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시청하던 한국 드라마에 빠져
한글을 배운 이리나는 이 일을 계기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한 대학생이 되었다.
작은 관심에서 시작한 한글 공부가 그녀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지금은 한국에서 한국학을 심도 있게 배우는 열혈 학도로 키워냈다.
그런 이리나이기에, ‘한글날’은 그 어떤 기념일보다 의미가 깊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그녀의 한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카스첸코 이리나
즈드라브스뜨부이쩨(Здравствуйте)!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저는 러시아에서 온 크라브첸코 이리나라고 합니다. ‘즈드라브스뜨부이쩨’는 러시아에서 처음 만나는 분들께 건네는 인사말이랍니다. 저는 모스크바에서 자랐지만, ‘칼미크kalmyk)’라는 소수민족으로, 약 400년 전 몽골에서 이주한 분들의 후예랍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고등학생 무렵에 《꽃보다 남자》를 시청하며 처음 한글을 알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글자보다 한국어의 부드러운 어감에 호감을 느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 알고 싶어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한글 자음과 모음을 익히고 쓰는 것은 매우 쉬운 편입니다. 하지만 맞춤법이나 발음 등 깊게 들어가면 독학으로 배우는 데 한계가 있기에 결국 과외를 받게 되었죠. 한글을 접했을 때, ‘어쩜 이렇게 귀여운 모양의 글자가 있지?’라고 생각했어요. 동그랗고 네모난 모양의 자음들이 마치 수학 기호나 도형처럼 느껴졌거든요. 이렇게 한글 공부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며 제 인생과 한글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어요.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한 후, 짧게 사회생활을 했지만, 저에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어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갔죠. 바로, 한국학 석사과정을 시작한 것이었어요. 이왕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김에 한국에서 제대로 하고 싶었고, 한국학중앙연구소에 지원을 했어요. 석사 때 어떤 논물을 쓸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등 포부를 담은 한글 에세이도 작성했고, 면접도 한국어로 진행했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빛나는 합격통지서와 함께 2019년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답니다.
러시아에서 몇 년 동안 한글을 배우고 익혔지만, 현지에서 직접 접하는 언어는 확실히 달랐어요. 제 고국에서 한글을 배울 땐 그 설명을 러시아어로 듣지만,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한글 수업을 하잖아요. 처음엔 따라가기 벅찼지만, ‘악바리 근성’으로 공부에 전념했죠. 그 과정에서 ‘리을(ㄹ)’이 가진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리을은 알파벳의 R과 L의 발음을 모두 포함하는 글자잖아요. 러시아어에서 R과 L은 전혀 다른 발음으로 표현되어서 특히 신기했어요.
참, 이제 곧 한글날인 10월 9일이잖아요. 문자가 만들어진 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참 뜻깊다고 생각해요. 특히 세종대왕은 백성을 가엾게 여겨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들었어요. 누구나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쉽게 따라 쓰고 익히는 것도 백성들의 편리성을 위해서라니, 세종대왕의 마음 씀씀이에 큰 감명을 받기도 했죠. 그 위대한 정신과 그 나라 고유의 글자, 그 역사를 기념하는 날이 있다는 것은 보기 드문 문화인 것 같아요. 러시아에는 딱히 문자를 기념하는 날이 없고, 만약 있다고 해도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편이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한글날과 한글에 더 큰 관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이날을 더 널리 알렸으면 해요.
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셔서 알겠지만, 제 좌우명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랍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정말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저는 한국어, 러시아어, 영어 등 저의 언어 능력을 지속해서 가다듬고 기록하고 있어요. 저의 특기이자 장기인 언어를 활용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요. 저의 인터뷰를 보는 여러분들도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글로 적어보며 미래를 계획해보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