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제 100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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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배경에 꽃과 잎사귀가 피어 있다. 배경 가운데에는 소장품 ‘화전가’와 ‘불우헌집’ 사진이 놓여있다. 화전가는 긴 두루마리 형태로 한글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불우헌집은 누렇게 바란 책으로 양쪽 가득 한글과 한자가 섞여 세로쓰기 되어있다. 연두색 배경에 꽃과 잎사귀가 피어 있다. 배경 가운데에는 소장품 ‘화전가’와 ‘불우헌집’ 사진이 놓여있다. 화전가는 긴 두루마리 형태로 한글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불우헌집은 누렇게 바란 책으로 양쪽 가득 한글과 한자가 섞여 세로쓰기 되어있다.

소장품 이야기

남성과 여성이 그린 봄의 노래
이상적인 「상춘곡」, 현실적인 「화전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겨울 추위를 보내며 가장 그리워하는 건 따스한 바람이 부는
봄날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과거 조선시대에서도 이런 마음은 같았는데요.
시대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부르는 봄의 노래는 서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노래한 여성의 「화전가」, 이상적인 세계를 표현한 남성의 「상춘곡」이
그 예인데요. 국립한글박물관의 두 가지 소장품을 함께 살펴볼까요?

여성들의 현실적인 봄노래 「화전가」

넓은 쟁반에 화전이 가득 채워져 있다. 노란색, 흰색, 분홍색 알록달록한 작은 원 모양 전 위에 여러 가지 꽃이 올려져 있다. 뒤로는 다른 다과를 담은 찬합이 보인다. 꽃이 핀 들판에 넓은 바위가 놓여있다. 바위 위에는 비빔밥, 배, 김치 등의 음식이 놓여있으며 그 가운데 분홍색 꽃으로 장식된 화전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화전가」는 일 년에 한 번 양반집 부녀자들이 화전놀이를 즐기는 현장에서 또는 화전놀이를 한 후 느낀 감회를 적은 내방가사(규방가사라는 용어로도 사용)입니다. 노랫말 속에 펼쳐지는 ‘화전놀이’는 날씨가 좋은 봄날, 같은 마을 부녀자들이나 일가의 부녀자들이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 찹쌀가루를 반죽 위에 꽃잎을 올려 만든 화전(花煎)을 먹으며 즐기던 놀이입니다.

여성들은 준비해 간 음식과 화전을 함께 나누면서 「화전가」를 지어 낭송했는데요. 수줍음으로 운을 띄우지 못할 때면 누군가의 격려 속에 한 사람씩 나서서 자기만의 「화전가」를 뽐냈다고 합니다. 서러운 시집살이나 과부가 된 사연 등을 읊을 때는 구구절절 공감되는 사연에 함께 흐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박수로 분위기를 띄워 주기도 했습니다. 화전놀이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화전가」를 짓기도 했는데요. 놀이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들, 하루를 즐기는 모습,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집에 도착하고 하루를 돌아보는 전체를 노랫말로 표현했습니다.

‘불우헌집’ 사진.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책은 갈색으로 빛이 바랬다. 양쪽 모두 세로칸 가득 한자와 한글이 섞여 적혀있다.

일년일차 이모임 마음인양 못들소냐 / 남여분명 달나셔도 심중소회 일반이라
/ 여보소 벗님네야 이뇌말삼 들어보소 / 젹막심규 깁흔속에 셔러담은 하소연을
/ 노래가사 지엇거든 이자리에 하소하세 / 좌즁이 하는말슴 그대답 박수친다
/ 어느부인 남먼저 나셔던되 / 흣튼머리 소복에는 얼굴도 서면하다
/ 품속에 화전가사 양수로 바쳐들고 / 좌중을 다시향해 절한번 구진후에
/ 낭낭한 목소리로 긴가사 낭독하니 / 난중에 남편잃고 독수공방 셔른사정
/ 마듸마듸 젹은지라 좌석을 다 울인다 / 마음약한 부인네는 소리내어 느끼난데
/ 그소래 긋치나니 만장박수 일어난다…

출처 : 문화콘텐츠 원천으로서 <화전가>의 가능성(백순철, 한국시가문화학회, 2014년 8월)
경북 안동 화전가(창작시기 미상)

남성들의 이상적인 봄노래 「상춘곡」

‘화전가’ 사진. 긴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다. 두루마리는 낡았으며 곳곳이 갈색으로 물들었다. 두루마리 가득 한글이 세로쓰기 되어있다. 제일 오른쪽에는 제목인 ‘화전가’가 적혀있다.

엇그제 겨을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 桃花杏花(도화행화)ᄂᆞᆫ 夕陽裏(석양리)예 퓌여 잇고, 綠楊芳草(녹양 방초)ᄂᆞᆫ 細雨中(세우 중)에 프르도다. 칼로 ᄆᆞᆯ아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ᄉᆞ롭다. 수풀에 우ᄂᆞᆫ 새ᄂᆞᆫ 춘기(春氣)ᄅᆞᆯ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복숭아꽃, 살구꽃은 석양에 피어 있고, 푸른 버들과 향기로운 풀은 가랑비 속에 푸르도다. 칼로 재단해서 만들었는가. 붓으로 그려냈는가. 조물주의 신령스러운 솜씨가 온갖 사물마다 야단스럽다. 수풀에서 우는 새는 봄기운을 이기지 못해, 소리마다 아양을 부리는구나.(현대어 해석)

상춘곡(賞春曲), 불우헌집 권1, 2(교서관인서체자, 1786년 추정)

드넓은 꽃밭이 펼쳐져 있다. 노란색 꽃으로 가득 찬 꽃밭 가운데 길이 나 있다. 꽃밭 저 멀리에 무성하고 푸른 나무들이 빼곡하게 서 있다. 그 위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상춘곡」은 조선 성종 1년(1469)에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이 창작했습니다. ‘상춘(賞春)’은 말 그대로 봄을 맞아 경치를 구경하며 즐긴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이처럼 「상춘곡」은 봄을 즐기는 노래입니다. 문과에 급제한 정극인은 벼슬을 살았는데요. 1453년 수양대군에게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정극인은 관직에서 물러나고 낙향해 후진을 양성하면서 어느 봄날을 「상춘곡」으로 노래했습니다.

단순히 봄뿐만 아니라 「상춘곡」은 정치 현실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자신도 자연의 섭리에 수긍하며 이를 온전하게 보고, 느끼고, 함께한다는 시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사로움 없이 흥취가 있는 곳, 무릉도원과 대동사회의 이념을 「상춘곡」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작가 확실한 남성가사, 여성이 작가인 내방가사

남성의 봄노래와 여성의 봄노래가 표현하고자 했던 세계가 달랐던 것처럼 작자성도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여성들이 지은 내방가사의 작가가 확실한 경우는 소수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죠. 대다수의 작품들이 작자가 미상이지만 누가 읽어도 여성의 삶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딸을 가르치는 근엄한 어머니의 목소리, 자식의 입신양명에 기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 남편을 잃어서 슬퍼하는 아내의 목소리 등 실로 다양한 여성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여성만이 경험하고 느끼는 삶과 감정이 그대로 녹아나는 내방가사. 박물관에서 선보일 기획전시에서 함께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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