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웃음 2020.12. 제 88호

지난호보기 메뉴열기

이야기 저장소 최초의 한글워드프로세서 개발자,
박현철

‘기록’의 역사적 가치와 범주가 확장되면서 구술자료의 가치와 역할도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한글의 역사적인 시대를 함께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구술 기록으로 남기고,
다면적 구술 기록의 수집을 통해 사건을 총체적으로 보존하는 일은 국립한글박물관의 주요한 활동 중 하나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 2015년도부터 한글문화인물 구술기록사업을 통해 구술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한박웃음은 디지털한글박물관에 보관된 구술 아카이브 자료를 요약해 소개하려 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URL복사
  • 박현철
  • 신우이엔지(주) 부설연구소 부장
  • 김택호
  •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 2015.08.31.
  • 국립한글박물관
  • 02:41:59
  • 서정, 이용태(李龍兌), 안대혁(安大赫), 김병훈(金炳薰), 이범천(李凡千), 성기수(成琦秀), 전두환(全斗煥, 일해, 日海), 김정수(金貞秀), 강태진(康泰鎭), 이어령(李御寧), 이상희(李祥羲), 이찬진(李燦振)
  • 전라북도 고창군(全羅北道 高敞郡, 전북 고창, 고창), 서울북공업고등학교(서울北工業高等學校, 서울북공고), 한글워드프로세서 1.0, 아토전자, 삼보컴퓨터(三寶컴퓨터, Trigem Computer), 한글과 컴퓨터(Hancom, 한컴), 한글폰트, 완성형 한글문자코드(完成形 한글文字코드), 조합형 한글문자코드(調合形, 한글文字코드)

#01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소년

인터뷰에 응하는 박현철 부장. 하얀티에 검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다. 짧게 친 스포츠머리의 단정한 스타일이며, 앉은 자리 뒤 진열장에는 대여섯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진공관 옆에 턴테이블이 있는데 그걸 조작을 하더라. 그래서 얘가 커서 뭘 하나 싶었더니아, 결론은 이런 걸 하게 됐다”

박현철(1965년 출생)은 현재 신우이엔지연구소 부장이다.
전북 고창 출생인 박현철 부장은 유복한 가정환경과 부친의
강한 교육열에 힘입어 어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교육받았다.
“(아버님이)제가 네 살 때, 그때 당시에 진공관 앰프잖습니까?
진공관 옆에 턴테이블이 있는데 그걸 조작을 하더라. 그래서 얘가 커서 뭘 하나 싶었더니
아, 결론은 이런 걸 하게 됐다…(중략)…그러면서 인제 어린 나이지만 그때 당시에도
이를 테면은 뭔가를 만들고 과학적인 일들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나한테 맞구나.”

#02 “컴퓨터만 쓰게 해주세요!” 세운상가를 헤매다

인터뷰에 응하는 박현철 부장. 하얀티에 검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다. 짧게 친 스포츠머리의 단정한 스타일이며, 앉은 자리 뒤 진열장에는 대여섯 권의 책이 놓여 있다.
“그거만 해도 어디겠어요, 제 입장에서. 와, 피씨(PC), 화면에 글자가 나오는 컴퓨터.”

중학 재학 중 관련 잡지를 통해 알게 된 컴퓨터에 깊게 매료되었으며,
관련 잡지와 세운상가 등 관련 정보와 인력이 교류하는 곳을 중심으로
직접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운용하는 방법과 사례를 습득하였다.
“…어쨌든 호칭을 하면서 ‘제가 납땜 같은 거 도와드리고 컴퓨터 좀 쓰면 안 되겠냐?’ 그랬더니
‘너 납땜할 줄 아냐?’고. ‘아, 나 공고 다닌다.’고. ‘그러냐?’고. ‘너 컴퓨터 쓸 줄 아냐?’고.
솔직히 그냥 쓸 줄 안다고 그랬어요. 솔직히 다뤄본 건 한 번도 없었지요.
그냥 머릿속에 그냥 기억만…(중략)…그거만 해도 어디겠어요,
제 입장에서. 와, 피씨(PC), 화면에 글자가 나오는 컴퓨터.”

#03 우리나라에도 우리만의 워드프로세서가!

인터뷰에 응하는 박현철 부장. 하얀티에 검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다. 짧게 친 스포츠머리의 단정한 스타일이며, 앉은 자리 뒤 진열장에는 대여섯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워드프로세서 개발하고 싶어요. 그랬지요.”

이 과정에서 한글워드프로세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관련 지식 및 핵심 조력자와 후원자를 만날 수 있었다.
1982년 당시 고교 2학년이었던 박현철 부장은 개인용 컴퓨터(애플2 플러스)를 활용한
한글 최초의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였다. 당시에 사회적으로 대단한 화제가 되었는데,
이 워드프로세서 개발과정에는 당시 광운대학교 학생이었던 서정 씨, 삼보컴퓨터 이용태 사장 등의 조력이 있었다.
“그 나라에는 뭐 애플 라이터(Apple Writer)니 뭐 그런 소프트웨어들이 있더라고요.
어, 우리나라도 필요하겠다. 그래서 야, 이거, 이거 만들어 놓으면 이거, 이거, 이거를 일단 만들어야 되겠다.
…(중략)…이용태(李龍兌) 사장님을 만나서 인사를 막 하는데 그분이 물어보더라고요.
내가 너 소개를 들었는데 컴퓨터 잘한다면서? 뭐 조금 할 줄 안다.
그랬더니 ‘너 뭐 해보고 싶냐?’ 그러더라고요. ‘워드프로세서 개발하고 싶어요.’ 그랬지요.”

#04 무료로 배포한 최초의 한글워드프로세서

인터뷰에 응하는 박현철 부장. 하얀티에 검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다. 짧게 친 스포츠머리의 단정한 스타일이며, 앉은 자리 뒤 진열장에는 대여섯 권의 책이 놓여 있다.
“디스켓 가져오는 사람은 공짜로 주세요.”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 성공 이후 구술자는 학생이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부친의 지론에 따라 한글워드프로세서를 무료로 배포했다.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때. 아버지. 나 이렇게 해서 컴퓨터 이렇게 했는데 저기 저렇게 한다.
그랬더니 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딱 그거였어요. 학생은 돈 알면 안 된다. 학생은 공부만 해야 된다.
그게 그냥 그래서 삼보컴퓨터 가서 그랬어요. 아, 전 그냥 그거 워드프로세서.
그때 디스켓 한 장에 3,000원이었거든요? 플로피 디스켓 5.2인치 한 장에 3,500원이었는데요.
‘디스켓 안 가지고 온 사람 5,000원 받고 주시고요. 디스켓 가져오는 사람은 공짜로 주세요.
그런 조건으로 하시면 돼요.’라고 했어요.”

#05 고등학생의 워드프로세스 개발, 문교부 컴퓨터 보급사업에 영향

인터뷰에 응하는 박현철 부장. 하얀티에 검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다. 짧게 친 스포츠머리의 단정한 스타일이며, 앉은 자리 뒤 진열장에는 대여섯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제가 한이 맺혔잖아요.”

당시 고등학생이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큰 화제가 되면서
이를 계기로 문교부가 교육용 컴퓨터 보급사업을 시행하게 되기도 했다.
“제가 인제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고 나니까 이제 그때 당시 문교부지요.
문교부에서 이제 문교부 장관님이 표창장을 준다고 오라 그래서 갔어요.
갔더니 상을 주시고 난 다음에 금일봉 50만 원도 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물어보시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너 같은 학생들이 많아지겠냐?’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컴퓨터 좀 마음대로 쓸 수 있게 좀 해주세요.’
제가 한이 맺혔잖아요. 찾아다니면서 했는데. 미국 같았으면 아마도 가능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근데 우리나라는 전부 다 거절당했잖아요. 물론 해준 데도 있지만, 아토전자.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그러면은 알았다.’ 그러더니 인제 고등학교 컴퓨터 5,000대 보급 계획이 나온 거예요.”

#06 11,172자 만으로 모든 글자를 표현하는 한글

인터뷰에 응하는 박현철 부장. 하얀티에 검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다. 짧게 친 스포츠머리의 단정한 스타일이며, 앉은 자리 뒤 진열장에는 대여섯 권의 책이 놓여 있다.
“와, 전 세계에 그런 글자는 없거든요.”

이어 박현철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면서 한글이란 우리 문자 체계가 가진 독특성에 대해 설명했다.
“와, 전 세계에 그런 글자는 없거든요. 전 세계에 그런 글자는 진짜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나중에 13개국, 13개국어 워드프로세서 개발을 했는데.
그니까는 유럽 글자가 되는 거지요. 움라우트(Umlaut)같은 거 칠 수 있는 그런 거를 개발했는데.
그거는 우리나라 조합형에 비하면 이건 게임도 안 되는 거예요.…(중략)…
중국말은 그 당시 500비트(bit)가 필요하다 그랬어요, 500비트(bit). 500비트(bit), 비트(bit)라는 표현은 뭐냐면요.
글자 수가 무제한이라는 거예요. 중국 글자는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그니까는 영원히 어쨌든 수용할 수 없는데. 우리는 11,172자 만으로 모든 글자를 표현할 수 있잖아요.”

#07 후학들, 대한민국의 아이티(IT) 산업 이끌어주길

인터뷰에 응하는 박현철 부장. 하얀티에 검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다. 짧게 친 스포츠머리의 단정한 스타일이며, 앉은 자리 뒤 진열장에는 대여섯 권의 책이 놓여 있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인도나 중국에서 사와야 돼요, 소프트웨어.”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대한민국의 아이티(IT) 산업 발전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하며 구술을 마무리지었다.
“60년에서 80년 요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아이티(IT) 산업 발전을 쭉 시켜왔는데 요 뒤에가 없어요,
지금. 이 뒤에 끊어진 거 아직은 버틸 수 있어요. 왜? 이 사람들이 살아있으니까. 경험도 있고.
근데 여기서도 끊어지고 나서 없어져요. 그러면 대한민국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인도나 중국에서 사와야 돼요,
소프트웨어.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초의 한글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한 박현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아래 영상을 눌러주세요!

오른쪽 상세목록을 선택하면 해당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 영상 재생이 안되는 경우 아래 바로가기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