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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박웃음 2019. 12. 제 77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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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신의 혼, 집현전 학자 성삼문을
    논산에서 만나다

    논산의 널따랗게 펼쳐진 평야를 따라서 역사적 현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세종을 도와 집현전에서 이름을 날렸던 매죽헌 성삼문의 묘비와 조선 최고의 고택 중 하나인
    이삼 장군의 백일헌 종택, 그 주변으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돈암서원과
    백제와 신라가 치했던 방어선이자 지리적 요충지 노성산성이 그러하다.
    더욱 날이 추워지기 전에 평평하고 탁 트인 논산평야를 바라보며
    잠시 번잡했던 생각들을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보자.

    한글에 대한 사랑,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이 살아 숨 쉬는 성삼문의 묘

    매죽헌 성삼문의 고향 충청은 본래 충성 충(忠) 맑을 청(淸)을 쓰는 충절의 고장이다. 이런 이름을 지닌 곳에서 태어나서일까. 성삼문은 세종을 도와 집현전의 학자로 이름을 날리며, 문종, 단종까지 섬기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으나 스스로 왕이 된 후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세조를 반대하고 단종에게 충성을 다하며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처형을 당했다. 그런 충신의 절의를 기리기 위하여 묘비가 세워졌는데 ‘충문공매죽헌 성선생신도비’가 세워진 무덤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묘 주변에 조성된 사당 안에는 성삼문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그 왼쪽에는 숲길이 나 있어 방문객을 그의 묘소로 이끈다. 길 양옆으로 전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서서 길지 않은 거리에도 마음이 절로 경건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이곳 논산에 있는 신도비는 함께 절의를 지킨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이 세워 더욱 의미가 있다.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성삼문의 묘를 찾을 때 함께 알고 가면 좋을 시조 한 구절을 소개하며 논산 첫 여행지의 소개를 마친다. 온 세상이 새 임금인 세조를 섬겨도 본인만큼은 소나무처럼 단종을 모시겠다는 성삼문의 절개가 느껴질 것이다.

    성삼문의 위패를 모신 사당의 모습.▲ 성삼문의 위패를 모신 사당

    성삼문의 무덤▲ 성삼문의 묘

    성삼문의 신도비. 검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성삼문 신도비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까 하니
    봉래산 제일 높은 봉우리에 낙락장송이 되었다가
    백설이 온 세상에 가득할 때 홀로 푸르리라”

    무신의 충절을 기리다, 백일헌 이삼의 종택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또한 조선의 충신의 혼이 잠들어 있다. ‘술 익는 마을’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지닌 이 마을의 높은 언덕에는 조선 영조 때의 무관 이삼 장군의 고택인 ‘백일헌 종택’이 자리한다. ‘백일헌’은 이삼 장군의 호로, 이 고택은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여 임금에게 하사받은 곳이다. 300년의 역사를 지닌 이 고택의 위편에는 멀리서도 단번에 느껴지는 거대한 굴참나무가 자리하며, 마치 조선을 지킨 장군의 모습처럼 늠름하다. 문간 옆의 은행나무는 이삼 장군이 살아생전 말고삐를 매어두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이 종택은 건축물 일부가 변형되기는 했으나 조선 시대의 전통적 양반 가옥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어 한국 고 건축사 연구에 큰 보탬이 되는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이다. 건물 뒤편에는 ‘사색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 이 길은 과거 선비들이 걸었던 길로 1.8km나 이어진다. 약 1시간 20분 소요되는 산책코스로, 부산스러운 생각으로 마음이 괴롭다면 잠시 짐을 내려두고 천천히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백일헌 종택의 정문. 20여 개의 계단 위로 돌벽이 세워져 있고, 세 개의 나무문이 나란히 자리해 있다.

    백일헌 종택 내 기와집의 모습. 돌로 반석을 쌓고 그 위로 나무 기와집을 지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논산의 자랑, 돈암서원

    연산면에 위치한 돈암서원은 조선시대 예학을 집대성한 사계 김장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옛 선현들의 자취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원 중 한 곳으로 과거 흥선대원군에 의해 전국의 서원이 철폐됐을 당시 살아남은 46곳 중 한 곳이다. 서원의 독특한 이름은 이 장소의 서북쪽에 있던 돈암이란 큰 바위의 이름을 일컬어 돈암서원이라 붙였다 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입구에는 ‘입덕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곳을 들고 나설 때 성인의 덕을 배울 수 있도록 정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안쪽 끝자락까지 들어가 보면 4층으로 쌓아 올린 제향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숭례사’라고 불리는 이곳은 김장생과 송시열 등 4명의 위인의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기도 한다.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해 해설사와 함께 사원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역사이자, 배움터인 돈암서원에서 조상들의 지혜를 확인해보길 바란다.

    돈암서원의 정문. 돌벽 가운데 태극문양이 그려진 세 개의 나무문이 나란히 서 있다.

    돈암서원을 위에서 촬영한 사진. 다섯 개의 기와 건물위로 눈에 소복히 쌓여 있다.

    산이 나를 부른다, 노성산성

    논산의 마지막 여행지 노성산성은 노성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백제 시대에 축성돼 자연적인 지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산 둘레 약1km를 석축으로 거의 완벽하게 쌓은 성지로 유명하다. 이 성은 동쪽으로는 계룡산이 든든하게 지키고 서 있으며 남쪽으로는 논산평야를 내려다 볼 수 있고 북쪽과 서쪽 모두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혼란했던 삼국시기에 백제와 신라가 대치했던 방어선으로 쓰였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 요충지로써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한 장소에서만 백제시대의 기와편과 토기편에 이어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과거에는 혼란하고 적진의 한복판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평평하고 탁 트인 논산평야를 친구 삼아 산책길을 나서기에 제격이다. 더욱이 산성 내에는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우물이 네 곳이나 있으니 걷느라 송골송골 맺힌 이마의 땀도, 일상에서 묻은 마음의 때도 한꺼번에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노성산성의 가파른 돌벽의 모습.

    (사진 출처: 논산 시청/ 한국관광공사)

    여·행·가·이·드

    성삼문 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백일헌 종택

    충남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51

    돈암서원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노성산성

    충남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산1-1

    • · 문의 : 041-736-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