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09호 2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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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배경 위에 커다란 영화 필름 그림이 놓여있다. 영화 필름 그림 위에 영화 <한산: 용의 출현>과 <모가디슈>의 사진이 합성되어 있다. 사진 주변은 확성기, 영사기, 팝콘, 영화표, 구름 등으로 꾸며져 있다. <한산: 용의 출현>은 조선시대 갑옷을 입고 수염을 기른 남성이 비장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고 있는 장면이며, <모가디슈>는 어두운 공간에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남성이 지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면이다.

매체 속 한글 쏙쏙 한국 영화에 등장한 한글 자막 크게 변화한 극장가 한글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 다국어 자막이 지원되는 글로벌 OTT의 영향으로 한국 작품을 볼 때 한글 자막을 켜고
보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자막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배우들의 대사 전달과 상황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높이 산다. 출퇴근길의 대중교통 등
영상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분위기에서 콘텐츠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영화관 스크린에서도 완성도를 위해 일부 장면에 자막을 삽입하는
한국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해 눈길을 끈다. 더욱이 외화에서도 자막을 제2의 주인공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등 ‘한글 자막’에 대한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주요 장면에 등장해 극의 몰입도를 높인 ‘한글 자막’

<한산: 용의 출현> 장면 중 일부. 조선시대 갑옷을 입고 수염을 기른 남성이 비장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고 있다. ▲ <한산: 용의 출현> 한글 자막 사용 영상
(출처: <한산: 용의 출현> 예고편)

<모가디슈> 장면 중 일부. 어두운 공간에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남성이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 <모가디슈> 한글 자막 사용 영상
(출처: <모가디슈> 예고편)

자막이란 영화나 TV 프로그램 등에서 관객이나 시청자가 읽을 수 있도록 화면에 삽입한 글자를 뜻한다. 보통 외화에서 많이 활용되지만 한국 영화에서, 그것도 조선의 영웅 이순신을 다룬 영화에서 한글 자막이 등장해 화제를 낳았다. 바로 <한산: 용의 출현>에서 중후반 51분 해상 전투 신의 대사가 모두 자막 처리된 것이다.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이 “준비시켜 놓은 나머지 배들도 내보내거라”라는 등의 대사를 할 때면 스크린 아래에 한글 자막이 등장했고, 전쟁 신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자막은 사라졌다.

한산을 제작한 김한민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쟁의 밀도감(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에 대한 느낌)을 높이려면 사운드의 힘이 필요한데 대사를 잘 전달하려면 사운드를 눌러버려야 했다”면서 “<명량> 개봉 당시 명량대첩 신에서 배우들의 대사가 무슨 말인지 안 들린다는 원망도 듣기 싫었고 또한 전쟁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한글 자막을 넣는) 용기를 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전투 장면에서 몰입이 깨지지 않도록 사운드를 키우면서도 등장인물의 대사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한글 자막을 넣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역시 북한 캐릭터의 대사에 자막을 입혔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남북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영화이다. 류승완 감독이 북한 대사에 자막을 넣은 것은 관객들이 북한 말의 억양이나 단어를 불편함 없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에서 더 나아가, 남한의 젊은 세대들이 이제 북한을 다른 나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담아냈다. 북한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시대상과 대사의 전달력 두 가지 의도를 전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극장에서 한글 자막을 본 관객들은 아직 어색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대사 전달을 원활하게 하려는 감독의 세심함이 느껴진다는 호평이 자자하다. 장면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면서도 자막을 통해 배우의 대사를 놓치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외화 속 높아진 ‘한글 자막’의 위상

영화 <탑건: 매버릭> 장면 중 일부. 짙은 녹색 공군 옷을 입은 배우 톰 크루즈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오고 있다. 한 손에는 헬멧을 들고 있다. 그의 뒤로는 지상에 착륙해있는 전투기가 보인다. ▲ <탑건: 매버릭> 스틸컷
(출처: <탑건: 매버릭> 누리집)
이 밖에도 과거 외국 대사를 단순히 번안하는 것에서 그쳤던 외국 영화의 한글 자막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끈 <탑건: 매버릭>이 그중 하나이다. 상위 1% 해군 전투기 파일럿들의 비행 스쿨 이야기를 다룬 만큼, 영화에는 전문적인 용어와 미국 군사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영화 배급사는 이 같은 요소들이 한국 관람객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도록 자막 제작 준비에 만전을 가했다. 항공대 교수부터 군사 전문기자, 22년 비행 경력의 전투기 조종사 출신 유튜버까지 섭외해 자막 감수를 특별히 진행한 것이다. 이들은 전문적인 비행 장치, 비행 제어 등의 지식과 용어를 자막으로 풀어내는 데 힘을 보탰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장면 중 일부.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이루어진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배우가 어두운 공간에서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다. 그는 스파이더맨 복면을 벗어 한 손에 들고 있다. ▲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스틸컷
(출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누리집)
이처럼 외화 영화를 감상할 때 한글 자막이 재미에 큰 요소를 차지하며 ‘번역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중 황석희 번역가는 전 세계적으로 큰 팬덤을 거느린 ‘마블 코믹스’의 굵직한 영화들을 담당하며 영화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 때론 진지하고, 때론 유머러스한 스파이더맨의 면모를 한글로 제대로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육감이 발달한 스파이더맨의 ‘peter tingle’(피터 팅글)이라는 대사를 ‘피터 찌리릿’으로 번역한 것에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황석희 번역가는 외화에서 한글 자막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다 보니 상황, 인물, 감정 등을 고려해 적절한 단어를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거 한글 자막은 외국 만화나 영화 등 주인공의 대사를 전하는 수단 정도라고 여겼지만, 현재에는 우리의 문화를 누리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도 양질의 한글 자막이 많이 등장해 한글 자막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길 기대한다.

*본 기사는 매체 속 한글문화의 흐름을 반영한 기사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