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이야기
한글날에 태어난
『한글마춤법통일안』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과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에겐 다른 언어와 문자에는 없는 큰 장애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맞춤법’이지요. 그런데 이 맞춤법이 처음 제정된 게 1933년 한글날이라는 걸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귀한 자료, 『한글마춤법통일안』(한구842)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영화 ‘말모이’를 보신 분이라면, 조선어학회가 일제강점기에 어떤 핍박을 받으며 우리말을 지키려 애썼는지는 가늠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조선어학회가 1933년 한글날(당시의 한글날은 10월 29일이었음), 『한글마춤법통일안』을 완성하여 발표하게 됩니다. 무려 3년 동안 125회의 회의에 433시간 동안 총 37명(중복 포함)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역작입니다.
※ ‘한글맞춤법통일안’ 작성 참여 인사
1. 원안 축조 토의, 제1독회(18인) |
권덕규, 김선기, 김윤경, 박현식, 신명균, 이갑, 이극로, 이만규, 이병기, 이상춘, 이세정, 이윤재, 이탁, 이희승, 장지영, 정열모, 정인섭, 최현배 |
2. 원안 수정, 수정안 검토, 제2독회(10인) |
권덕규, 김선기, 김윤경, 신명균, 이극로, 이윤재, 이희승, 장지영, 정인섭, 최현배 |
3. 수정안 정리(9인) |
권덕규, 김선기, 김윤경, 신명균, 이극로, 이윤재, 이희승, 정인섭, 최현배 |
혹자는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맞춤법’을 왜 일제강점기에 만들었을까 의아해 하실 수도 있을 듯합니다. 얼핏 독립운동과 맞춤법 제정은 연결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시는 것처럼 독립운동은 정신, 즉 문화 차원에서도 있었으며 당시에 조선어학회 외에도 민간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각계, 각 층의 노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1920년대에 들어서 일제의 식민 정책이 ‘문화 통치’로 바뀌게 됨에 따라 『백조』, 『개벽』과 같은 각종 문예 잡지가 활발하게 출판되었고, 한글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이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의 배경이 되기도 했지요. 이전 어느 시기보다 한글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자 표기의 혼란이 더욱 심해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를 ‘(시간이) 흘너’로 쓰는 경우도 있었고 ‘이야기’를 ‘이약이, 이야긔’ 등으로 쓰는 경우도 심심찮게 등장하게 됩니다. 흔히 식자층,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출판한 글의 철자가 이 정도이니 민간에서는 얼마나 표기가 혼란스러웠을지 가히 짐작이 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조선어학회는 우리말을 전승시킬 도구인 우리글, 한글 표기를 정리할 마음을 먹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을 바르게 쓰는 것이 곧 말과 글을 닦는 일, 나아가 민족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렵게만 느껴져서 귀찮아하곤 했던 ‘맞춤법’이 이렇게 눈물겨운 희생과 큰 뜻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한글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오늘부터는 한글을 지으신 세종대왕뿐 아니라 그 한글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키기 위해 노력한 분들과 그 결실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쓰고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이 한글로 되어 있다는 것도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요.
원고 : 자료관리팀 이하얀 학예연구사