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을 한글디자인 연구에 바친 최명범 디자이너는
6세 아이부터 80세 노인까지 모두 쉽게 배울 수 있는 악필 교정 방법을 개발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앞으로도 계속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며
그가 가진 재능으로 세상에 유익함을 전달하고 싶다는 최명범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안녕하세요. 한글 디자이너 최명범입니다. 한박웃음 독자분들과 만나게 되어서 굉장히 반갑고 행복합니다. 저는 중학생 때 서예에 입문하여 올해로 44년째 글씨 쓰는 일을 하는 한글 디자이너입니다. ‘서예가’란 단어보다 ‘디자이너’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단순히 글자를 쓰기보다 새로운 글씨체와 글씨 쓰는 방법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인데요. 자랑스러운 한글디자인을 세계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이 일을 30년 넘게 하고 있답니다.
37년 전에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유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나는 어떻게 세상에 유익함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그 결과 내가 가장 잘하는 글씨 쓰기를 떠올렸고, 이후 15년간은 필기구의 활용법에 관해 연구했어요. 정통 서예도 아름답긴 하지만 붓과 먹물, 화선지, 벼루 등 소지하기 어려운 소품들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필기구들로 대체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글씨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2000년 초에 고시 학원에서 악필 교정 강의를 제안받으면서 논술에 필요한 글씨체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기존에 연구하던 필기구 사용법과 논술에 필요한 글씨체, 컴퓨터 세대를 위한 손글씨 학습법을 고민하며 한글 자체에 숨겨진 과학적 메커니즘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죠.
2003년쯤부터 한글의 과학적인 메커니즘에 고딕계열의 필기체 편집법을 접목해서 누구나 쉽고 빠르게 악필을 교정하는 방법을 완성했습니다.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고 대형백화점 문화센터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일반에 보급하기 시작했죠.
저는 한글을 이해하면 악필은 자연스럽게 교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악필 교정법은 14개의 자음을 단순하게 디자인한 뒤 패턴화하여 익히는 방법인데요. 악필은 대부분 글씨를 쓸 때마다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알아보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우선 바르고 일관된 글씨를 위해 어느 위치에서나 형태가 변하지 않도록 최적화된 모양으로 단순화합니다.
그 뒤 유사 디자인으로 패턴화해 서로 어울리게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역이면 기역으로부터 키읔, 지읒, 치을 파생시켜 유사한 디자인으로 만드는 것이죠. 한글 자음을 유사한 패턴으로 서로 어울리게 하여야 배우는 과정이 더 쉬워집니다. 모음 또한 단순화해 자음과 모음을 일정한 비율로 조립합니다. 이때 모음은 최대한 쓰기 쉽게 수평과 수직, 점만 활용해요. 결국, 자음만 연습하고 모음은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글자를 단순화, 패턴화해서 만든 방법을 대중에게 가르치며 보완했더니, 10년쯤 뒤에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 교정법으로 탄생했습니다. 여기에는 오랜 서예 경력과 디자이너를 하면서 생긴 가치관도 한몫했던 것 같네요.
목표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왜 글씨를 잘 써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두 번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아는 것입니다. 노력한다고 해서 다 성취하는 것은 아니기에 학생에게 다양한 문제와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교사가 필요합니다.
덧붙여 글씨의 본질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필기체의 본질은 ‘쌍방소통’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쉽게 배우고 익혀서 쓸 수 있으면서 가독성 있고 깔끔하게 읽혀야 잘 쓴 글씨라고 할 수 있죠. 반면 궁서체는 예를 갖추는 글씨로 더 효용 가치가 높아요.
마지막으로 연습을 효율적으로 해야 합니다. 글씨 공부를 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하죠. 이 세 가지가 필수이며 여기에 필기구가 선택지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글씨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캘리그래피인데요. 캘리그래피는 서예를 바탕으로 하고, 서예는 미술의 한 장르입니다. 미술은 점, 선, 면, 색을 활용해요. 하지만 일반 손글씨, 즉 필기체는 점 혹은 면, 색 등을 불필요하게 많이 쓰는 것보단 간략하게 선만 써서 글씨를 일정하고 깔끔하게, 또 서로 어울리게 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종종 캘리그래피를 배우면 악필 교정에 도움이 되느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저는 악필 교정을 할 때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캘리그래피는 글씨를 아름답고 멋지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만, 악필 교정은 의사소통이 주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법칙, 단순한 획, 익히기 쉬운 모양, 문장으로 조립했을 때의 전달력인 가독성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한글 본연의 아름다움과 과학적인 체계를 연구해왔어요. 한글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종 누리소통망을 활용하고, 코로나19 상황 이전에는 오프라인에서 강의하거나 버스킹 등을 했는데요.
사실 저는 대의적인 측면에서 한글을 바라봤어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한글’을 생각했죠. 요즘 유행하는 K-팝(pop), K-무비(movie), K-뷰티(beauty) 등은 한때의 유행이며, 한글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한국의 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한글의 매력을 세계인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수없이 새로운 형태의 한글디자인을 만들고, 내외국인 모두 공감할 합리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어요.
저는 37년째 한글디자인을 연구하고 있고, 이제는 뜻을 같이하는 많은 젊은 한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으로서 그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또한, 한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한글을 통해 유익함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한글은 ‘삶’ 그 자체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제일 잘하는 것이기에 이 일을 시작했지만 같은 뜻을 가진 동료를 만나고, 수십 년을 지속하다 보니 ‘한글’은 이제 저와 운명을 같이 할 가족 같은 이름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처럼 제 연구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한글은 국어와 다릅니다. 국어는 언어이지만 한글은 문자이지요. 즉 한국인의 말을 눈에 보이도록 표기하는 수단인데요. 우리의 자랑스러운 말과 글, 문화까지 세계에 전달할 한글이 앞으로도 빛을 발하길 기대합니다. 한글을 사랑해 주시고, 건강하셔서 고난 가운데 꽃을 피우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글 파이팅!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