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제 91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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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처음이지?

“나를 일으켜 세우고, 삶을 다독여주는 한글”

주라예바 가브하로이(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가브하로이는 친오빠의 영향으로 한글을 접했고,
어린 시절부터 열정적으로 한글 공부를 하며 ‘한국 유학’을 목표로 정진했다.
만 스무 살에 시작한 한국 생활이 순탄치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한글 자작 시 <괜찮을 거야>를 되뇌며 힘을 얻었다.
한글을 통해 더 넓은 세상과 가치를 배우고,
국내 물류 회사에서 인턴 과정을 겪으며 정신적 성장을 이뤘다는 가브하로이.
그녀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오늘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가브하로이와 한글 공부 동아리의 여성 선생님이 밀착해 나란히 서 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가브하로이는 상장 내용이 보이도록 펼쳐서 들고 미소짓고 있다. 선생님은 빨간 옷에 회색 가디건을 입은 채 브이를 하며 미소짓고 있다. 선생님은 앞머리가 있고 어깨까지 길이의 파마한 머리이다. 둘의 뒤로는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꽂이가 보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글을 배우던 가브하로이와
한글 공부 동아리 선생님의 모습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우즈베키스탄의 동부에 위치한 페르가나에서 온 주라예바 가브하로이라고 합니다. 한국 유학을 목표로 삼았던 친오빠 덕에 저도 열두 살 무렵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당시 다니던 학교에 ‘코이카(KOICA)’에 근무하던 한국인 선생님이 운영하던 한글 공부 동아리에 다니게 됐어요. 친구들 모두 학문에 열의가 가득했기에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을 듣거나 도서관에 모여 공부를 하고, 서로 부족한 어휘나 문법, 속담이나 사자성어 등을 가르쳐주며 한국어 시험을 준비했죠.

그러던 어느 날, 저의 한국어 능력을 알게 된 학교에서 갑작스레 ‘통역’ 일을 제안했고, 한국인 시험 감독관의 말을 통역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이 일을 계기로 한국어 번역 아르바이트도 하며 공부에 더욱 박차를 가했죠. 열여섯 살에 한국어능력시험 4급을 취득했고, 이때부터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의 선생님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학업과 병행해야 해서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있듯,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도 배우는 것이 많았어요. 결국 한국어 공부 5년 차에 최상 등급인 6등급을 받았고, 그 뿌듯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죠.

우주베키스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는데요. 그때 한국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채용이 되어 국제적으로 많은 지사가 있는 물류 회사에서 일하게 됐어요. 여러 서류를 발급하거나 한국어, 러시아어, 우즈벡어 등을 통번역하기도 했죠. 능력을 인정받아 계속 일을 할까 싶기도 했지만, 한글을 처음 배웠을 때 세운 ‘한국 유학’이라는 목표가 계속 제 가슴을 두드렸어요. 그렇게 세종대학교에 입학해 경영학과 행정학과를 복수전공 했죠.

보통의 외국인 유학생들은 어학당에 들어가지만, 저는 비교적 바로 적응할 수 있었어요. 학창시절에 이미 동아리 선생님들과 함께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조기교육’을 받았거든요. 한복 체험은 물론이고 잡채와 송편, 불고기 등을 직접 만들어서 나눠 먹거나 전통 놀이를 했으니까요. 오히려 한국에 와서는 커피나 라면, 치킨을 더 많이 먹은 것 같아요.(웃음)

문제는 한글이나 한국어를 잘 아니까 사람들과 표면적인 대화를 편하게 할 수는 있었지만, 한국의 문화나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상황에 따라 ‘괜찮다’는 ‘사실 괜찮지 않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이 때문에 몇 번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그 또한 제가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도 더욱 주의를 기울였고, 한국의 문화를 다양하게 체험하기 위해 봉사활동이나 여행 프로그램 등에 참가하기도 했어요.

독도를 방문한 가브하로이의 모습. 가브하로이의 앞에는 ’대한민국 동쪽 땅끝‘이라고 적힌 동그랗고 커다란 돌이 놓여있다. 긴 생머리의 가브하로이는 돌 뒤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미소지으며 서 있다. 뒤로는 바닷물이 보이고 멀리 독도가 있다.

▲ 독도를 방문한 하로이의 모습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독도를 탐방한 것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울릉도에 방문해서 큰 감명을 받았는데요. 그곳에서 ‘자연 그대로 보존된 살아있는 한국’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또한 한국 문화 체험 외에도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기 위해 ‘기역’과 ‘쌍기역’에 따라 달라지는 발음에 대해 연구하거나, 외래어 표기에 대해서도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영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피플’이나 ‘컨펌’이라는 한글 단어를 보고 당황하기도 했거든요.

이렇게 치열하게 살다 보니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어요. 저는 외국인이고, 가족들은 외국에 있으니까요. 한국어로 된 학과 공부나 시험을 치르는 것도 저에게는 큰 스트레스였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학창시절 고국에서 썼던 저만의 자작시를 읽었어요. 제목은 <괜찮을 거야>고, 시를 짧게 소개하자면 이래요. ‘괜찮을 거야, 이 한마디/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이 한마디/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고 사람에 치여 아파도 세월이 지나 다 괜찮을 거야/ 조금만 버텨봐 다 괜찮을 거야/ 이 한 마디 너무 좋아/ 괜찮을 거야/ 다 지나갈 거야.’ 혹시 제 인터뷰를 읽는 분 중 힘드신 분이 있다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검은 단발머리를 한 가브하로이가 야외에서 검은색 졸업가운을 입고 서 있다. 가브하로이는 미소지으며 몸을 살짝 튼 채 한 손에는 학사모를 들고 있다. 뒤로는 탑처럼 생긴 건물이 보인다.

한글을 배우면서 얻게 된 것은 지식뿐만이 아니에요. 저는 한글과 그 언어에 얽힌 문화를 배우며 저의 사고방식을 확장하고, 더욱 다채로운 가치관을 갖게 됐어요. 예를 들면. 저는 ‘여유를 가지다’라는 말과 의미를 한국에서 처음 배웠어요. 일분일초가 소중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던 저에게 이 단어는 쉼의 시간을 선물해줬죠. 또 ‘정들다’라는 말을 통해 누군가와 교감하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기도 했고요.

사실 저는 지난 2월 대학교를 졸업했고,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의 대학원에 입학해 재무 쪽을 공부할 계획이에요. 아직 제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완벽하게 발견하지 못했기에 이조차도 꿈을 찾는 과정의 일부분인 것 같아요. 한국과는 이렇게 작별하지만, 언제나 제 마음속에는 한글이 있을 거예요. 도전하는 용기와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는 개념, 저는 그것을 한글과 한국에서 배웠거든요. 또한 저를 이만큼 성장하게 만든 것 역시 한글과 한국이 준 기회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디에 있건 한글은 저와 함께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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