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청구영언』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시조집 『청구영언』은 『해동가요』, 『가곡원류』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노래집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요.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천택의 『청구영언』은 어떤 모습인지 함께 살펴보시죠.
『청구영언』의 의미
▲『청구영언』
작자: 김천택 / 시대: 1728년 / 크기: 18.0 x 26.5cm
‘청구(靑丘)’란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져 온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영언(永言)’은 노래를 뜻하는 단어로, 즉 ‘청구영언’은 ‘우리나라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제목처럼 『청구영언』은 시조를 전문으로 노래하던 가객 김천택이
1728년 시조 580여 수를 엮어 편찬한 시조집이랍니다.
구성
▲ 『청구영언』 「열성어제」 중 「본조」 내용 일부
김천택은 자신의 작품과 개인 문집에 수록된 시가는 물론
1~2수씩 구전되던 노랫말도 모아 『청구영언』으로 엮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을 옛날 노래로 인식되던 중대엽 계열과 당대 노래인 삭대엽 계열,
그리고 이 두 계열과는 다른 감성의 낙시조, 만횡청류 등으로 분류했는데요.
그중 가장 널리 불렸던 이삭대엽 노랫말은 다시 작가 유무에 따라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누고,
유명씨 작품은 시대 및 작가들의 신분에 따라 구분했답니다.
‘하여가’와 ‘단심가’
▲『청구영언』
「열성어제」 태종 216번 노랫말
▲ 『청구영언』
「여말」 정몽주 8번 노랫말
『청구영언』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옛시조들이 많이 실려있습니다.
특히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도 볼 수 있는데요.
두 시조 모두 한글과 한자가 혼용되어 기록되었고,
이를 통해 당시 한글 가사가 대중에게 친숙하고 쉽게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구영언』의 보존
▲ 배접으로 인해 두꺼워진 『청구영언』
국립한글박물관은 2013년 『청구영언』을 입수했습니다.
당시 이 자료는 본문이 모두 종이를 덧붙인 배접이 되어있어 전체적으로 두꺼워져 있었습니다.
더불어 배접 시 사용된 풀로 인해 종이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종이가 딱딱해지거나 산화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게다가 표지와 책실도 당시 조선시대에서 사용되던 재료와는 다른 것이어서 교체해야 했습니다.
복원 과정
▲ 클리닝
▲ 배접지 제거
▲ 결손 보강
▲ 장책
복원을 위해서 먼저 표지와 내지를 해체하고,
얼룩과 오염을 제거하는 클리닝 작업과 배접지 제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후 종이의 질을 조사한 뒤 종류, 두께, 강도, 색 등이 가장 비슷한 종이를 선별해
찢어진 부분 등 손상이 있는 곳을 보강했습니다.
표지와 책실은 조선시대 고서와 노래집을 조사해 복원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제목을 복원 전 표지에 적혀있던 ‘靑邱永言’이 아닌 ‘靑丘永言’으로 수정했습니다.
진본 확인
▲『청구영언』 서문에 찍힌 김천택의 호 ‘남파거사’ 인장 판독 과정
문화재가 진본인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로 ‘인장’이 있습니다.
『청구영언』의 서문에는 김천택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장이 찍혀있었으나 매우 흐려진 상태였는데요.
국립한글박물관은 비파괴 이미지 프로세싱 과정을 통한 화상분석으로
이것이 김천택의 인장임을 명확하게 판독했답니다.
▲ 『청구영언 김천택 편, 영인편』(왼쪽), 『청구영언 김천택 편, 주해편』(오른쪽)
『청구영언』은 현전하는 170여 종의 노래집 중에서 편찬 시기가 가장 빠르며
분류와 편집 방식이 체계적이어서 후대의 노래집 편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더불어 한글서예, 국문학, 국악 등 여러 방면에서 귀중한 자료라는 의의가 있는데요.
『청구영언』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면 국립한글박물관이 발간한
『청구영언 김천택 편, 영인편』, 『청구영언 김천택 편, 주해편』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