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제 91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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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작품의 얼굴이 되는 포스터, 그 안의 한글”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 최지웅을 만나다

누구나 한 번쯤 길을 걷다 마주친 영화 포스터에 압도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각 작품의 포스터는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대중의 눈을 사로잡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악의 하루>, <신세계>, <사랑의 불시착>, <부부의 세계> 등 수많은 관객을
매료시킨 포스터, 그리고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제작한 최지웅 디자이너를 만나보았다.

Q.<한박웃음> 독자 여러분께 인사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 사무실 내부 전경. 가운데 동그란 나무 탁자가 놓여있고, 옆에 두 개의 동그란 나무 의자가 놓여있다. 뒤로 보이는 사무실 벽면에는 진열장이 놓여있으며, 각종 영화 포스터와 서적이 진열되어 있다. 또 다른 벽면의 진열장에는 작업물이 보관되어 있다.▲ 프로파간다 사무실 내부 전경 프로파간다의 홈페이지 캡처. 왼쪽 상단에 프로파간다의 로고가 적혀 있으며 그 아래 크게 ‘FILM’이 적혀 있다. 홈페이지 화면에는 프로파간다에서 작업한 포스터 12개가 나열되어 있다.▲ 프로파간다 홈페이지
출처 http://propa-ganda.co.kr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공연 등의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의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 최지웅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포괄적으로 ‘영화 광고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영화 촬영이 시작되기 전 시나리오북 디자인부터, 포스터, 전단, 잡지광고, 버스광고, 전국의 극장배너 까지 모두 다 하고 있죠. 보통 영화사에서 주는 사진으로 디자인만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영화 이미지의 모든 것을 연출하고 총괄해요. 포스터 전체 콘셉트와 배우들의 포즈 등, 아이디어를 짜고 사진작가와 촬영을 진행하죠. 여기에다 작품의 특성을 잘 살린 제목 타이포그래피를 직접 제작한답니다.

프로파간다는 주로 공산국가에서 정치적으로 쓰이던 용어지만, 저희는 대중을 ‘홀리는’ 선동을 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요. 저희가 만든 포스터를 보고 그 포스터에 매료되어 더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가는, 그때 가장 뿌듯함을 느껴요.

Q. 영화 포스터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 그리고 제작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극장 앞에 가면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포스터와 영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교 때는 극장의 포스터를 몰래 뜯어가기도 했죠. 한번은 영사실 기사님한테 그 현장을 걸렸는데, 계단 아래 창고로 따라 들어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 그곳에 가보니 극장이 생긴 이래로 상영됐던 영화의 포스터가 전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네가 갖고 싶은 만큼 다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남아있는 순간이네요. (웃음)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 영화 잡지 <스크린>에서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의 인터뷰 기사를 봤어요. 마치 섬광이 제 심장에 딱 꽂히는 기분이 들었고, 어렴풋하게 있던 꿈이 선명한 목표로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바로 말씀드려 입시 미술을 준비한 뒤 미대에 진학했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 영화 포스터 업계가 굉장히 성장하던 시기였어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시월애>, <집으로> 등 유명 포스터를 유심히 보니, 전부 하나의 회사에서 만들었더라고요.

프로파간다에서 작업한 영화 ‘비몽’ 포스터. 검은 긴 머리를 동그랗게 하나로 묶고 수염을 기른 오다기리 조의 측면 사진이다. 그 옆에 작게 ‘나는 당신에게로…’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단에 나비 무늬가 있으며 무늬 위로 한글 캘리그래피 ‘비몽’이 흰색으로 적혀 있다. 

프로파간다에서 작업한 영화 ‘비몽’ 포스터. 검은색 긴 생머리 이나영의 측면 사진이다. 옆에 작게 ‘당신의 꿈이 나에게로…’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단에 나비 무늬가 있으며 무늬 위로 한글 캘리그래피 ‘비몽’이 흰색으로 적혀 있다.

▲ 영화 <비몽> 포스터
ⓒ프로파간다

마침 그 회사에서 신입 디자이너를 뽑았고, 지원해서 입사하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웠지만, 그중에서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어요. 경력을 쌓은 뒤 저만의 독립적인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었고, 그렇게 ‘프로파간다’를 설립했어요. 당시 배우 이나영과 오다기리 조 주연의 영화 <비몽> 포스터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어 <워낭소리> 등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저희도 함께 성장할 수 있었어요.

Q. 영화 <증인>, <부산행>, <최악의 하루> 등 한글 타이포그래피 포스터 작업을 다수 진행했는데요. 이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프로파간다에서 작업한 영화 ‘증인’ 포스터. 도로 위에 나란히 선 정우성과 김향기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짓고 있다. 정우성은 회색빛 정장을 입고 있으며 김향기는 붉은색의 교복 가디건과 체크무늬 교복 치마를 입고 있다. 가운데 한글 캘리그래피 ‘증인’이 적혀 있다. 제목 밑에는 세로쓰기로 ‘마음을 여는 순간, 진실이 다가왔다’ 문구가 적혀 있다.▲ 영화 <증인> 포스터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에서 작업한 영화 ‘부산행’ 포스터. 폐허가 된 채, 불길과 검은 연기가 뒤섞여 있는 공간에서 공유는 여자아이를 품에 안은 채 다급하게 뛰고 있다. 그 뒤로 정유미, 마동석 역시 다급하게 뛰고 있다. 그 곁에 바닥에 넘어진 안소희를 최우식이 붙들고 있다. 뒤로는 기차가 보인다. 상단 중앙에는 ‘끝까지 살아남아라’ 문구가 적혀 있다. 하단 중앙에는 ‘전대미문 재난 블록버스터’가 붉은색으로 작게 적혀 있고, 그 밑에 제목 ‘부산행’이 흰색으로 크게 적혀 있다. 문구들은 어딘가에 긁힌 것 같이 표현됐다. ▲ 영화 <부산행> 포스터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에서 작업한 영화 ‘최악의 하루’ 포스터. 돌 담벼락에 붉은색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 앞에 잔뜩 짜증이 난 표정의 한예리가 껌으로 커다란 풍선을 불고 있다. 좌측 상단에 작게 ‘폭발직전의 여름로맨스’라고 적혀 있으며 상단에 손글씨 캘리그래피로 제목 ‘최악의 하루’가 적혀 있다. 그 아래에 작게 ‘오늘 빵, 터진다’ 문구가 적혀 있다.▲ 영화 <최악의 하루>
ⓒ프로파간다
프로파간다에서 작업한 드라마 ‘괴물’ 포스터. 노란빛이 도는 복도에 신하균과 여진구가 등을 맞대고 앉아있다. 두 남자의 각 한쪽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고 수갑이 긴 줄로 이어져 있다. 포스터 가운데 작게 ‘괴물은 누구인가’라고 적혀 있으며 그 아래 제목 ‘괴물’이 분홍색으로 크게 적혀 있다. 제목은 뿔이 난 것처럼 각이 뾰족하게 표현됐다.▲ 영화 <괴물> 포스터
ⓒ프로파간다

작품 장르에 따라 다르지만, 작품과 제목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예를 들어 영화 <증인>의 경우 진중하면서도 가슴이 따뜻한 내용이거든요. 그 분위기를 담아내려 노력했고, <부산행>은 좀비가 할퀸 느낌의 표면으로 제목을 디자인했죠. 또, <최악의 하루>는 주인공의 심술궂은 표정과 영화의 밝은 분위기를 살릴 수 있도록 ‘최악’의 ‘악’을 마치 화난 얼굴처럼 보이게 디자인했어요. 배우 신하균, 여진구가 출연하는 드라마 <괴물> 포스터는 마치 괴물의 이마 위에 돋아있을 법한 ‘뿔’을 형상화해서 작업했고요. 이런 타이포그래피는 100% 수작업으로 진행해요. 직접 붓에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고, 스캔해서 컴퓨터에 옮겨요. 그 작품만을 위해 제작한 고유 서체가 필요하니까요.

Q. 작품에 대한 영감을 받는 순간은 언제인지, 또한 창작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프로파간다에서 작업한 영화 ‘그랑블루’ 포스터. 푸른빛 물속에서 돌고래와 붉은빛 머리의 여성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여성은 푸른색 옷을 입고 있다. 포스터 한가운데 휘갈긴듯한 펜글씨체로 ‘Le Grand Bleu’라고 크게 적혀 있다. 그 아래 작은 하늘색 글씨로 ‘그랑블루’라고 적혀 있다.
▲ 영화 <그랑블루> 포스터
ⓒ프로파간다

저에게 영감은 작품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배우의 대사에서, 혹은 줄거리 등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죠. 다만 평소 잡지, 공연, 사진집 등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서점에서 좋은 사진 등을 볼 때 ‘이런 것은 어떤 장르의 영화에 어떻게 응용하면 좋겠구나.’ 하면서 생활 속에서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감독이나 영화는 많지만, 제 인생 영화를 꼽자면 <그랑블루>와 <시네마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모두 저의 청소년기에 개봉한 작품들이죠. 그런데 <그랑블루>가 한국에서 재개봉하게 되면서 포스터 제작을 저희 회사가 맡게 되었어요.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을 느꼈고, 작업하면서도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했던 기억이 나네요.

Q. 한글 타이포그래피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에게 작품의 제목을 표현하는 타이포그래피는 글자가 아닌, 하나의 이미지로 느껴져요. 그 작품을 상징할 수 있는 이미지 덩어리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이따금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배우 김고은, 박해일이 출연하는 <은교>의 ‘교’라는 글자를 아름답게 표현하기까지 애를 먹었어요.

드라마 <밀회>의 ‘밀’자를 쓸 때 비밀스럽고 끈적거리는 느낌을 담고 싶어 거의 백번 넘게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할 때 리을과 이응 받침이 들어간다거나 초성에 히읗, 모음 아 모양이 들어가는 것을 좋아해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Q. 한글 타이포그래피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약 10년 전만해도 유럽의 스위스 디자인, 영어로 디자인을 하는 게 유행이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글 붐, 복고의 유행과 함께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다시 인기를 얻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폰트가 영어 폰트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 관계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해서 우리 것이 많아졌으면 해요.

저는 어린 시절의 꿈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에요. 거창한 목표는 아직 없지만, 지금처럼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쭉 잘하고 싶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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