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와 한글을 사랑해 일본에서 날아온 후지모토 사오리.
그는 방송인으로서는 물론, 우리에게 낯설 수 있는
수어 아티스트라는 직업으로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농인과 청인 사이, 한국과 일본문화 간 가교가 되길 자청하는
그의 열정 어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출연 사진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수어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후지모토 사오리입니다. 반갑습니다. 한국에 온 지는 3년이 됐으며, 최근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FC월드클라쓰(외국인 연합팀)’에 소속되어 등 번호 452번의 공격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2006년에 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해외연수를 통해 한국에 처음 오게 됐어요. 한국의 자매학교 학생들과 교류를 했는데 당시 한국 학생들은 일본어로 열심히 대화하고, 일본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어를 하나도 몰라 정말 부끄러웠죠. 그래서 꼭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또 당시 한국 학생들이 케이팝을 알려주었는데요. 그 매력에 푹 빠져 나중에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일본과 한국의 가교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한국의 예술인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한글과 한국문화를 공부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 및 동계패럴림픽 대회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한 사오리 / 홍보대사 위촉장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대회 및 동계패럴림픽 대회 홍보대사로 활동했는데, 패럴림픽 선수들이 경기에 끝까지 도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저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마침 현장에서 한국 수어를 하는 것을 보았고, 그때 수어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외국인인 제가 한국 수어를 배우면 좀 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국 수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공연팀 ‘한글’
공연팀의 이름인 ‘한글’은 ‘한국문화를 알리는 글로벌 아티스트’의 줄임말입니다. 음악으로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구성된 다국적 외국인 프로젝트 공연팀이며, 2017년 10월 9일 한글날에 KBS라디오 생방송에서 첫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저는 2018년 10월부터 이 팀에 합류했어요. 한글 팀은 음악으로 전 세계 농인·청인 모두와 공감, 소통하기 위해 1절은 한국어, 2절은 자국어로 노래를 부르는데요.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한국 수어로도 함께 공연해요.
한글의 매력은 세종대왕이 백성 모두가 문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이것이 저에게는 아주 큰 매력으로 와닿았습니다. 더불어 한글은 누가 발명했는지, 언제 반포되었는지가 명확하고 이를 기념하는 한글날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글자이며, 이를 더욱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한글은 손글씨를 닮은 필기체가 다양한데요. 외국인 입장에서는 알아보기 어려울 때가 있긴 하지만 디자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욱더 멋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전 공연을 할 때나 의미 있는 날에는 한글이 프린트된 의상을 착용해요.
▲후지모토 사오리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ON’ 수어 영상 캡처본
▲‘ON’ 수어 영상의 섬네일
방탄소년단(BTS)의 노래처럼 철학과 메시지가 담겨있는 음악들을 수어로 창작해서 표현한다면 전 세계 농인과 청인이 함께 노래를 즐기며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특히 방탄소년단의
‘ON’이라는 노래는 어떤 고통과 시련이 와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저에게 딱 맞는 곡이었어요. 이 곡을 첫 영상으로 제작한 건 그 때문입니다.
또한 유튜브 영상 섬네일에 “또 하나의 소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위안을 준다”라는 문구를 표기했는데요. ‘또 하나의 소리’란 농인과 청인이 함께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소리를 말해요. 청인이란 청각 장애를 갖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데요. 농인의 콘텐츠는 시각의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소리가 없고, 소리가 없어서 청인들이 농인 콘텐츠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수어를 바탕으로 음악을 보이게 한다면 전 세계 농인과 청인의 벽을 허물 수 있다고 생각해 제 콘텐츠를 ‘또 하나의 소리’라고 표현했어요.
▲ 574돌 한글날 경축 행사에서 수어 공연을 펼치는 후지모토 사오리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574돌 한글날 경축 행사에 온라인홍보대사로 위촉되었는데요. 생방송으로 진행된 경축 행사의 가상합창단에 수어 아티스트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가상합창단에는 한글 팀과 국악 신동 김태연, 그리고 한글을 사랑하는 전 세계의 116명이 함께 참여했는데요. 88서울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인 ‘손에 손잡고’ 가사를 한국 수어로 재해석하고 창작해 한글로 하나가 된 세계를 표현했어요.
▲‘제14회 서울특별시 수어문화제’에
한글 팀으로 참가해 공연을 펼친
후지모토 사오리
▲‘한마음 걷기 축제’에 참가한 한글 팀
기억에 남는 공연은 ‘제14회 서울특별시 수어문화제’ 초청 공연이에요. 농인들 앞에서 수어로 한글을 보여주는 첫 공연이었는데요. 혹시나 ‘내 역할에 대해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어떤 평가를 할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요. 다행히도 공연을 보신 농인과 청인분들이 춤도 추시고 즐거워하셨어요. 이때 많은 격려를 받고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한다는 말을 들은 게 기억에 남아요.
또한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 홍보대사 활동으로 ‘한마음 걷기 축제’ 공연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3천여 명 앞에서 특별공연을 했을 때가 잊히지 않는데요. 앞자리의 있던 어린 친구가 제가 하는 수어를 따라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제게 공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매우 기뻤고, 감동했습니다.
한글이 히라가나·가타카나와 다른 점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어요. 첫 번째는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나눌 수 있는 음운 문자라는 거예요. 한글은 풀어쓰는 것이 아니라 뭉쳐서 음절을 한 덩어리로 쓸 수 있어서 히라가나·가타카나와 같은 다른 동양권 문자보다 디지털 시대에 사용하기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둘째로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문자 모양이 단순하며 비슷하게 생긴 글자들은 소리가 유사하게 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모양을 보면 소리를 상상할 수 있는데요. 때문에 ‘ㄱ(예사소리)-ㄲ(된소리)-ㅋ(거센소리)’을 처음 봤을 때 소리를 상상할 수 있어서 배우기 쉽다고 느꼈어요.
어떤 문자든지 배우면 그 나라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요. 또 문자를 아는 만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죠. 제가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한글과 한국 수어 모두 제가 인생의 주도권을 가지고 도전하는 삶을 살게 해주는 열쇠인 것 같아요.
▲‘제9회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된
후지모토 사오리의 수어 예술
한글은 과학적이면서 누구나 쉽고 평등하게 쓸 수 있는 문자인데요. 한글은 위대하지만, 그 한글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더 큰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수어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철학과 메시지가 들어 있는 노래를 한국 수어로 재해석할 예정이에요. 또한 가사가 없는 연주곡은 한국어와 한글로 작사하여 전 세계 농인과 청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이처럼 한국어를 형상화하는 일을 통해 한글과 한국 수어를 더욱 널리 알리게 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