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나신 날은 5월 15일로 스승의 날과 날짜가 같다. 세종대왕 나신 날과 스승의 날이 같은 날이 된 것은 위대한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을 기리고자 세종대왕 나신 날을 스승의 날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이 나신 곳은 어디일까? 이 대답에 정답을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5월, 세종대왕이 나신 달을 맞아 세종대왕이 나신 곳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Q1.
이상근이사장님 안녕하세요.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온라인 소식지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회 등록 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의 이사장 이상근입니다.국립한글박물관에서 세종대왕 탄신 기념으로 찾아주심에 감사합니다.
▲ 세종대왕 나신 곳, 준수방에 대해 설명 중인 이상근이사장
Q2.
세종대왕에 대해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세종대왕이 나신 곳이 궁이 아니라는 사실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세종대왕이 나신 곳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세종대왕이 경복궁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요, 세종대왕이 태어난 시기는 세종대왕의 아버지 태종이 왕으로 집권하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세종대왕은 궁궐 인근 준수방의 시가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준수방이란 지금으로 말하자면 ○○동, △△동 하듯이 행정구역의 한 이름입니다. 당시에는 세밀한 번지가 없었기에 현재에는 준수방을 통의동, 옥인동 인근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방’이란 반경 300제곱미터를 가리키는 지역 표시 개념으로 준수방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한성부 북부 12방 중의 하나입니다.
현재 경복궁 근처 통의동에 가면 세종대왕 탄신지 표지석이 있으며, 이 표지석에는 세종대왕께서 ‘준수방’에서 나셨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세종대왕 탄신지 표지석
Q3.
세종대왕이 나신 생가와 관련한 유물이나 세종대왕 탄신에 관한 사료가 존재하고 있나요?
안타깝게도 이와 관련된 유물이나 이야기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세종대왕 탄신 관련 내용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태어난 일시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기에 세종대왕의 탄생 비화나 탄신지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상 전무합니다. 저도 세종대왕 탄신지에 대해 연구하는 동안 의외라고 느꼈던 점이기도 합니다.
Q4.
세종대왕 탄신지는 왜 보존되지 못했을까요?
일제 강점기에 시행되었던 우리 역사 지우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의 맥을 끊고 싶어 했습니다. 경복궁을 비롯한 우리 궁궐에 대한 훼손도 심하게 발생했습니다. 궁과 궁을 연결하는 길을 끊기도 하고 궁의 이름을 바꿔 그 뜻을 왜곡하는 등 조선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물론 한글 사용도 금지되었습니다. 우리말과 글은 우리 민족의 얼이자 혼이 담긴 언어입니다. 그러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원령이 깃든 생가 터를 그냥 뒀을 리 없지요. 이러한 이유로 세종대왕 탄신지는 세종대왕과 관련된 기억과 유산을 철저히 말살시키려 했던 일제 강점기에 집중적으로 훼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 탄신지가 보존되지 못한 잘못을 일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세종대왕 탄신지를 복원하고 기념하는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나고 사회를 재건립하는 과정에서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은 우리의 무관심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Q5.
세종대왕 탄신지 복원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사업 또는 활동이 있나요?
세종대왕 탄신지 지역 주민과 세종대왕 후손들이 함께 만든 사단법인 ‘세종마을가꾸기회’가 있습니다. 최근 ‘세종마을가꾸기회’에서는 세종대왕 탄신지라는 뜻깊은 장소 일대를 복원하고 기념관 등을 조성하는 사안에 대해 정부에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와도 관련 사항에 대해 협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종로구에서는 일부 토지를 매입해 세종마을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시설, ‘상촌재’를 만들어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세종마을의 지역 정체성을 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상촌재 별관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재조명해보고자 마련된 공간이 있다.
Q6.
앞서 말씀주신 활동 이외에도 세종대왕 탄신지 복원을 위한 활동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현재 통의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종대왕 탄신지 관련 기념물은 길거리 한 구석에 있는 표지비 하나뿐입니다. 세종대왕 탄신지 기념관을 포함한 한글 관련 기념관, 문맹퇴치 관련 기념관 등을 함께 조성하여 세종대왕 테마마을을 꾸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테마마을을 조성할 수 있을까 혼자 구상해보기도 했습니다. 민간이 가진 시설을 매입해 사업을 진행하는 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를 것이기에 공공시설이나 공공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기존에 있던 공공시설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활용 가능한 공간을 확보하여 세종대왕 탄신지를 복원하고 세종대왕 테마마을을 조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공간에 정부 관련 부처들이 들어오는 것도 기억의 공간을 만드는 데 유의미한 일이 되겠지요.
▲ 세종대왕 탄신지 복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상근이사장
Q7.
복원 이후에 이루어져야 할 보존 방안이라든지, 보존해야 할 주체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인식과 자세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정부가 세종대왕 탄신지 복원 사업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 주도의 사업은 결국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반드시 시민이 참여해야 하고 보다 많은 시민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지속적인 가치 창달이 이뤄질 것이며, 세종대왕 탄신지가 생기 도는 기억의 공간으로써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Q8.
마지막으로 세종대왕 탄신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우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자꾸 오르고 내려야 합니다. 아직은 큰 볼거리가 없지만 세종대왕이 나신 곳을 자꾸 찾아도 가보고, 이곳이 세종대왕이 나신 곳이다 자꾸 입으로 얘기를 퍼뜨리다보면 사람들 입에 오르고 내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그 가치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될 것이고요. 그러다보면 세종을 위한 진정한 기억의 장소가 되겠지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세종대왕 탄신지가 세종의 풍부한 스토리를 따라 여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세종의 탄신에 대한 스토리는 ‘아직’ 많이 빈약합니다. 아직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야기는 곧잘 발견되기도 하는, 완성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요소를 갖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길 바랍니다.
유물은 숨겨져 있습니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무엇인가에 우리가 기억할 만한, 세종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갖고 그것을 찾으려고 하고 있을까요? 우리에 노력에 따라 세종의 스토리는 빈약한 채로 남겨질 수도, 점점 더 풍성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을 우리 마음속에 항상 품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현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실행위원장, 서울시문화재찾기시민위원, 충남도반출문화재실태조사단, 조선왕실유산회복위 공동대표,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상임대표를 지내며 문화재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계십니다.
세종대왕 탄신 기념 헌화행사 소개
세종대왕 탄신지 헌화행사는 국립한글박물관후원회 주최로 매년 세종대왕 탄신일(5월 15일)에 치러진다. 본 행사에는 국립한글박물관 관장, 국립한글박물관후원회 회장과 이사 등 박물관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세종대왕 탄생지 기념비를 방문해 헌화를 하고 백성을 사랑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기리며 한글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다.
▲ 세종대왕 탄신 기념 헌화행사에 참석한 국립한글박물관 관계자들
여기서 잠깐!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간략히 훑어보자.
훈민정음 창제
세종대왕이 남기신 업적 중 단연 최고는 훈민정음 창제이다. 한자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을 위해 우리글, 한글을 창제했다. 입의 구조와 발성의 원리를 연구하여 창제한 한글은 우리 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 발전
특별히 등용한 장영실과 이천이 만든 측우기는 유럽과 비교하면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세종대왕 시기 과학기술의 발전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천체의 운행을 살피는 혼천의, 태양의 위치로 시간을 재는 해시계, 물의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물시계 등을 제작하도록 했다.
편찬사업 주도
세종대왕은 방대한 편찬사업을 주도하여 당시 문화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유교, 역사, 문학, 정치, 지리, 농업, 천문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내용을 수합하고 정리하여 도서를 펴내는 작업을 통해 학문을 향상시키고 나라의 기틀을 잡아갔다.
제도·정책 정비
조세를 공평하게 매기기 위해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세율을 다르게 매기기도 하고 풍년과 흉년에 따라 조세의 등급을 나누기도 하였다. 세종대왕은 노비, 임산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위 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