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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박웃음 2019. 10. 제 75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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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 특집

    그들은 왜 한글을 배우는가
    한반도 밖에서 바라본 한글의 모습

    한국인에게 한글은 문화적 뿌리이자 정체성이다.
    때문에 우리의 문자인 한글을 배우고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은 한글을 어떻게 바라볼까. 그들은 어째서 한글을 배웠던 것일까?
    2019년 제576돌 한글날을 기념하여 한글을 배우고, 연구하고,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기별, 인물별로 모아본다.

    정치·종교 등을 목적으로 시작된 한글 연구

    한반도의 긴 역사 속에서 외국인이 한글을 배우고 언어 사용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다. 당시 서구 문명과 접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조선 정부는 전문적인 통역관의 필요성을 느끼고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한국명 목인덕)를 외교 고문으로 받아들여, 1883년 통역관 양성소인 ‘동문학’을 세워 영어를 배우게 했다.

    이후 교육 분야도 근대화되면서 1886년 최초의 관립 학교인 ‘육영공원’이 세워진다. 영재를 육성한다는 의미를 지닌 이 학교의 선생님이 바로 호머 헐버트다. 독립운동가이자 최초의 한글학자로 유명한 헐버트는 한글을 공부한 지 4일 만에 깨우치고, 3년 만에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저술했다. 이후 한글의 로마자 표기 등을 연구하고 여러 논문에 한글을 과학적인 문자로 소개했으며, 1908년까지 총 15권의 한글 교과서를 펴냈다.

    종교인들 역시 개화기 한글 발전에 큰 역할을 차지했다. 스코틀랜드에서 포교활동을 위해 찾아온 존 로스(한국명 라요한) 선교사는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 1877)≫을 집필하며 최초의 띄어쓰기를 도입했다. 책에는 “한글은 소리글자로 이루어져 자모만 배우면 누구나 읽고 배울 수 있는 글자”라 적어 우수성을 칭송했으며, 꾸준한 연구를 진행한 끝에 1882년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를 완성했다.

    한글박물관이 소장중인 ≪사민필지≫ 표지. 누렇게 갈변한 표지 위로 알아보기 힘든 한문이 적혀있다.

    한글박물관이 소장중인 ≪사민필지≫ 내지. 좌측엔 지도가 그려져있고, 우측에는 작은 글씨로 한글이 적혀있다.

    ▲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 중인 ≪사민필지≫

    한글 우수성에 대한 공감 바탕으로 연구 나선 세계 언어학자들

    개화기에 한반도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우고 활용하여 각종 서적을 번역하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해외 언어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활발한 한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한글은 물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기 때문이며, 유네스코가 문맹퇴치에 헌신한 개인, 단체, 기관 등에 수여하는 상을 ‘세종대왕 문맹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라 이름 짓는 등 그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베르너 사세 한양대 석좌교수는 25세 때 한국에 첫 방문한 뒤 1970년부터 본격적인 한글공부에 돌입했다. 당시만 해도 서독에는 한국학과가 없어 일본학과에 적을 둔 채 한글, 한문, 일본어를 동시에 수학했다. 1975년 독일인 최초로 한국학 박사과정을 받으면서 제출한 학위논문은 <계림유사에 나타난 고려방언>이었다. 2006년 독일 함부르크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은퇴하자마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한국에 정착해 지금까지도 전국에서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노마 히데키 교수가 한글에 대해 일본어로 설명하는 영상의 캡쳐화면. 가, 카의 발음에 대해 ‘기본적인 글자의 모양은 바꾸지 않고 ㄱ(기역)에 획을 하나 더해서 거센소리를 나타내는 글자인 ㅋ(키읔)을 만드는 것입니다.’라는 자막이 송출되고 있다.▲ 노마 히데키 교수의 한글 홍보 영상

    국내 언론사 YTN과 스튜디오에서 인터뷰하는 로버트 램지 교수의 모습.▲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하는 로버트 램지 교수(출처 : YTN)

    지난 2011년 한국어의 기원과 시대에 따른 변화과정을 담은 『A History of the Korean Language』(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를 펴낸 로버트 램지 교수는 한글에 매료된 언어학자로 유명하다. 1966년 학사장교로 한국에 파견되며 인연을 맺은 뒤 50년을 넘는 시간 동안 한글을 연구해왔다. 이 공로로 2013년 한글날에는 보관(寶冠)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글이 위대하듯이 세종도 위대하였다”면서 “단순하고, 가식이 없고, 효율적인 한글은 그가 남긴 최고의 유산이었다”고 애정을 밝혔다.

    젊은 학자층의 자세는 더욱 더 적극적이다. 초머 모세 헝가리 엘테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는 2017년 개최된 한국학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한국어로 강연한 뒤 “한 민족의 문화 및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저서 ≪한글의 탄생≫을 통해 한글 탄생의 드라마를 적어 한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손쉽게 한글을 받아들이도록 도왔다. 특히, 국립한글박물관은 2016년 기획전시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을 준비하면서 히데키가 한글의 특징을 설명하는 홍보영상을 제작한 바 있다.

    이렇듯 한글과 한글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이어지면서 세계인들에게 ‘한글과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더 이상 어색하고 생소한 일이 아닌 신선하고 필요한 일로 거듭났다.

    한국문화를 배운다는 것은 한글을 배운다는 것!

    학계에서 한글의 가치가 차분하게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면, 일상에서의 한글문화는 더욱 격렬하게 전파되고 있다. 한글의 디자인적 요소를 활용해 자모음이 프린팅된 의류가 유행하는 것과 더불어 할리우드 스타들도 한글에 관심을 갖고 개인 SNS에 포스팅하는 등 문화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배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그 나라의 글과 말을 배운다는 것이기에, 한글의 파급 잠재력은 앞으로도 무궁하다 할 것이다.

    왜 한글을 배우는지, 어째서 한국을 좋아하는지. 먼 길을 돌아 한국을 찾아온 유학생이 직접 소개하는 한글의 맛과 멋을 들어본다.

    7명의 젊은 외국인 관람객이 목판인쇄 체험에 나서 종이에 찍힌 결과물을 보며 놀라고 있다.

    두 명의 젊은 외국인 여성 관람객이 스스로 만든 한글 책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10여 명의 외국인 관람객이 목판인쇄 결과물을 들고 나란히 서 단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국립한글박물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국인 관람객들

    누구나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놀라운 문자 한글

    아디바 아르지콜로바 씨가 팔짱을 낀 채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 우즈베키스탄의 외곽 도시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릴 적부터 언어를 좋아해 15살이 되던 해 450km 떨어진 타슈켄트의 국제고등학교로 진학했죠. 우즈벡어, 러시아어 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까지 다양한 언어를 배웠어요.

    그러던 중 사촌 언니가 한국어 공부하는 걸 봤어요. 언니는 대학생이었는데 제2외국어로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중 한국어를 선택한 것이었죠. 이 광경을 처음 봤을 땐 정말이지 언니가 이 글자를 읽고 있는 것인지 그림을 보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이해하지?’란 생각에 호기심이 생겼고요. 한글을 직접 공부하면서 쓰고, 읽으며 연습하면서 놀란 점은 굉장히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에요. 전혀 모르던 문자를 갑자기 읽을 수 있게 돼 정말 놀랍고 보람 있었죠.

    한글의 모든 글자는 독창적인 한국의 문화에요. 자신의 알파벳(글자)을 가진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지 않던가요? 이제 많은 외국인도 한글을 배우고 사랑하게 됐으니, 더욱 널리 퍼져나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자와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아디바 아르지콜로바(Adiba Orzikulova, 인하대)


    한국 젊은이들의 봉사활동을 보며 시작된 인연

    롭상 남걀 씨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한국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어요. 당시 인도에 거주했는데, 봉사활동을 하러 온 한국 분들이 우리 학교에 방문했었죠. 그분들이 사용하는 한글, 한국어,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접했어요.

    이후 한글을 처음으로 배울 때에는 티뱃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어순이나 자모음의 순서 등이 유사하게 느껴졌고, 정감이 갔죠. 그래서 더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글은 동아시아권에서 사용하는 문자 중에서 가장 편안한 문자에요. 한자를 기반으로 한 언어에는 곡선이 정말 많거든요. 반면 한글은 모든 글자의 생김새가 달라 구분이 쉬웠고 읽고 쓰기도 무척 편합니다. 사실 한자를 알게 된 것은 한글을 배운 한참 뒤였는데, 내가 한글을 사용하는 곳에 유학 오게 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조금 배운 바로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이 일반인을 위해서였다고 들었어요. 높은 사람들만 공부할 수 있는 현실을 아쉬워하고 일반 사람들을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는 점이 놀라웠고, 한글을 배워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게 됐습니다. 롭상 남걀(Lobsang Namgyal, 고려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