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제65호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글 나누기 2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글

글. 김재국 세광중학교 수석교사, 문학평론가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훈민정음언해≫ 서문)

한글은 1446년(세종 28년) ‘훈민정음(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태어났다. 이 짧은 문장 속에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깊은 뜻이 모두 스며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언어생활의 차이를 인식한 자주 정신, 백성들이 문자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을 가엾게 여긴 애민정신, 새로 문자를 만든 창조 정신, 사용하기 쉽고 편리한 문자로 제작한 실용 정신’이 그것이다.

한글이라는 문자의 과학성과 체계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989년 유네스코에서는 ‘세종대왕 상(King Sejong Prize)’을 제정하여, 매년 인류의 문맹률을 낮춘 단체나 개인을 선정하여 상을 준다. 1997년 10월에는 ≪훈민정음≫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7년 9월 세계 지식 재산권 기구(WIPO)에서는 한국어를 국제특허협력조약 국제 공개어로 채택하였다. 이처럼 한글은 세계인의 관심을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그 이유를 정리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첫째, 한글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표기 형식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 균형감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사각형은 인간의 시각적 문자 인식 능력을 쉽고 빠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영어의 경우 알파벳이 옆으로 배열된 직사각형의 형태를 지니기 때문에 한글보다 인식적 효과가 떨어진다. 한글이 처음 ≪훈민정음≫으로 발표되었을 때는 세로쓰기 조판 형태를 지녔다. 이후 1947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가로쓰기가 시작되었으며 1985년에는 서울신문에서 가로쓰기를 전면적으로 실시하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활자가 폰트로 디지털화되어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는 양상으로 나아갔다.

둘째, 한글은 의성어의 양성과 음성의 어감 모두를 표현할 수 있는 생동감이 넘치는 문자라 하겠다. 소리의 세기를 여린 자음 글자와 거센 자음 글자로 표현하면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인지가 ≪훈민정음≫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한글은 한자와 달리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다. 감미로운 음악의 리듬뿐만 아니라 세찬 바람 소리, 작은 풀벌레 소리까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우리가 흉내 내는 대로 적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의성어를 나란히 풀어서 배열할 경우 소리의 실재감을 살릴 뿐만 아니라 글자의 형태적 조형미의 창조성을 높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옹 야옹’을 ‘ㅇㅑ∼오ㅇ ㅇㅑ∼오ㅇ’으로 풀어쓰면 소리의 음상이 더 살아나 직접 고양이 소리를 듣는 듯하다.

셋째, 한글의 ‘모아쓰기’라는 표기 방식이 다른 언어와 차별되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영어의 경우 알파벳 철자를 옆으로 배열하지만 한글의 경우 자음과 모음의 모아쓰기를 통해 글자를 만든다. 그래서 로마자나 아랍 문자로 적기 어렵던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찌아찌아어 소리를 한글로 어렵지 않게 기록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글을 만들 때 소리가 분석되는 최소 단위인 음소 단위로 문자를 만들고, 소리 낼 때를 고려하여 이것을 음절 단위로 모아쓰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글 자음과 모음 24자만으로 11,172개의 글자를 만들 수 있으니 모아쓰기는 효율적 표기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넷째, 한글은 영어의 알파벳보다도 완성도가 높은 디자인 구조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사각형의 한글은 직사각형의 영어 알파벳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빠를 뿐만 아니라 폰트의 크기 부분에서도 유리하다. 한글과 영어 알파벳이 같은 면적의 크기에 있을 경우에 한글을 더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그것은 한글이 간단하고 알기 쉽게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글은 선의 길이도 짧아 공간과 길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한글은 글자를 넘어 캘리그래피라는 이름으로 광고, 마케팅, 디자인 등의 목적으로 활용된다. 그것은 한글의 기능을 넘어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적 경지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아이돌 방탄소년단이 아이돌 최초로 케이팝(K-pop)으로 한글과 한류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2018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문화 훈장을 받았다. 이들의 영향으로 한글이 세계에 알려지고 한글을 배우는 세계인도 점점 느는 추세이다. 대한민국의 위치도 모르는 세계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랫말을 받아 적고 따라 부르며 환호하니 더 이상 한글은 우리만의 글자가 아니다. 공간을 넘어 세계 속으로 힘차게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는 중이다. 방탄소년단의 케이팝 가사를 살펴보면 인기가 올라갈수록 영어 가사보다 한글 가사가 많아진다. 특히 ‘덩기덕 쿵 더러러러’, ‘얼쑤’와 같은 우리나라 전통의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뮤직비디오로 우리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돌민정음’이란 신조어 탄생은 한류의 물결이 더욱 세차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 말은 아이돌의 ‘돌’과 ‘훈민정음’을 합성한 것으로 국외 케이팝 팬들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돌민정음’은 방탄소년단이 부르는 노랫말 가사를 발음 그대로 영어로 표현하여 만든다. 그것은 ‘Hyung(형), Noona(누나), Oppa(오빠), Unnie(언니), Maknae(막내), Sunbea(선배), Hoobae(후배)’ 등으로 적는다. 케이팝 팬의 입장에서 한글의 표현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한글의 고유한 느낌을 수용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지 않다. 케이팝 세계화에 따라 팬들은 영어보다 한국어로 노래를 선호하며 한국문화에 대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케이팝 팬들은 방탄소년단의 노래와 퍼포먼스도 훌륭하지만, 이들이 전하는 우리나라 전통적 아름다움과 메시지에 감명을 받은 경우가 많다.

영국 런던 올림피아 웨스트홀에서 열린 ‘2018 런던국제언어박람회’에 문화체육관광부와 세종학당재단이 참가해 한글관을 운영한 적이 있다. 박람회는 언어와 관련된 세미나, 전시, 공연 등과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세계적 언어·문화 행사로 진행되었다. 한글관에서는 ‘한글, 한국어, 한국문화를 밝히다’라는 주제로 한국어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 상품과 교육 자료들을 소개하였다. 나아가 관람객들이 쉽고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도록 온라인 회화, 사업 교육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했다. 한글과 한국문화 소개를 위한 한국어 강좌, 붓글씨 체험, 한국 전통 악기 연주, 케이팝, 춤 공연 등으로 보는 것에서 움직이고 느낄 수 있는 체험으로 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면서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군사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으며 한글이 세계 속으로 뻗어 나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의 ‘높은 문화의 힘’을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한글을 포함한 한류 콘텐츠가 세계인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자국의 정서적 문화와 유사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도 한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화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한글 또한 살아 숨 쉬는 문화라는 가치를 잊지 않고 인종, 국가, 이념을 초월한 인류 공통의 가치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가치를 지닌 한글과 한류 문화만이 문화 패권주의에 빠지지 않는 지속적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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