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제 98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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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색과 하늘색이 옅게 섞여 있는 배경에 가로로 길게 펼친 「우병침법」이 합성되어있다. 두루마리는 낡고 갈색으로 바랐다. 제일 오른쪽에는 ‘우병침볍이니라’라고 적혀있으며 이후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또한 세로쓰기로 진행되고 있다. 글자는 모두 붓글씨이며 한글로 적혀있다. 내용은 두루마리에 빈틈없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우병침법 주변으로 구름, 꽃 등의 전통문양이 그려져 있다.

소장품 이야기

병든 소를 고치는 신묘한 치료법
「우병침법」

낡고 갈색으로 바랜 긴 두루마리이다. 제일 오른쪽에는 ‘우병침볍이니라’라고 적혀있으며 이후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또한 세로쓰기로 진행되고 있다. 글자는 모두 붓글씨이며 한글로 적혀있다. 내용은 두루마리에 빈틈없이 빼곡하게 적혀있다.▲소장자료 명칭: 우병침법
소장자료 번호: 한구6556
크기: 158.0×16.0cm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 기침을 하면 앓으니, 박속과 술을 달여 먹이되
들기름을 타 먹이라. 만일 기침만 하거든 봉선화를 달여 먹이면 곧 낫느니라.

박속과 술, 들기름, 봉선화.
이들은 자연이나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이들을 약으로 써서 아픈 소가 씻은 듯이 낫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병침법」은 아픈 소를 낫게 할 수 있는 치료법 32가지를 한글로 기록한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입니다. 소의 티눈, 발굽이 붓는 병, 황달, 살이 썩어 고름이 생기는 병, 배가 부풀어 오르는 증상 등을 치료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적혀있습니다.

아픈 소를 치료하는 손쉬운 방법

「우병침법」에서 소개하는 치료법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주로 소의 몸에 침을 놓아 치료하거나, 여러 재료를 달여 약으로 쓰는 방법입니다.

여름과 가을에 별안간 소의 배가 부르고 눈 언저리가 떨리면 청개구리를 먹어 그러한 것이니, 뱀 세 마리를 잡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살이 썩고 고름이 생기는 병에 걸리면 기름과 쑥을 달여 먹이라고 알려줍니다. 소의 배가 팽창하는 증상에는 썩은 돌과 물고기를 달여 먹이고 뿔과 뿔 사이, 두 귀에 침을 놓아 주라고도 하였지요.

이 외에도 소의 증상에 따라 네 발에 침을 깊이 찌르고 물고기를 끓여 먹이는 방법, 지렁이를 먹이거나 호박과 팥, 기장과 조를 달여 먹이는 방법 등을 써 보라 하였습니다.

뱀, 지렁이, 물고기, 기름, 술 등을 약으로 써서 정말 소의 병을 고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치료에 쓰이는 재료를 들여다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소의 병을 고치고 싶을 때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었겠지요. 이 점이 바로 「우병침법」의 특징입니다.

「우병침법」 속 옛 우리말 방언

「우병침법」의 일부 내용. 갈색빛 종이 위에 세로쓰기로 글이 진행되고 있다. 글의 끝부분에 있는 두 개의 ‘ᄒᆞᆫ’ 글자를 주황색 네모로 강조해두었다.

「우병침법」에서는 우리말 방언의 옛 모습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로 경상도 방언입니다. 사진 속의 ‘ᄒᆞᆫ’는 ‘한데(한곳이나 한 군데)’를 뜻하는 경상 방언입니다. ‘우벽’이라는 증상의 치료법을 설명하는 문장에 등장합니다.

이 부분을 현재 우리가 쓰는 말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벽(牛癖)은 떨면 고개를 꾸뻑거리니 부풀어 오를 때 가리마에 침을 한 대 주고 사족에 침을 주고 오줌 버캐와 쑥과 초와 기름장과 너삼과 인동을 한데 달인 후에 술을 한데 타 먹이라.

소가 ‘우벽’에 해당하는 증상을 보일 때는 먼저 소의 머리와 네 발에 침을 놓습니다. 그리고 오줌에 쑥, 초, 기름장, 인동 등을 함께 넣고 달인 후에 이것을 술에 타서 먹이라고 하는군요.

이 외에도 뒷간을 뜻하는 방언인 ‘통시’와 곰보(피부병을 앓은 후 남은 흉터)를 뜻하는 경상 방언인 ‘빡지’도 등장합니다. 「우병침법」을 적은 사람은 경상도 출신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을 치료하는 법을 알려 주는 책들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우병침법」은 수의학서의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수의학 지식을 여러 책으로 남겼습니다. 1399년에 편찬된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 이 대표적입니다. 이 책에는 말과 소에 대한 의학 지식을 수록했습니다. 이 외에도 『마경초집언해(馬經抄集諺解)』, 『신편집성우마의방(新編集成牛馬醫方)』 등이 있습니다.

1541년 봄에는 평안도에서 소 전염병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이때에는 왕의 명령으로 소‧말‧양‧돼지의 전염병 치료법을 모아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牛馬羊猪染疫病治療方)』을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전염병에 걸린 소에게 검은콩을 삶아 먹이거나 품질 좋은 작설차(차나무의 새싹을 따서 만든 전통차)를 갈아 먹이는 치료법 등을 소개하였습니다.

귀중한 소를 위한 「우병침법」

올해는 신축년(辛丑年) 소띠 해입니다. 십이지 중 하나인 소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매우 친숙합니다. 농사를 돕는 든든한 존재이자, 맛 좋고 몸에도 좋은 훌륭한 식재료가 되지요. 뿔과 가죽은 공예품이나 생활용품의 재료로 쓰이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동물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옛날, 우리 집 소가 병이 난다면 정말 눈앞이 캄캄해졌을 겁니다. 당장 소의 도움 없이 논과 밭을 갈아야 하며, 무거운 짐을 나를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없겠지요. 그러한 때에 이 「우병침법」이 요긴하게 쓰였을 것입니다.

「우병침법」을 남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서를 쓴 사람이나 적은 날짜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고, 오직 소를 치료하는 방법만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료를 보며 이름 모를 누군가가 소 치료법을 한글로 정성스레 적는 모습을 상상해봅시다. 가지런히 적힌 이 한글에는 귀중한 소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 듯합니다.

작성자: 윤지현(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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