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대한제국 칙서에서 영감을 받은 한글 서체죠” ‘한글재민 폰트 개발의 주역’ 박재갑, 김민 교수를 만나다
‘한글재민’ 글꼴 개발팀 (왼쪽부터 이규선 연구원, 박재갑 교수, 박윤정 교수, 김민 교수)
(사진: 저작권위원회 제공)
1908년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서울대병원의 전신 대한의원 개원을 허하는
칙서 속 글자가 디지털 글씨로 다시 태어났다.
역사 속 한글을 보고 그 단아한 멋에 빠져 붓글씨로 모사했던 박재갑 교수와
그 글씨를 보고 현대적으로 개발하자고 제안한 김민 교수.
‘대한의원 개원 칙서’를 바탕으로 ‘한글재민’ 디지털 폰트를 개발한
‘글꼴 개발팀의 두 주역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박재갑 교수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명예 교수 박재갑입니다. 저는 평소 우리 문화의 핵심은 한글이라고 생각해왔고, 꾸준히 붓글씨를 연습해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자주 지나다니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내 대한의원 건물 1층 로비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449호인 ‘대한의원개원칙서’가 걸려있는데,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 이전에 쓰인 그 단아한 필체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대한의원 개원 칙서’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대한의원 개원일인 1908년 10월 24일에 대한의원이 대한제국의 공공의료기관임을 선포하며 내린 공식 문서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이후 꾸준히 발전해 왔기에 칙서에는 그 예술성이 고스란히 담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름다운 한글을 더 이상 볼 수도 쓸 수도 없었다니,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던 중 국민대학교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장 김민 교수가 제 사무실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제가 쓴 붓글씨를 발견했고, 저에게 그 서체를 ‘디자인 글꼴’로 개발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의 한글이 살아나기를 바라던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 ‘한글재민’을 탄생시킨 거대한 출발점이 된 것이죠.
김민 교수
박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대한의원 개원 칙서’를 보고는 그 칙서에 등장한 조형성이 고급스럽고 도도하기까지 해서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실이나 궁에서 사용하던 필기체를 ‘궁서체’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황제의 명을 기록한 ‘칙서’나 외교문서를 작성하던 ‘사자관(寫字官)’의 필체는 접할 기회가 없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폰트로 보급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019년 3월이던 그때만 해도 저는 남은 정년을 ‘한글재민’ 디지털 폰트로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당시 폰트의 최종 출시를 2026년으로 계획했었으니까요. 이렇게 1년 만에 한글 폰트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유능한 팀원들을 맞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개발팀에 박윤정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겸임교수와 이규선 국민대학교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 연구원이 합류한 덕분이었죠.
총 네 명의 팀원은 각자 맡은 것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박 교수님이 직접 임서한 서체를 이규선 연구원이 바깥 선을 추출하여 디지털 파일로 폰트화합니다. 박윤정 교수는 이규선 연구원의 폰트 파일을 한 자 한 자 검수해서 체크하고, 저는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칙서에서 추출된 자소는 총 33자로, 한글 디지털 폰트의 기본이 되는 2,350자의 2%도 채 되지 않는 분량이었거든요. 완성형 폰트를 구성하기에는 자소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죠.
따라서 칙서 속 한자에서도 한글에 반영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 서체를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서체를 재해석하는 경우에는 디자이너의 주관적인 관점이 드러날 수 있어서 원본의 느낌과 현대적 해석의 균형을 맞춰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했습니다.
대한제국 시절 황제 칙서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립한글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보관 중인 고문서의 서체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여러 서체를 연구하다 보니 궁서체와 격이 다른 개성적인 글꼴 디자인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왕실의 공식 문건 수집을 위해 지난 2월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에 갔을 때 기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약 9만 점의 왕실 문헌과 약 오천여 점의 낱장 고문서가 보관된 서가에서 옛 선조들의 기록을 접하면서 당시의 지혜와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박재갑 교수
폰트가 완성됐을 때 무척 기분이 좋았죠. 칙서 속 한글이 살아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현실로 이루어졌으니까요. 제가 평소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자리이타(自利利他), 즉 남을 이롭게 하면 나도 이로워진다는 뜻인데요. 폰트 개발도 자리이타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순종 황제가 대한의원을 개원한 것도 국민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칙서는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것이지 않습니까. 비록 조선의 정세는 기울고 있었지만, 당대의 문화와 정신은 그 어떤 나라와도 견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익을 내면 이 가치가 떨어지리라 판단했습니다.
김민 교수
폰트 개발을 작년 설날부터 시작하였으니 정확하게는 약 20개월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최근에 안동의 하회세계탈박물관에서 주관했던 <안동하회탈판화전> 도록에 사용된 모습을 보았을 때와 지난 한글날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공유마당’에서 무료배포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다운로드 수 10,000회를 넘기는 순간을 지켜볼 때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재갑 교수
이번에 발표한 한글재민1.0은 한글 폰트만 있지만, 이후 제작할 한글재민2.0에서는 한자 폰트가 추가될 예정입니다. 내년까지 4,888자를 만들기 위해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대한의원개원칙서’ 나왔던 한문과 같은 시대, 궁에서 쓰인 한문 서체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한국학중앙연구소에서 자료를 수집해 전달해주기로 했습니다. 그 자료를 토대로 제가 글꼴을 쓰고 만드는 것이죠. 앞으로도 이용자들이 폰트를 많이 활용해주었으면 좋겠고, 개선점이 있다면 의견을 전달해주길 바랍니다. 저희는 한글재민을 앞으로도 더욱더 발전 시켜 나갈 예정입니다.
김민 교수
우리말 단어의 70% 정도는 한자어인 까닭에 한자를 모르면 문장의 이해도는 물론 어휘력 증진에도 어려움을 겪기 마련입니다. 한 벌의 폰트는 한글, 로만, 아라비아 숫자와 각종 문장부호로 구성되기 때문에 동일한 느낌의 한자를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자 중에서 오직 우리의 한글만 누가, 언제, 어떤 이유와 과정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한 ‘말’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글’이 필요하고 ‘글’을 쓰는 순간 그 사람의 감정이 ‘글씨’에 담기게 됩니다. 따라서 한국인의 ‘얼’이 담긴 ‘한글’은 지금 세계인들이 한국문화에 열광하는 만큼 앞으로 세계인들의 문자로 자리매김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