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작가로 만들어 준 그림책 ‘지하철을 타고서’가 출간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요즘 초등학교에 가서 어린이들에게 작가 강연을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강연을 할 때 아이들은 그림책의 주인공인 지원이와 병관이가 실제로 있는 친구냐고 가장 먼저 물어봅니다.
“지원이와 병관이는 선생님 아이들이고, 이름도 지원이와 병관이에요.”라고 제가 말하면, 어린이들은 신기해하면서 바로 “지원이와 병관이는 몇 살이에요?”라고 묻습니다.
사실 지원이는 작년에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병관이는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해 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말해 주면 아이들은 다들 깜짝 놀랍니다. 지원이와 병관이가 다 자기들 또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고는 지원이와 병관이도 책 읽기를 좋아했냐고 묻곤 합니다. “지원이는 책 읽기를 좋아했고 병관이는 노는 걸 더 좋아했다.”고 대답하면, 남자아이들도 노는 걸 더 좋아한다며 아주 즐거워합니다.
그림책으로 한글 깨친 아이들,
부모의 역할이 큽니다
지원이는 돌이 지나고 나서부터 그림책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잠들기 전에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줬고 엄마가 피곤한 날에는 아빠인 제가 그림책을 읽어줬습니다. 병관이도 유아기까지는 엄마와 그림책을 꾸준히 함께 읽은 덕에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이내 친구들과 노는 것에 빠지고 나서부터는 누나만큼 책을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간차는 있지만, 그래도 지원이와 병관이 두 아이 모두 그림책을 보면서 한글을 깨쳤습니다. 특히, 지원이는 4~5세 무렵부터 그림책에서 본 글자를 길에서 발견하면 무척이나 반가워하면서 소리 내어 읽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나오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기억하고서, 지나가다 ‘떡’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으면 큰 소리로 ‘떡’이라고 읽었죠.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거리에 보이는 글자를 읽는 건 재미있는 놀이 겸 공부인 셈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하루도 빠짐없이 잠들 때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단지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의무감만으로는 버티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 스스로가 그림책을 보는 즐거움을 갖게 된다면,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은 훨씬 즐거울 것입니다. 그림책은 분량도 적당해서 부담스럽지 않고 글과 함께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니 쉽게 도전할 만합니다. 혹시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 그림책을 읽어주면 뭐가 좋은지 궁금해 하는 부모님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엄마나 아빠가 자신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정확하게 읽어주면 되겠죠. 그래도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실까봐 간단하게 그림책 읽어주기에 대해 몇 가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재미있게 그림책을
읽어주려면?
▲ 서로 몸을 접촉하면서 읽어주는 게 좋다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함께 즐기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책을 읽어 주면, 아이가 ‘후후’ 웃는다든지, 몸을 긴장한다든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아이를 무릎에 앉힌다든지, 아니면 몸에 기대게 한다든지, 서로 몸을 접촉하면서 읽어주는 게 좋습니다.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전달되고 또 아이의 즐거움이 부모에게 전달되겠죠. 그림책은 부모와 아이를 이어주는 끈이 될 것입니다.
읽어 주지 않으면 아이는 그림책을 즐길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그림책은 그림과 글을 통해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글을 읽을 수 없는 아기와 유아는 누군가가 읽어 줄 때 처음 그림책을 접하게 됩니다. 그림책과의 첫 만남이죠. 설령 아이가 한글을 깨쳐서 혼자 읽을 수 있어도 엄마가 읽어주는 게 좋습니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버거운 6~8세 어린이에게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면 천천히 그림도 보고 상상의 세계에 빠져 이야기를 즐길 수도 있겠지요.
그림책과 친구가 돼요
처음에는 아가에게 ‘자, 책을 읽어 줄게요.’하고 읽기 시작해도 멋대로 책장을 넘긴다든지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 자꾸 되돌아가자고 한다든지 해서 좀처럼 계속해서 읽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도 끈기 있게 책 읽어주기를 계속하면 아이는 점점 이야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면 아이도 점점 책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림책을 읽어주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아름다운 우리말을 익히고 한글을 깨치게 됩니다
좋은 그림책 안에는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잘 갈고 닦아진 우리말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말은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해 있고 다양한 색깔을 나타내는 단어가 많이 있습니다. 유아기에는 의성어와 의태어, 그리고 여러 가지 개념어를 담은 그림책들을 보여주면 좋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운율이 살아 있는 말과 새로운 단어들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어휘력을 키워갑니다. 특히 그림책을 두고두고 반복해 보면서 한글도 습득하게 됩니다. 한글은 여러 번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쉽게 따라 읽을 수 있는 훌륭한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두뇌체조를 통해 상상력을 키우게 됩니다
그림책의 그림은 정지되어 있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눈으로 본 그림을 머릿속에서 움직이게 하면서 다음 장면을 상상합니다. 저절로 움직이는 TV 영상을 보고 있을 때보다는 두뇌가 훨씬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부모와 아이의 마음이 깊이 통하게 됩니다
아이에게 부모가 책을 읽어 준다는 것은 단지 글자를 읽어 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이가 ‘읽어 주세요.’라고 조르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고 싶다는 것뿐만 아니라 부모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림책을 읽어 주는 시간은 부모와 아이 모두 그림책의 세계에 몸을 맡기고 여유롭게 즐기는 시간입니다.
간단하게 아이와 함께 그림책 읽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가 크면 아무래도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줄어들게 됩니다. 아이가 한글을 깨쳐서 혼자서 그림책을 읽을 수 있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엄마나 아빠가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꼭 갖도록 하세요. 그러면 자연스레 함께 하는 시간도 늘고 함께 할 이야기도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커서 마음속에 담아둘 좋은 기억도 되어줄 겁니다. 따뜻한 5월에 온 가족이 서점에 가서 함께 볼 그림책을 골라 보시는 건 어떻겠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우리 작가들이 공들여 만든 우리 그림책을 고르시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