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07호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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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림 서체로 꾸며진 반원형 유리를 배경으로 조규형 디자이너의 사진이 합성되어 있다. 커다란 반원형 창문에 여러 모양의 한글 그림 서체들이 장식되어 있다. 서체들은 모자를 쓰고 서 있는 사람, 외계인, 눈이 달린 니은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이다. 창문으로는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 조규형 디자이너는 짙은 파란색 셔츠에 회색 재킷을 걸치고 있다. 한글 그림 서체로 꾸며진 반원형 유리를 배경으로 조규형 디자이너의 사진이 합성되어 있다. 커다란 반원형 창문에 여러 모양의 한글 그림 서체들이 장식되어 있다. 서체들은 모자를 쓰고 서 있는 사람, 외계인, 눈이 달린 니은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이다. 창문으로는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 조규형 디자이너는 짙은 파란색 셔츠에 회색 재킷을 걸치고 있다.

반갑습니다 그림 서체로 한글의 끝없는
조형적 가능성을 발견하다
디자이너 조규형

그림이 서체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한글 서체에 이야기를 담는다면, 어떤 서사가 될 수 있을까?
평소 우리가 생각하는 ‘서체’의 고정관념을 깨고
이처럼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 나가는 조규형 디자이너.
그가 바라보는 한글 서체는 어떤 변신 가능성을 가졌는지 들어본다.


Q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조규형입니다. 현재 부인 최정유 디자이너와 함께 ‘studio-word(스튜디오 워드)’를 운영하고 있고, 제품·공예·가구·공간·직물 등 디자인 전반에 걸쳐서 활동하고 있어요.

Q

여러 작품이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그림 서체’에 더욱 눈길이 갑니다. 2011년 스웨덴 콘스트팍(Konstfack)에서 디자인한 그림 서체 작품은 <월페이퍼(Wallpaper)>에 게재되었고, 게임 회사와 게임 이야기를 담은 그림 서체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림 서체’란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A

그림 서체는 제가 콘스트팍이라는 예술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진행한 프로젝트인데요. 작업 주제로 사람이 아닌 대상과 협업하는 ‘언위팅 콜라보레이터(Unwitting Collaborator)’를 선택했어요. 사물, 바람, 날씨, 온도 등과 협업을 하는 굉장히 실험적인 작업이죠. 그중 석사 최종 발표 작업에 제가 협업자로 초청한 것이 바로 ‘문자’였어요. 제가 문자에게 질문하고 답변도 들으면서 문자가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프로젝트였죠.

문자를 디자인하려면 판독성과 가독성을 갖추기 위해 일정한 규칙을 지켜야 해요. 그러려면 문자를 보이지 않는 일정한 칸 안에 가둬야 하거든요. 그렇게 디자인했더니 문자가 너무 답답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문자의 기원부터 들어가 봤어요. 상형 문자 이전에 동굴 벽화 시대까지요. 저는 그것도 일종의 문자라고 해석했거든요. 그걸 그린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지만 문자에 대한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해요. 읽는 사람이 상상해야 하죠. 이런 것들을 통해 문자 스스로 이야기를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규형 디자이너가 작업한 그림 서체. 사람, 태양, 눈 등 다채로운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 서체

사람, 태양, 눈 등의 그림들이 강한 바람을 맞아 날아갈 듯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바람을 활용해 이탤릭 서체의 기울기를 표현한 그림 서체

한 외국인 아이가 연한 베이지색 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있다. 담요 사이로 살짝 보이는 아이는 미소를 짓고 있다. 담요에는 갈색의 그림 서체들이 두서없이 새겨져 있다.▲삐삐롱 스타킹 노래를 그림 서체로 새겨넣은 담요

그래서 첫 번째로 동굴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 형식을 갖춘 문자를 디자인했어요. 문자의 가독성을 낮추고 모호성을 늘리는 작업을 했죠. 그리고 문자를 인터뷰하니 ‘나는 가독성이 없어서 사람들이 날 찾지 않아’라는 거예요. 이에 스웨덴에서 만난 한 아이의 담요에 아이가 좋아하는 삐삐롱 스타킹 노래를 그림 서체로 디자인해서 제작해주었어요. 이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늘 덮고 잘 수 있게 되었죠.

이후에 ‘지오메트리(Geometry) 서체’라는 걸 개발했어요. 심볼형 문자를 조사했을 때 심볼들이 서로 붙으면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심볼들이 마구 결합하는 문자를 만들어서 새로운 의미를 계속 재생산하고 싶었어요. 스웨덴에 계신 작가 선생님이 좋아하는 소설 부분을 이 서체로 디자인한 후 스카프에 프린트해 선물로 드렸죠. 이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입고 다닐 수 있게 된 거예요.

빨간색, 초록색, 하늘색, 파란색 등 수많은 색의 꽃들이 마구 얽혀 커다란 벽에 설치되어 있다. 그 앞에는 짧은 머리를 한 외국인 여성이 서 있다.▲꽃 서체 ‘가든’으로 제작된 벽지

마지막으로 ‘가든(Garden)’이라는 꽃 서체를 만들었는데요. 동굴 벽화 이전에 자연만 존재하던 때의 모습을 담은 문자를 떠올렸죠. 스웨덴에 제게 프린팅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사별한 남편이 남긴 편지를 꽃 서체로 옮겨 벽지로 만들었죠. 그래서 그 선생님은 사랑하는 남편의 편지 안에서 살 수 있게 됐어요.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서랍 깊숙한 곳에만 있던 내용이었는데, 읽힐 수 없는 서체로 만들어지니까 벽에 크게 적용할 수 있었던 거죠.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 워낙 새로운 주제여서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Q

2015년에는 ‘한글’을 주제로 한 전시 <조규형: 그림 서체 - 키보드 장단에 변신하는 한글>을 통해 여러 이야기가 담긴 한글 그림 서체를 공개했습니다. 당시 전시 이야기와 함께, 전시주제로 한글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대림 미술관에서 그림 서체 전시 요청을 했는데요. 기존 그림의 다른 종류를 만드는 작업은 제게 새로운 도전이 아니므로 즐겁게 작업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떠올린 것이 ‘한글 그림 서체’에요. 한글 서체는 모아쓰기 때문에 음절을 다 디자인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2,350자를 개발해야 해요. 그걸 그림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큰 난관이었지만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이 작업도 전시가 끝나고 나면 서랍에 들어가 잊힐 테니 만드는 김에 많이 개발하기로 마음먹었어요. 100가지 형태로 만들어 보자고 목표를 잡았죠. 더 나아가서는 시간의 개념도 넣어 공연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글과 만드는 연극’을 기획했고 이것이 ‘키보드 장단에 춤을 추는 한글’이 된 거죠.

커다란 반원형 창문에 여러 모양의 한글 그림 서체들이 장식되어 있다. 서체들은 모자를 쓰고 서 있는 사람, 외계인, 눈이 달린 니은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이다. 창문으로는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 ▲창문에 장식된 한글 그림 서체

관람객이 타자를 누르는 대로 모니터에 그림 서체가 출력되고 있다. 그림 서체는 검은 바탕에 형광 녹색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발자국, 사람, 고양이 등 다양한 모양으로 조합되어 있다. ▲자판을 누르자 화면에 나타나는 그림 서체들

공연하려면 배우와 무대 의상이 필요하잖아요. 그걸 생각하며 그림 서체를 개발했어요. 알콩달콩 역할을 맡은 서체 외에 스멀스멀 역할, 수상한 역할, 유령 역할 등 각자에게 알맞게 서체를 만들었죠. 그 외에 시인 이상의 남은 기록을 활용해 그림 서체를 만들기도 했고요. 또한, 사람들이 얼마나 반복해서 타자를 누르느냐에 따라 모습이 계속 바뀌게 했어요. 자판을 누르고 뗄 때 그 속도와 시간에 따라 선택된 문자가 기록되는 거죠.

길고 넓은 전시장 공간에 100개의 한글 그림 서체 책이 나란히 매달려 있다. 책들은 각자의 서체를 담고 있으며 주황색, 노란색, 분홍색 등 책마다 다른 색과 디자인의 표지가 있다. ▲<조규형: 그림 서체 - 키보드 장단에 변신하는 한글>에 전시된 100개의 책

당시에 100개의 책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문자 표본들을 실었어요. 사람들은 전시에서 직접 자판을 칠 수도 있었고요. 전시 공간 안에 그림 서체 캐릭터들을 곳곳에 두었죠. 한글을 그림으로 표현해 변신시키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고 가지고 놀 수 있다는 점이 기존의 그림 서체 작업과는 다른 점 같아요.

Q

이런 작업 과정에서 느낀 한글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A

한글은 모아쓰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음 다음에 어떤 모음이 붙느냐에 따라서 자음의 모양이 변형되죠. 그래서 다른 문자에 비해 한글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모아쓰기와 가변성이에요. 또 알파벳보다 한글은 모양이 단순한 편이고 곡선도 적게 사용돼요. 물론 기역처럼 때에 따라 곡선이 들어갈 순 있지만, 대부분이 직선으로 이뤄져 있죠.

한글은 조형적 특징이 워낙 단순한 기초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언어를 접목하기에 좋아요. 예를 들어 시옷은 선이 두 개가 만나서 만들어지지만, 삼각형·원뿔·점 세 개도 시옷이 될 수 있고 코를 그려서 시옷을 표현하기도 했죠. 알파벳 에이처럼 보이게 하려면 모양을 많이 만져야 하는데, 시옷은 밑이 넓고 위는 좁기만 하면 돼서 더 다양한 디자인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실험프로젝트 <한글디자인: 형태의 전환>을 진행하며 꾸준히 한글 조형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데요. 작가님이 디자이너로서 바라보는 한글은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나요?

A

타자로 구현하는 서체들은 많아지고 있는데 그에 비해 직접 한글을 만날 기회는 줄어든 것 같아요. 한글을 처음 배울 땐 재미있는 놀이를 활용하는데, 한글을 깨우친 후에는 그냥 읽기만 하죠.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한글을 직접 쓰고 만들고 즐기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님은 1445년에 만들어진 한글을 ‘어린 문자’라고 하시거든요. 어린 문자인 한글이 잘 자라려면 밥뿐만 아니라 영양제도 먹고 운동도 해야 하죠. 그러려면 서체 디자이너가 주는 밥 말고도 다른 사람들과 ‘노는 음식’도 먹어야 해요.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풍부하게 성장하려면 여러 가지 실험이 접목돼야 하는 거죠. 디자이너들이 전문적으로 접근해도 되지만 일반인들이 함께 참여할 방법을 제안해줘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Q

현재 진행하고 계신 작업 또는 계획하고 있으신 작업 중 한글을 활용한 작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2010년도에 <Hangul sculpture(한글 스컬프처)>라는 작품을 작업했는데요. 최근에 이 작품을 상업공간에 크게 설치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지금 모습에서 조금 변화를 주어 올해 말 혹은 내년 초 사이에 4미터 정도의 크기로 설치할 예정입니다.

치읓 모양의 조형물이다. 다만 위의 획이 원형으로 표현됐다. 조형물은 검은색으로 이루어져있다. 개의 옆모습처럼 보이는 조형물이다. 사각형을 조합해 만든 모양이며 꼬리 끝부분은 동그란 원형으로 표현되었다. 색은 검은색이다. ▲<Hangul sculpture(한글 스컬프처)>

Q

작가님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한글은 디자인적으로 봤을 때 만들어진 이유, 만드는 방법 등에서 배울 점이 아주 많아요. 한글 자체도 매우 아름답고 기능적으로 훌륭하지만,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그 마음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훈민정음』 서문을 보면 세종대왕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이 말은 백성들을 섬세하게 관찰해 그들의 문제를 분석하고, 불편함을 개선하여 그들을 편하게 해주고자 문자를 만들었다는 뜻이잖아요. 디자인도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래픽·가구·제품 등을 섬세하게 관찰한 뒤 사용자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요. 변화를 주거나 확장할 수 있으면서,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시스템적으로 완벽한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하죠. 바로 한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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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