 한글날,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한글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국무총리 표창을 받으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지금까지 잘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곁에서 묵묵히 살펴 준 아내 역시 무척 고맙고요. 유공자로 선정된 만큼 그에 걸맞게 열심히 해야겠지요. 한글을 선택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주신 상은 달리고 있는 말에 채찍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선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한글 서예니까요.
한글은 저의 전부인 만큼 언제 어디서나 한글이 부르면 달려갑니다. 60년을 먹을 갈고 한글만을 써왔어요. 그래서 워싱턴에서는 많은 분이 저를 ‘한글 전도사’ 혹은 ‘한글 홍보대사’라고 부르곤 합니다. 앞으로 한글이 문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거나 없는 부족에 이르기까지 온 인류가 쉽게 익히는 글자로 편안하게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종대왕님의 어진 뜻이 세상을 밝히는 빛처럼 빛나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