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어사전을 통해 본 한글의 언어 횡단
기획특별전 연계강연회 소개
▲ 기획특별전 연계 강연회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 이중어사전으로 본 한국 근대 언어사> 참고자료
황 교수는 한국어 사전의 탄생에 오랜 모색의 과정이 있었으며 그 고투 중에 ‘이중어사전’이란 것이 있었음을 설명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이중어사전은 두 개의 언어를 매개하는 사전으로, 이 이중어사전의 역사가 오늘날 한국어사전의 체계를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이중어사전의 시대는 한글 창제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명나라 공식 운서 《홍무정운》을 역훈하는 《홍무정운해설》의 편찬이었다. 물론 한글 창제의 중요한 배경에는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하는 애민정신이 있었지만, 한자와 한글이라는 두 언어를 횡단하려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훈민정음은 우리나라에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천하 성음을 기록할 수 있는 큰 책이다.” - 1750년(영조 26년),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 中
“훈민정음은 가히 천하에 통용될 수 있다. 만약 옛날에 성인이 계셔서 훈민정음을 만들어 표음해 왔더라면 자음이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훈민정음은 동음, 화음뿐만 아니라 천하지음을 모두 표기할 수 있다.” - 1856년(철종 7년), 정윤용의 《자류주석》 中
▲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 이중어사전으로 본 한국 근대 언어사> 강연을 맡은 황호덕 교수
《훈민정음운해》와 《자류주석》에는 이처럼 당시 유학자들의 한글에 대한 입장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이처럼 한자로 된 경전을 이해하고, 한자음을 정확히 표현하여 고정시키기 위해 한글을 사용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한글은 원천어이면서 도착어이며, 한자와 한국어 소리 사이의 관계를 지배하는 시스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황 교수의 설명이다.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한문 등은 코스모폴리스의 언어(보편적인 언어)로서, 이를 매개하는 장치인 사전이 필요하다. 영어 사전이 라틴어를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편문화의 세계와 토착어의 세계를 연결하는 데에는 사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황 교수는 이처럼 사전이란 이중어적인 것이며, 보편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소통을 위한 장치로서 고안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한국어사전의 역사가 짧다는 점에만 집중하여 부정적인 평가만을 내릴 필요가 없으며, 한글은 ‘백성을 살리는 기획’이면서도 ‘보편적인 기획’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연은 한글 창제 이후의 한자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두시언해》의 아름다운 번역은 지금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번역을 보면 한자어가 거의 없이 우리말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두시언해를 번역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라고 해도 고유어로만 번역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는 한글의 발명 이후 고유어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자어가 더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한글은 민간의 이야기를 잘 기록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밖으로부터의 지식을 잘 수용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한글이 있었기에 한자와 다른 외국어들을 더 잘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황 교수의 설명이다.
▲ 이중어사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황호덕 교수
전근대 질서는 ‘조공 시스템, 책봉체제론, 한자 문화권, 유교 문화권, 화이론, 한자권, 한문맥, 훈독 문화권’ 등 한자/한문을 중심으로 말하여진다. 이처럼 중세 동아시아, 나아가 근대까지도 한자를 중심으로 지식이 교환되고 외교 질서가 성립되었다. ‘한자 공유체’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근대’라는 것은 ‘오래된 근대’를 말한다. 한자를 공유하는 체계로서의 동아시아를 상속하는 시대가 근대이며, 한자를 만들어낸 체계가 근대를 만들었다. 근대 한국의 초기 국학자 안확은 한국어 연구가 외국어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외래어를 없애자는 것은 고대로 돌아가자는 말과 다름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글은 외래어를 받아들이며 성립해왔다. 근대의 한국을 말하자면 ‘번역하는 근대/번역된 근대’였다. 그 당시는 라틴어공유체에서 온 외래어들을 한자어로 매개하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자어와 고유어의 관계에 대한 선교사들의 관점도 중요했다. ‘progess’를 ‘앞으로 가오’ 등으로 ‘해제’하는 관계였던 서구어는 갑오경장과 애국계몽운동 이후 근대어들이 쏟아지며 거의 등가적으로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3·1운동 이후 언론과 잡지가 활성화되며 수많은 근대의 지식이 생산되었고, 지식의 권력이 바뀌게 된다. 예를 들면 사전에 ‘낭만주의’를 설명하며 한자와 영어를 표기한 뒤, 한국의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체계가 시작되었고, 프랑스 한국선교회의 《한불자전》, 언더우드의 《한영자전》 등 외국인이 만든 사전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만든 사전도 나오게 되었다. 일례로 이종극이 만든 《모던조선외래어사전》은 오믈렛, 카레, 모던보이 등의 풍속과 관련한 외래어들을 정리한 사전이다.
제임스 게일은 한국어 성경 번역사업에 종사한 캐나다 선교사로서, 한영사전을 총 3번 증보 간행한다. 그는 자일즈 사전을 비판하면서 그 해제어들을 가져와 사용한다. 게일은 한국에 언어가 세 개 있다고 생각했다. 고유어, 한글로 쓰인 언어, 한문이 다 다르며, 한국어 안에 한문이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요컨대 근대는 한자 공유체에서 한자 매개체로 변화하는 한자의 지위 변동 시기였던 것이다. 그 시기 한자는 한자 공유체의 근거가 아니라 서구의 언어를 번역하는 ‘매개’로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1945년 이후 한자 공유체는 종언을 고하며 외래어 음역의 시대로 이어진다.
▲ 강연에 집중하고 있는 참석자들
이번 강연은 한국어의 역사가 상당히 입체적이었으며, 이중어사전을 통해 한글의 체계가 확립되어 왔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마지막으로 황 교수는 문화는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질화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문화는 피가 아니라 이질성에 대한 매혹이라는 것이다.
2018년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사전의 재발견> 연계 강연으로 진행된 <한국어와 외국어 사이, 이중어사전으로 본 한국 근대 언어사>를 통해 이질성과 조우하는 문화의 속성, 언어를 횡단하며 발전해온 한글의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내년에도 이와 같은 흥미롭고 깊이 있는 연계 강연을 기대해 본다.
박물관을 느끼다의 지난 기사 | |
---|---|
[2018. 12. Vol.65] | 명필을 따라 써야 명필에 이른다 |
[2018. 11. Vol.64] | 세종학당 우수학습자, 국립한글박물관 방문기 |
[2018. 10. Vol.63] | 사전에 담긴 우리말로 우리 시대를 살피다 |
[2018. 09. Vol.62] | 광복 기념 특별해설, 한글 이야기 |
[2018. 08. Vol.61] | 가깝고도 먼 우리 몸의 역사를 느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