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제57호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글 나누기 2

한글과 여성 지식


글. 김경미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한글 창제가 가져온 여성의 삶의 변화

한글이 만들어지면서 문자 세계에서 배제되었던 여성과 하층남성도 문자를 갖게 되고 제한적이지만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비록 양반남성을 중심으로 한 지식층은 한자를 사용하고, 여성은 신분에 관계없이 한글을 써야 한다는 어문생활상의 차별이 있었지만 사용할 수 있는 문자가 주어졌다는 것은 여성의 삶에 여러 가지 변화 —아마도 한 세계가 새로 열리는 것 같은— 를 가져왔다. 한글이 여성만의 문자가 아니었지만 한글을 ‘암글’이라고 불렀던 것을 보면 한글은 여성의 문자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런 관행은 20세기 초까지 이어져 한글로 간행된 ≪제국신문≫은 ‘암신문’으로 일컬어졌다.

남녀의 차별적 위계가 공고했던 조선사회에서 여성의 문자 활동은 저평가되었다. 주류의 지식을 형성하고 전달하는 한자가 아니라 한글로 글을 써야 한다는 제약도 있었지만 여성의 가장 중요한 일은 ‘술과 밥을 의논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부인의 글이 규방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을 써서 드러내는 일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여성들은 언해(諺解)를 통해 지식을 수용하고, 자신들의 지식을 생산했다. 지식이 반드시 문자를 통해 전수되는 것만은 아니다. 지식은 구전으로, 그림으로, 노래로도 전달 가능하다. 그러나 가장 지속성을 갖는 것은 문자로 기록되거나, 책으로 엮어서 소통되는 경우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들이 문자를 통해 자신들의 지식을 기록하고 소통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글을 통해 고전과 한시도 향유

여성이 한글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모아 책으로 편찬한 대표적인 예로 ≪내훈≫을 들 수 있다. ≪내훈≫은 소혜왕후가 1475년 편찬한 여성교훈서이다. 소혜왕후는 중국의 여러 고전들에서 여자가 알아야 한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뽑고, 이것을 한글로 번역했다. 어려운 한자어나 내용에 대해 세주까지 첨가하여 여성들이 읽기 쉽게 만들었다. ≪내훈≫의 지식은 유교적 관점에서 성별화된 지식이다. 여성들은 이러한 유교적 여성 지식 체계를 통해 유교적 여성 주체가 되었다. 소혜왕후는 유교적 여성 지식을 수용했으나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했으며, 한문 원문에 일일이 한글로 구결을 달아 이 책을 보는 여성들이 한자어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

≪내훈≫이 한문 원문에 한글로 구결을 다는 방식으로 한자어를 익히게 했다면, 한문 원문 없이 한문을 한글로 표기하고 한자어를 익히게 한 경우도 있었다. ≪여사서≫나 ≪여소학≫ 같은 여성교훈서들이 그 예로 이 책들은 한문 원문 없이 한문을 한글로 표기하고 그 옆에 음과 뜻을 써서 한자어를 익히게 했다. 이렇게 한자어를 익힌 여성들은 한시도 한글 표기를 통해 향유하고, 경전도 한글로 번역해서 읽으며 남성들의 지식 세계를 넘나들었다. 여성들이 한글 표기로 한시를 향유한 예를 보자.

≪기각한필(綺閣閒筆)≫은 19세기 중반 ‘기각’이라는 당호를 가진 여성 작가의 한글 필사본 한시집이다. 그러나 이 시집에는 한자가 없다. 한시 원문을 한글 음으로 적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한글 번역시를 썼다. 이런 식이다.


						촌동유희 촌남촌북우셔동 듁마낭쟝일대동 진일환호환가노 탈의님하쇄쳥풍 ᄆᆞ을 아들 모다 노ᄂᆞᆫ 것 촌남촌북  셔와 동이니
대말이 졀넝〃〃ᄒᆞ야 ᄒᆞᆫ 와 갓더라
날이 다ᄒᆞ도록 즐기고 부르 도로혀 가히 잇부니
수플 아 옷ᄉᆞᆯ 벗고 ᄆᆞᆰ은 바람을 이더라

						촌동유희 촌남촌북우셔동 듁마낭쟝일대동 진일환호환가노 탈의님하쇄쳥풍
ᄆᆞ을 아들 모다 노ᄂᆞᆫ 것 촌남촌북  셔와 동이니
대말이 졀넝〃〃ᄒᆞ야 ᄒᆞᆫ 와 갓더라
날이 다ᄒᆞ도록 즐기고 부르 도로혀 가히 잇부니
수플 아 옷ᄉᆞᆯ 벗고 ᄆᆞᆰ은 바람을 이더라

한글 한시와 한글 번역시가 나란히 놓인 게 좀 어색해 보이지만 이러한 형태는 한역을 통해 한글 시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역한 한글 시는 옆에 한글로 표기된 한시가 없이도 그 자체로 시로 향유될 만큼 완성된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여성 지식 총서의 발간, ≪규합총서≫

19세기에 이르러 여성이 자신들의 문자인 한글로 자신들을 위한 지식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구성한 책이 등장했다. 바로 이빙허각(1759~1824)의 ≪규합총서(閨閤叢書)≫, ≪청규박물지(淸閨博物志)≫이다. ‘총명함이 둔한 붓만 못하다(聰明不如鈍筆)’고 믿은 빙허각 이씨는 여성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식들을 철저한 문헌 고증과 실증적 태도로 저술에 임했다. 빙허각 이씨의 친정은 소론 명문가로 아버지, 오빠가 높은 관직을 역임했고, 외숙모는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저술한 이사주당(1739~1821), 조카인 유희(1773~1837)는 실학과 음운학에 정통한 학자이다. 그녀의 남편 서유본(1762~1822)의 집안 역시 소론 명문가이다. 친정과 시집의 가학의 영향을 받은 빙허각 이씨는 집안일을 하는 틈틈이 저술하여 ≪규합총서≫, ≪청규박물지≫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여성 지식 총서를 저술하였다.

≪규합총서≫는 술과 음식, 바느질과 길쌈, 시골살림의 즐거움, 태교와 아이 기르기, 병 다스리기, 부적과 귀신 쫓는 민간의 방법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시골살림의 즐거움에는 밭 갈기, 꽃 기르기, 꽃에 대한 품평, 가축 기르기 등을 다루고 있어 실용적인 지식과 아울러 취미에 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또 ≪규합총서≫에는 글씨 잘 쓰는 부인, 남자 일을 한 여자, 열녀, 역대 왕비 목록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여자들도 포함시키고 있다.

이빙허각의 다른 책 ≪청규박물지≫에는 천문, 지리까지 포함되어 있어 그녀가 생각한 지식의 범주가 일상에 필요한 실용지식으로부터 인문, 천문, 지리에 이르기까지 방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점은 이빙허각이 이 책들을 한글로 저술했고, 그래서 여성들이 19세기 이후 20세기 초까지 필사, 전승하면서 읽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중요한 학문적 저술은 거의 한문으로 이루어졌다. 임윤지당이나 강정일당 같은 여성 성리학자들도 한문으로 된 저술을 남겼다. 이들의 저술 역시 남성의 지식 세계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빙허각은 여성 지식을 체계화했다는 점, 한글로 학문적 저술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저술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빙허각은 한자가 아니라 여성의 문자인 한글로 저술했음에도 이빙허각은 서문에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부인이 하는 일은 규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니 넓은 식견이나 나은 재주가 있더라도 문자로 표현해서 남에게 보이는 것은 아름다움을 속에 품어 간직하는 여자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곧 이어서 이빙허각은 이 책의 귀결점은 ‘건강에 유의하는 첫 일이요, 집안을 다스리는 중요한 법으로 일용에 없지 못할 것’이니 ‘부녀의 마땅히 연구할 바’라고 하며 그 필요성을 강조한다. 가정생활에 필요한 것들도 연구 대상이라는 것, 이것이 그녀의 진정한 의도였던 것이다.

이빙허각은 가정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을 자세하고도 생생하게 설명하고 묘사한다. 그 한 부분을 보자. 다음은 소국주(少麴酒)를 담그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다.


 졍월 쳣 일의 슈 여ᄃᆞᆲ 되을 항의 붓고 됴흔 섬누룩을 칠 홉을 믈의 담가다가 누록 담근 ᄉᆞ흘만의 누록을 졔 믈 〃 걸너 쳬에 밧고 미 닷 되을 셰 작말ᄒᆞ야 흰 믈리  숀김 뵈지 말고  더온 김의 막 김ᄂᆞᆫ 거ᄉᆞᆯ 슬〃 펴 누룩 거른 물의 프러 너헛다가 ᄉᆞ흘만의 동도지로 프러지도록 져어 ᄎᆞ게 덥펴 두어다가 이월 즈음 마ᄉᆞᆯ 보아 달콤ᄉᆞᆯᄒᆞ거든 미 ᄒᆞᆫ 말 셰ᄒᆞ야 ᄒᆞ로밤 와 지예를 ᄂᆞᆫ되 믈 칠 승이나 팔 승이나 고로 려가면 느러디게 〃  그 밋 더온 김의 퍼붓고 동도지로 고로〃 프리게 뎌어 두엇다가 삼칠만의 보면 말긋〃 안거든  면 됴흐되 항이 너모 크면 군 나고 작으면 이 술이 넘기을 잘 ᄒᆞᄂᆞ니 넉〃이 알마진 항의 ᄒᆞ라(원문, 규합총서, 정양완 역주)


 졍월 쳣 일의 슈 여ᄃᆞᆲ 되을 항의 붓고 됴흔 섬누룩을 칠 홉을 믈의 담가다가 누록 담근 ᄉᆞ흘만의 누록을 졔 믈 〃 걸너 쳬에 밧고 미 닷 되을 셰 작말ᄒᆞ야 흰 믈리  숀김 뵈지 말고  더온 김의 막 김ᄂᆞᆫ 거ᄉᆞᆯ 슬〃 펴 누룩 거른 물의 프러 너헛다가 ᄉᆞ흘만의 동도지로 프러지도록 져어 ᄎᆞ게 덥펴 두어다가 이월 즈음 마ᄉᆞᆯ 보아 달콤ᄉᆞᆯᄒᆞ거든 미 ᄒᆞᆫ 말 셰ᄒᆞ야 ᄒᆞ로밤 와 지예를 ᄂᆞᆫ되 믈 칠 승이나 팔 승이나 고로 려가면 느러디게 〃  그 밋 더온 김의 퍼붓고 동도지로 고로〃 프리게 뎌어 두엇다가 삼칠만의 보면 말긋〃 안거든  면 됴흐되 항이 너모 크면 군 나고 작으면 이 술이 넘기을 잘 ᄒᆞᄂᆞ니 넉〃이 알마진 항의 ᄒᆞ라(원문, 규합총서, 정양완 역주)


정월 첫 해일(亥日)에 냉수 여덟 되를 항아리에 붓고, 좋은 섬누룩 칠 홉을 물에 담갔다가 누룩 담근 사흘만에 누룩을 제 물에 죄다 걸러 체에 밭이라. 희게 쓴 멥쌀 닷 되를 씻고 씻어 가루 만들어 흰 무리(떡) 손김 뵈지(열어보지) 말고 쪄, 더운 김의 막 김난 것을 슬슬 헤쳐 누룩 거른 물에 풀어 넣었다가 사흘만에 동도지(동쪽으로 뻗은 복사가지)로 풀어지도록 저어 차게 덮어 두었다가 이월 즈음 맛을 보아 달콤쌉쌀하거든 희게 쓴 멥쌀 한 말을 씻고 씻어 하룻밤 재워 지에를 찌는데 물 일곱 되나 여덟 되나 고루 뿌려가며 늘어지게 꽤 꽤 쪄, 그 밑에 더운 김에 퍼붓고 동도지로 고루고루 풀리게 저어 두었다가 삼칠일 만에 보면, 말긋말긋 앉거든 떠 쓰면 좋되, 항아리가 너무 크면 군내 나고, 작으면 이 술이 넘기를 잘 하니 넉넉하고도이 알맞은 항아리에 하라.(번역문, 규합총서, 정양완 역주)

이빙허각은 누룩 팔 홉, 사흘, 백미 닷 되, 칠 승이나 팔 승, 삼칠일 등 정확하게 양과 날짜를 계량하는 한편 ‘막 김나는 것을 슬슬 헤쳐’ , ‘달콤쌉쌀하거든’ , ‘늘어지게 꽤 꽤 쪄’ , ‘말긋말긋’ 같은 표현을 사용해 독자가 마치 실제로 만드는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설명하고 있다. 옆에서 일러주듯이, 느낌 있게 설명하는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구체적인, 말과 글이 함께 하는 학문적 글쓰기가 아닐까?

김경미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저서로는 ≪家와 여성-18세기 여성생활과 문화≫‚ ≪19세기 소설사의 새로운 모색≫‚ ≪조선의 여성들≫(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19세기 서울의 사랑≫(공역)‚ ≪금오신화≫‚ ≪17세기 여성생활사 자료집1≫(공역)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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