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이야기
한글의 꿈을 그리며 걸어온 흔적
김진평의 ‘글자표현’ 작업물
자료관리팀 윤재현 학예연구사
김진평의 한글 글꼴 자료는 2015년 12월 고 김진평 부인 이화복의 뜻에 따라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된 자료이다. 김진평(1949~1998)은 197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합동통신사를 거쳐 1981년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한글 글꼴에 관한 연구와 교육에 집중하였다. 1998년 49세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을 때까지 한글 글꼴 개발에 매진하면서 남긴 자료들이다. 이 자료들은 김진평의 자택과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원 ‘김진평기념자료실’ 그리고 폰트 회사인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보관한 것을 모아 기증한 것으로 당시 기증 수량은 194건 8,646점이다.
김진평의 한글 글꼴 자료
기증연도 : 2015년 12월
기증자 : 고 김진평 부인 이화복
기증 수량 : 194건 8,646점
주요 내용 : 김진평의 한글 글꼴 개발 자료
김진평은 레터링(Lettering)을 ‘글자표현’이라는 우리말로 표현하여 사용하였다. 과거 레터링의 의미는 ‘글자를 쓰는 것’ 또는 ‘쓰인 글자’를 의미했지만, 현재는 글자를 표현하는 행위부터 표현된 글자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김진평은 사전적 의미의 ‘글자쓰기’보다는 실제 사용되는 범위에 맞도록 ‘글자표현’으로 정의한 것이다.
김진평이 디자인에 입문할 당시의 국내 조판 환경은 사진식자를 사용하여 인쇄용 필름을 제작하였다. 디자인의 개념이 도입된 이후 디자인 과정에서 돋보이는 글자를 만들기 위해 손으로 글자를 표현하는 레터링(Lettering)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후 1980년대는 타이포그래피와 관련하여 한글 디자인이란 개념조차 전무한 상황이었고, 관련 도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 ‘명조체’를 완성한 최정호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글의 조형성에 관해 설명한 것 외에는 한글 형태에 대한 조형적 이론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김진평은 서울여자대학교 재직 중 『한글의 글자표현』을 1983년 발간하였다. 김진평은 글자의 기원과 글꼴 개발자의 관점에서 본 한글 글꼴의 변천을 정리하였고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돋움(고딕), 바탕(명조) 등 활자 구조에 대해 정의하였다. 또한 한글과 가장 많이 사용되는 로마자, 한자, 숫자에 대해서도 도판과 함께 글자표현 과정을 설명하였다. 그의 저서를 보면 글꼴에 대한 분류가 설명되어있는데, 활자체를 기계적(자간, 크기 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제외한 글자를 쓰고 그리는 행위는 ‘손에 의한 표현’으로 이 범위를 ‘글자표현의 영역’으로 정의하였고 ‘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당시 활자체를 제외한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글자표현 과정의 어려움과 열악한 인쇄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글의 글자표현』에 수록된 글꼴 자료는 풍부하였고 활자체 설명을 위해 상세한 글자 도판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 중 『한글의 글자표현』과 관련된 다량의 참고자료와 수록된 글꼴 관련 인화지 작업물 뭉치가 있는데 수량이 상당한 것을 보면 김진평은 당시의 열악한 환경에서 책 출간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다.
글자표현 제작 과정은 그의 모든 작업물에 적용되지만 특히 『리더스다이제스트』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리더스다이제스트』의 제작 과정을 보면 1983년에 발간한 『한글의 글자표현』의 ‘글자표현 과정’과 유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글의 글자표현』에 설명된 4단계의 글자표현의 과정을 김진평 자료를 통해 보면 아래와 같다.
김진평 선생님은 국내 디자인이 도입되고 활발해지는 시기, 디자인에 입문하여 실무를 경험하면서 한글의 조형성과 활용에 대해 중요성을 인지하였다. 이후 실무자와 연구자로서 평생을 한글 글꼴 개발과 이론 연구에 매진하였고, 논문과 저서를 통해 글꼴의 중요성과 한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관련 자료들은 2019년 발간한 국립한글박물관 기증자료집 3 『김진평, 한글의 꿈을 그리다』을 통해 볼 수 있다.
원고 : 자료관리팀 윤재현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